나 홀로 5년간 1조8000억 ‘꿀꺽’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0.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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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KPS, 수의계약으로 사업 독식…‘한수원 원전 용역 계약’ 자료에서 드러나

‘비리 백화점’이라 할 수 있는 원전 비리 사태에 대한 수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 비리 수사단(단장 김기동 지청장)은 현재까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을 비롯한 43명을 구속하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포함한 5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국무조정실은 가동 중인 원전 20기의 품질 관련 서류 2만2000여 건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1.2%에 해당하는 277건의 서류 위조를 확인했다고 10월10일 발표했다.

<시사저널>은 사정 당국의 원전 비리 수사가 본격화되기 훨씬 전인 올해 2월부터 박 전 차관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 실세와 관계자들이 원전 비리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심층 보도했다. 원전 비리가 단순한 납품 비리 문제가 아닌 권력형 게이트였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정감사를 앞두고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박 전 차관, 김 전 사장, ‘원전 브로커’로 알려진 ‘영포 라인’ 출신 오희택씨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하기도 했다.

한수원이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구조는 원전 비리의 ‘뿌리’로 지목돼왔다. ⓒ 연합뉴스
권력 실세들이 원전 산업에 군침을 흘린 것은 폐쇄적인 원전업계의 구조 탓에 유착 고리를 형성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수의 업체와 사람들이 십수 년간 교대로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최근 <시사저널>이 임내현 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통해 입수한 한수원 제출 자료를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한수원의 최근 5년간 원전 기전설비 정비 공사 계약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올해 4월15일 계약까지 모두 15건 중 14건이 한전KPS에 집중됐다. 금액으로 따지면 1조8000억원이 넘는 공사 중 176억원가량을 제외한 모든 계약을 한전KPS가 독식한 셈이다.

한수원, 수의계약으로 특정 업체에 특혜

더 큰 문제는 이 모두가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전KPS는 해마다 3600억원에 이르는 공사를 ‘가만히 앉아서’ 수주한 셈이다. 단 한 건 있었던 경쟁 입찰 역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지난해 2월27일 체결된 ‘울진(한울) 5·6호기 2차측 원전 정비 공사’에는 한전KPS와 석원산업 두 업체만 경쟁 입찰에 참여했다. 그러나 석원산업은 한전KPS와 더불어 컨소시엄 형태로 한수원 계약을 나눠 가졌던 업체다. 지난 5년간 사실상 한전KPS가 한수원 기전설비 정비 공사 거의 전부를 싹쓸이한 것이다.

2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금액이 특정 업체에 집중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자립을 명분으로 자국 내 생산 원칙을 고수했던 원전업계의 행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업체가 국산화 기술을 취득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독점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점 체제는 원전 안전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독점 체제를 구축한 업체가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고를 냈다 하더라도, 한수원으로서는 대체할 회사가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사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 2012년 2월9일 고리 원전 1호기 정전 사고 당시 ‘비상 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때 고리 원전 1호기의 보호계전기 시험과 디젤발전기 정비·관리 책임은 한전KPS의 몫이었다. 경쟁 업체가 있는 일반적인 산업 분야였다면 한전KPS에게는 당연히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한수원은 오히려 2월29일, 한전KPS와 2513억원 규모의 ‘2012년 원전 기전설비 정비 공사’ 계약과 218억원 상당의 ‘2012년 신고리 1·2호기 원전 정비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7월에는 68억원 규모의 ‘2012년 신월성 1·2호기 원전 정비 공사’ 계약도 이어졌다. 당시 한전KPS는 석원산업이 맡은 울진 원전 3호기의 정비를 제외하고, 모든 원전의 발전 정비 사업을 독차지한 것이다.

원전 관련 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가운데)이 7월7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수의계약 비율 지난해보다 높아져

이와 같은 사정은 계측제어설비 정비 용역 분야도 다르지 않다. 2008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3300억원이 넘는 용역 계약이 사실상 2개 업체에 돌아갔다. 이 중 삼창기업이 2550억원가량을, 한전KPS가 760억원가량을 가져갔다. 계측제어설비 분야의 지난 5년간 계약 22건 중 수의계약으로 체결된 건수는 5건이다. 그러나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삼창기업과 한전KPS 두 곳뿐일 때가 많아 경쟁 입찰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심지어 삼창기업의 경우,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사실이 이번 원전 수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검찰은 JS전선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새한티이피가 삼창기업의 방사선 감시 시스템을 제대로 실험하지 않고 원전에 공급했다는 사실을 발견해 이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삼창기업의 공급자 등록 효력을 정지시켰다. 삼창기업은 2011년 포스코ICT에 인수돼 현재 ‘포뉴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특정 업체에 사업을 몰아주는 이런 구조는 오래전부터 ‘원전 비리’의 뿌리로 지목돼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말 “한수원이 불명확한 사유로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 방식을 지나치게 적용해왔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특히 올해 원전 비리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수의계약을 비롯한 일감 몰아주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한수원의 올해 수의계약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크게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올 7월까지 한수원이 맺은 수의계약은 전체 계약의 58.9%로 지난해 42.4%, 2011년 37.1%, 2010년 31.2%에 비해 매년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5년 ‘발전 정비 산업 현안 및 대책 확정 시달’을 통해 원자력 정비업체 육성안을 발표했던 정부의 시책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전 산업 비리가 구조화하면서 2001년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수원 직원은 45명에 달하고, 이들이 1인당 평균 1억30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로 볼 수 있는 수의계약 등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경우가 많다. 올해 수의계약이 늘어난 것은 원전 비리로 긴급히 교체해야 할 부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수원도 다양한 공급자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 공개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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