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이름으로 다시 총성 울리다
  • 최현석│이집트 통신원 ()
  • 승인 2013.10.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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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정부 시설 테러와 타 종교 습격하는 무슬림형제단 실체

10월7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시나이 반도의 휴양도시인 엘토르 등에서 무장단체의 공격이 있었다. 정부 시설물이 목표였다. 바로 전날인 6일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무슬림형제단 세력과 시위를 진압하려는 군경이 충돌해 50명이 넘게 사망한 다음 날 벌어진 일이었다. 시설을 공격한 범인들은 로켓 추진 수류탄까지 동원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날의 테러로 최소 9명이 숨졌다. 일주일 뒤인 14일부터는 무슬림형제단의 콥트교회 습격이 시작됐다. 콥트교회는 고대 기독교 분파인데, 무슬림형제단은 이들의 교회와 사업장에 불을 지르거나 약탈을 자행했다. 일부에서는 최근 무슬림형제단이 부분적으로 무장 조직으로 변모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역사에서도 그런 흔적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28년 독실하고 경건한 무슬림 신자이자 이슬람 신학교 교사였던 하산 알바나는 무슬림형제단을 창설했다. 초기 무슬림형제단은 신실한 무슬림 신자들을 정치권으로 내보내 온건한 무슬림 국가를 세우자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현재의 무슬림형제단에 반대하는 이들도 초기의 설립 취지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타 종교를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배척하지 않았으며, 핍박도 하지 않았다.

10월20일 이집트 카이로 북부 알와라크 지역에 있는 콥트교회 결혼식장에 복면의 무장 괴한 2명이 총격을 가해 4명이 사망했다. ⓒ AP 연합
무슬림 교육기관도 “형제단 인정 못해”

그러나 1948년 조직 내 과격 세력들이 마후무드 파흐미 노크라쉬 당시 이집트 총리 암살 미수 사건을 일으키자 이집트 국왕은 무슬림형제단 해산 명령을 내렸다. 끝까지 무장투쟁에 반대하던 하산 알바나는 1949년 2월 자신의 조직원들 손에 암살됐다. 알바나를 제거한 무슬림형제단은 본격적으로 과격한 길을 걸었다. 당시 왕정이던 이집트의 내각 구성원들을 암살하려는 테러를 일으켰고 외국인을 납치하는 등 테러 단체로 변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사업도 적극적으로 벌였는데, 이집트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MOMEN과 슈퍼마켓 체인점인 SEOUDI를 비롯해, 귀금속 사업과 환전 사업 등을 벌이며 많은 부를 축척했다. 막대한 부를 이용해 하마스에 무기·가스·석유·식료품을 지원했고, 이집트를 넘어 요르단·리비아·튀니지·알제리·예멘·터키에까지 영향력을 뻗쳤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성장을 계속했던 무슬림형제단은 1981년 사다트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일으킨 혐의를 받았는데, 사다트의 뒤를 이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이전에 없던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이전 대통령들은 그나마 무슬림형제단과 대화와 타협을 시도했지만 무바라크는 단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내렸고, 그들의 재산을 압류하며 조직을 거의 와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 전대미문의 탄압 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해외에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을 바라보는 시각은 현지에서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밖에서는 그들을 정치 단체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이집트 내부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집트에는 알 아자하르라는 전통적인 수니파 무슬림 교육기관이 있다. 아자하르에서도 무슬림형제단은 인정받지 못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아자하르의 한 셰이크(이슬람 세계에서 선생님 혹은 지도자)는 <알 아라비아>와의 인터뷰에서 “무슬림형제단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지하드라 말하며 일반 민중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자신들이 하는 것은 지하드이고, 자신과 다른 것은 모두 하람(신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나는 하람의 길을 택하겠다. 나는 평생을 아자하르에서 공부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들의 개인 교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배운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반한다. 그들이 나를 하람이라고 한다면 나는 하람이 될 것이고, 오로지 알라만이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집트의 전직 육군 참모총장인 사미아난은 이집트 방송 나일 채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만약 군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집트는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이나 또 다른 소말리아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무슬림형제단은 시나이 반도에 불법적인 터널을 만들어 하마스에 협조했고, 알카에다의 수장인 아이만 알자와하리의 남동생인 무함마드 알자와하리를 영입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알자와하리는 1981년 사다트 대통령 암살 혐의로 옥살이를 하다 지난 2012년 무르시 정부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최근 이슬람 무장 세력이 주축이 된 반군들과 내전을 벌이고 있는 말리 사태의 유력한 주모자로 알려지고 있다.

10월19일 이집트 카이로 동쪽 이스마일리아에서는 군 정보부 청사를 노린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6명이 숨졌다. ⓒ EPA 연합
“무슬림형제단에 이집트는 구미 당기는 지역”

무슬림형제단의 무장 조직화를 보여주는 증거는 무르시 축출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무르시와 하마스 사이에 군사 협력, 가스 파이프, 가자 터널 건에 대해 협약을 맺은 문서가 발견됐다. 만약 협력이 진행됐다면 가스 및 전기료가 폭등하고 식료품 및 무기 반출이 일어나면서 커다란 시련이 닥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위험을 알면서도 왜 무르시 정권은 협약을 맺었던 것일까.

하킴 무닐 카이로 대학 교수는 “그들은 이집트를 넘어 전 아랍, 나아가서는 예전 칼리파 시대로의 복고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알카에다는 사실 무슬림형제단과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무닐 교수는 “만약 개신교에서 예수형제단을 만들어 테러 행위를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집트 등의 무슬림들은 신에 대한 복종심이 깊다. 결국 무슬림형제단은 시민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 신의 이름으로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닐 교수는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본다. “무슬림형제단에게 이집트는 구미가 당기는 지역이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잇는 곳이니까. 튀니지에도 형제단 정권이 들어섰고, 실패하긴 했지만 알제리와 리비아에서도 여러 번 정권 창출을 시도했다. 지금은 북아프리카를 넘어 말리·세네갈·콩고 등으로 세력을 확산해가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이집트인들의 마음이다.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신에 대한 그들의 무조건적인 복종은 그 어떤 민족도 따라잡을 수 없는데 그런 성격은 무슬림형제단에게 좋은 구실이 됐다.”

탄압이 강해질수록 저항도 심해진다. 이집트 군의 인식은 사미아난 전 참모총장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슬림형제단은 한 번도 정치 단체였던 적이 없는 단순한 테러 단체일 뿐이다. 그들에게 이집트는 더 이상 그들의 모국이 아니다. 단지 자신들의 이슬람 왕국을 만들기 위한 전진기지일 뿐이다.” 이집트의 시위가 점점 무장투쟁의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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