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정보 프로 대놓고 과잉 처방?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10.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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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한 일부 의사, 과장되거나 검증 안 된 치료법 소개하기도

건강 정보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생로병사의 비밀> <비타민> 같은 전통적인 건강 프로그램의 인기에, 종편에서 시작된 건강 토크쇼 바람이 가세해 가히 건강 정보 홍수 시대라 할 만하다. <닥터콘서트> <닥터의 승부>처럼 아예 의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일반적인 주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토크쇼에서도 건강 관련 소재가 많아지는 추세다.

종편 토크쇼 바람의 진원지인 <황금알>의 경우 출연진의 상당수가 의사다. 처음엔 다양한 소재를 다루다 지금은 건강 정보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물상> <웰컴 투 시월드> <웰컴 투 돈월드> <헬로헬로> <천기누설>처럼 건강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프로에서도 건강을 슬쩍 끼워 넣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지상파 방송까지 파급돼 <자기야> <풀하우스> 같은 토크쇼에서 의사들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 TV조선·MBN·JTBC제공
의사는 어떻게 방송 스타가 됐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한방 의사를 비롯해 식품 전문가, 헬스트레이너 등 건강을 다루는 사람들이 연예인과 다를 바 없는 방송인으로 떠올랐다. 피부과 의사인 함익병씨는 지상파 1인 토크쇼인 <힐링캠프>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을 정도다. 지상파 1인 토크쇼 초대 손님은 당대 최고 스타들이다. 집단 토크쇼에 나왔던 의사가 <힐링캠프>에 초대되는 것만 봐도 의사들이 지금 얼마나 각광받는지 알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건강 정보는 과거부터 방송에서 인기 소재였지만, 요즘 들어 그 정도가 심해졌다. 건강 정보 소음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건강 정보가 TV에서 쏟아져 나온다.

얼마 전까지 TV 토크쇼는 경쟁적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폭로해왔다. 매주 연예인들이 모여 앉아 사생활을 고백하며 눈물짓는 모습에 시청자는 싫증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놀러와> <화신> 등 연예인 사생활이 주가 되는 토크쇼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이때 종편에서 의사들을 내세워 건강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사스, 조류독감, 광우병, 최근의 후쿠시마 방사능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건강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얘기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은 바로 이런 한국인의 불안감을 파고들었다. 요즘엔 시청자들이 예능에서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나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다이어트 등의 소재가 바로 그런 요구에 부응했다.

낭만적인 거대 담론의 시대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자기 배려, 자기 삶의 질이 중요해졌다. 무엇보다도 내 몸의 완전성, 내 가족의 건강이 먼저인 시대가 온 것이다. 무한 경쟁 시대는 몸을 가장 중요한 자산, 가장 중요한 스펙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몸짱 열풍이 불고, 건강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해졌다.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도 몸이나 음식 같은 물질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식품의 국제 교역과 식품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음식에 대한 불안이 고조된 것도 건강 정보 홍수에 영향을 미쳤다. 외모에 대한 강박은 내과(비만 관리)·성형외과·피부과 의사들의 주가를 높였고 각박한 세상의 불안 심리는 정신과 의사를 방송 스튜디오로 소환했다. 그리하여 건강 정보가 안방으로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가 됐는데, 이것으로 국민 건강이 증진되는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건강 정보를 전하는 프로그램은 대체로 예능이다. 예능 프로는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과장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예능 프로에선 몸에 좋다는 건 만병통치약처럼 과장되고, 몸에 안 좋은 건 금방이라도 쓰려져 병원에 실려갈 것처럼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발 건강식품 신드롬 혹은 공포증이 생겨날 정도다.

언제는 효소가 만병통치약이라더니…

가장 대표적인 예로 효소 신드롬을 들 수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건강 토크쇼에서 효소를 만병통치약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전국적으로 효소 열풍이 불었고, 쇼핑몰에서도 효소 상품을 팔았다. 효소 산업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반년쯤 지난 후 효소 열풍이 거품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설탕으로 만드는 효소의 효능이 거의 없을 수 있다는 보도였다. 그러자 건강 정보 프로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효소 신드롬의 거품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한 프로그램에선 ‘효소는 단지 설탕물’이라는 극언까지 나왔다. 효소를 선전하면서 시청률을 올리더니, 이젠 까면서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얼마 전엔 하수오가 신비의 영약처럼 부각돼 하수오 열풍이 일었는데, 최근 들어 부작용이 염려된다는 내용도 방영되고 있다. 예능이 아닌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도 간헐적으로 단식을 부각시켜 열풍을 일으켰는데, 최근 이에 대해서도 경고가 나오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면서 자극적인 건강 정보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의 상술에 소비자만 휘둘리는 형국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과도한 건강 정보는 사람들을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하게 만들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건강 염려증을 유발할 수 있다. 불안에 빠진 시청자는 자기도 모르게 방송이 제시하는 식품을 찾아다니게 돼 건강보조식품 산업의 ‘봉’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성형외과·피부과 등 외모 관리 관련 의사들이 일상적으로 TV에 나오는 것도 국민의 외모 시술을 부추기는 문제가 있다.

방송은 체계적인 지식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선호한다. 그래서 건강 정보 프로그램은 사례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특정 사례자의 경험은 일반적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민간요법 사례자들이 나와 검증되지 않은 경험을 말할 때, 좌우에 앉은 의사 패널들이 수긍하는 듯한 리액션 장면들이 편집되는 구도도 위험하다. <만물상>에선 한 출연자가 불개미와 메뚜기가 정력 강화 음식이라고 장담했는데, 그 근거는 ‘불개미와 메뚜기의 다리 힘이 유독 세다’는 것이었다.

유익한 과학적 정보라 해도, 방송에서 수많은 출연자에 의해 난삽하게 쏟아지는 지식들은 사람의 머릿속에 의미 있는 지식 체계를 형성해주지 못한다. 그저 보는 동안에만 만족감이 느껴질 뿐이며 보고 나서는 대부분의 지식이 사라지고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인상만 남게 된다. 즉, 국민 건강 증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건강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시대엔 시청자의 냉정한 시청 태도가 필요하다. 또, 언론이나 관련 기관에선 TV의 과장된 건강 정보를 좀 더 엄격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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