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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제왕’ 권좌를 박탈당하다

왜소한 남성의 시대…하루카와 나미오의 ‘사소한 이분법’전

정준모│문화비평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ㅣ | 승인 2013.10.23(Wed) 15: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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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2일부터 하루카와 나미오(1947~)의 <사소한 이분법>이란 ‘평범’한 이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전시되는 작품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별꼴’이란 말이 있다. 별나고 이상하거나, 아니꼬워 눈에 거슬리는 꼬락서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반적인 것 또는 보통과는 다르게 특별하거나 이상하다는 뜻일 게다. 나미오의 작품은 1970년대까지 오와 열을 맞추어 살았고, 살아야 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별꼴 또는 충격, 혼란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변화 중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복지 제도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이 아니라 과도한 성 담론의 범람이라 할 것이다. 부부간의 정상적인 성생활도 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오래된 풍습을 비웃듯 오늘날은 동네 어귀에서도 눈에 띄는 ‘성인 숍’이 그것을 상징한다.

반면 이웃 일본의 성은 매우 자유분방한 것이었다. 드러내놓고 성을 이야기하고 춘화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성행했던 사실을 놓고 보면, 스스로 폐쇄적인 경향을 지닌 일본 사람의 성에 대한 자유분방함은 이율배반적이다.

일본의 성문화는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과하고 추한 것이기까지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지금 열리고 있는 일본 작가 하루카와 나미오의 전시는 충격보다는 조금 때가 늦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정상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공부한 탓에 데생이나 기초적인 표현에서 나이브한 느낌을 주지만, 파격적인 소재에도 오히려 건강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10월17일 갤러리 카페 ‘그문화’에서 하루카와 나미오의 ‘사소한 이분법(A mere dichotomy)’이 전시 중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구촌의 남성 우월주의 막 내린 듯”

하루카와 나미오는 풍만하다 못해 터질 듯한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여성과 그녀에게 봉사하고 있는 왜소한 남성을 그렸다. 그림 속 남성의 행동이 여성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인지(사디즘), 아니면 남성 스스로가 압사 직전의 그 상황을 즐기는 것(마조히즘)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것은 보는 이의 판단에 맡겨진다. 물론 남성이 행위의 주체라면 마조히즘적이고,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사디즘’에 속할 것이다. 입장에 따라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할 노릇이지만 우리는 그 결정을 늘 남에게 미루어놓고 누군가가 결정해주면 그에 따르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본 것을 따라가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봉사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남성의 끝없는 추락 또는 사랑마저도 거부당하는 슬픈 남성을 떠올리며 더 이상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성주의를 주창하는 ‘남성연대’ 등 일부 남성의 외침도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제 지구촌의 남성 우월주의는 막을 내린 듯하다.

‘씩씩한 남자,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남자다움’은 사라진 것일까. 사회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버림받고 생산적 도구로 전락한 남성이 과거에 누렸던 가부장제 속에서의 밤의 제왕(?)의 권좌마저 박탈된 채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다.

프로이드(1856~1939년)는 성적인 측면에서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함께 존재하며 발견된다고 했다. 이를 흔히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라 한다. 크라프트-에빙(1840~1902년)은 1886년 성적 도착으로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라는 신조어를 창시했다. 그는 ‘사디즘은 이성을 잔인하고 난폭하게 다루고 싶어 하는 충동이며, 그런 행위에 대한 생각을 음탕한 감정으로 채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사디스트는 동시에 마조키스트이기도 하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다. 모든 사람은 경우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하거나 선택을 포기하고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는 가운데 사디·마조히스트가 된다.

아무튼 남성들의 외면당하는 사랑 또는 구걸하는 성에 이른 오늘의 현상은 그간 남성 중심 사회를 구가해온 변강쇠나 가루지기류 남성들의 ‘자기 처벌(Self-Punishment)’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그림이나 문학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문화의 다양성과 다원화된 사회가 빚어낸 현상

이처럼 독특한 성적 취향은 옛날에는 음지에 있었지만 지금은 양지로 나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미술사에서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의 예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춘향이 변학도의 매를 이기는 사랑은 ‘사디·마조히즘’에 속한다. 자기를 희생하는 타인 본위의 사랑과 그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티븐 컨은 <육체의 문화사>에서 ‘고통은 즐거움보다 더욱 생생하게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금욕주의는 고통이 종종 생명을 고양시킨다고 생각한다. 미술사학자 루시 스미드(1933~)에 따르면, 그러한 그림으로 한스 발둥그린(1484~1545년)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가 있다. 천하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벌거벗은 필리스를 태우고 채찍을 맞으며 기어간다. 스미드는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묶인 가학적 신화부터 바로크 거장들이 그린 순교나 예수 수난에서 가장 에로틱한 작품을 발견했다. 그는 특정 형태의 고문은 확실히 성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고문 기구로 둘러싸인 인물들은 종교적인 목적 대신 단지 특이한 성적 취향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의 순교를 나타내는 장면들(석쇠에서 몸부림치는 성 로렌스, 십자가에 못 박힌 성 안드레, 가죽을 벗긴 성 바톨로메 등),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삼은 작품에서도 에로티시즘과 사디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들뢰즈(1925~1995년)나 가타리(1930~1992년)는 성 세바스찬의 몸을 관통한 무수한 화살에서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읽어낸다. 그리고 이런 경향의 작품은 마네나 뭉크 그리고 현대미술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갈 데까지 갔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문화의 종 다양성과 다원화된 민주 사회의 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그들을 품어 안을 때 그들 또한 고려할 것은 그들의 문화에서 인간적인 모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인정했듯이 그들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배려와 포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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