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걸음이 네 아이 다리가 되다
  • 엄민우 기자·이혜리·조은혜 인턴기자 ()
  • 승인 2013.10.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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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빅워크 공동 ‘쉘위워크 페스티벌’…1000여 명 참석 ‘걷기 기부’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데는 희생이 따른다. 기부를 통해 돌아오는 기쁨은 값어치를 매기기 힘들 정도로 크지만, 남을 돕기 위해선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날씨 좋은 날,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걷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어떨까. 10월의 어느 멋진 날, 서울 남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시사저널>은 10월6일 사회적 기업 ‘빅워크’와 함께 ‘쉘위워크(Shall we walk)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학업에 지친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걷기와 강연을 통해 힐링 기회를 제공하고, 몸이 불편한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마련한 이날 행사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와 기부재단 ‘초록우산’이 공식 후원했다. 행사 코스는 서울 남산 국립극장을 출발해 N서울타워를 거쳐 다시 국립극장으로 돌아오는 총 4.5㎞다. 참가자들이 걸음 수를 측정하는 빅워크앱을 켜고 이 코스를 걸으면 10m당 1원씩 기부액이 쌓여 걷지 못하는 절단 장애 아동 치료를 위해 쓰인다.

10월6일 오전 11시. 남산 국립극장 앞에는 1000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Shall we walk’라고 쓰인 흰색 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은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참가해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눴다. 이날 행사로 혜택을 받게 될 사람은 모두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 5세 이동렬 어린이는 출생 후 바이러스 때문에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 어머니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으나 현재 받는 수급비만으로는 치료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7세 서민규 어린이는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10월6일 서울 남산국립극장에서 과 빅워크 주최로 열린 ‘쉘위워크 페스티벌’의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뇌병변 1급 등 네 아이 치료비 적립

보조기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만 보조기 구입이 힘들어 현재 빌려 쓰고 있다. 태어난 지 17개월 된 남예원 어린이는 무연고다. 선천적 하지 기형으로 홀로 걷기가 불가능해 향후 아동 체형에 맞는 특수 휠체어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뇌병변 1급인 8세 박명주 어린이는 한창 뛰놀 나이에 누워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속적인 물리치료와 보조기가 절실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막막한 상황이다. 쉘위워크 참가자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네 명의 어린이를 위한 치료비로 적립됐다. 누군가의 행복한 걸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행복한 걸음을 선물하게 된 것이다.

행복한 걸음 뒤에는 따뜻한 강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걷기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남산 청소년 하늘극장에서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꿈’이라는 주제로 5명의 연사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참가자가 많아 청중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오종남 서울대 교수가 첫 번째로 강연을 진행했다. ‘어느 촌놈의 꿈’이라는 주제로 스피치를 진행한 오 교수는 “내 어릴 적만 해도 장남만 중학교에 보내고 동생들은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이런 ‘불균형 전략’은 비록 개발 시대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을 이뤄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격차도 야기했다. 오늘 행사에 참가하신 분들은 이런 격차를 해소하는 데 일조한 분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사회는 개그맨 오종철씨가 맡았다. SBS 공채 5기 개그맨 출신인 그는 최근 ‘소통테이너’로 변신해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개그맨이라는 타이틀에 나를 맞추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웃긴 개그’가 아닌 사람들이 웃을 일을 만드는 개그로,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을 목표로 새로운 인생에 도전 중이다. 오늘 참석한 어린 친구들도 자신의 이름을 앞에 걸고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씨가 청중을 웃게 했다면 청중을 울린 강연 멘토는 ‘로봇다리’란 별명을 가진 김세진군이었다. 김군은 선천성 무형성 장애로 두 다리와 한 손이 없이 태어났다. 모두가 그에게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김세진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일어서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 살이 터지고 피멍이 들었다. 의족을 착용하기 위해 다리뼈도 깎아내야 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결국 의족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김군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걷기에 이어 수영에 도전했다. 하루 6시간씩 5kg 납덩이와 낙하산을 메고 14㎞를 걸으며 훈련했다. 마침내 2009년 영국 런던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을 달성했다. 9월22일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서 열린 수영대회(리틀 레드 라이트 하우스)에서 전체 21위, 18세 이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군이 일어서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어머니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군의 어머니는 “세진이가 1등으로 매달을 땄을 당시 주최 측에서 태극기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종이에 태극기를 그려 세진이 뒤에서 들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때 세진이에게 ‘넌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되어라. 난 너의 자존심이 될게’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박은숙
‘꿈’ 주제 토크콘서트에서 따뜻한 강연

핸드스튜디오 안준희 대표의 강연은 특히 대학생 청중의 관심을 끌었다. 안 대표는 직원들이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서 1000만원을 지급하는 등 직원들과 함께하는 경영으로 ‘굿 컴퍼니’를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 사업가다.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계에 취업했다가 꿈을 위해 과감히 사업가로 변신해 지금은 스마트TV 애플리케이션 분야 1인자로 우뚝 섰다. 그는 “‘가계 자원과 정부 지원으로 이익을 창출한 후 그 이익을 가계와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기업’이라는 경영학 입문서에 나온 기업의 정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진정한 굿 컴퍼니라고 생각하고 직원들과 나누고 있다”며 “직원들 또한 받은 만큼 사랑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강연자로는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가 나섰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법’이란 주제로 강연한 김 대표는 “우울한 시기에도 내가 긍정적으로 세상을 봐야 세상이 나를 통해 웃어준다는 것을 깨닫고 힘을 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일을 꾸준히 좋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복한 걷기와 따뜻한 강연이 어우러졌던 이번 쉘위워크 행사는 걷지 못하는 절단 아동들에게는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참석한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는 꿈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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