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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궁궐 밀실에서 “우리가 남이가”

특정 지역 편중·논공행상 인사 파열음 인재 풀 좁고 전문성 떨어져

이승욱 기자 ㅣ gun@sisapress.com | 승인 2013.11.05(Tue) 10: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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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청와대의 안살림을 도맡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언론사를 대표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는 ‘불가근불가원’ 관계다. 너무 가까이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면 갈등이 표출되기 십상이다.

최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김 실장의 ‘대언론 소통 부재’를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 불만과 성토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이 8월 초 취임한 이후 출입기자들과 공식 간담회를 한 차례도 갖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김 실장이 기자들을 만나기 위해, 출입기자가 상주하는 춘추관을 찾은 것은 두어 차례뿐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도 중요 사항을 발표하기 위한 불가피한 자리였을 뿐, 기자들을 따로 만나기 위한 행보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기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던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비교하면, 언론과 거리를 두려는 김 실장의 의중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일간지의 청와대 출입기자는 “김기춘 실장은 기자들과 밥 한 끼는 고사하고, 차도 한잔한 적이 없다”며 “기자들이 한번 보기를 청해도 ‘날 만나서 뭐하겠나’ 하는 식이다. 기자들과는 아예 소통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하다. 공식 루트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전임 허태열 실장 때는 물론이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 출입기자들도 포기하는 쪽으로 가는 분위기다. 마치 박 대통령만 모시겠다는 자기의 말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연합뉴스
‘박근혜식’ 답습한 ‘김기춘식 스타일’

김기춘 실장의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만 바라보고 모시겠다’는 식의 외곬 스타일은 단순히 그의 언론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철통 보안과 공직 기강 등을 강조하는 박근혜식 통치 스타일과 흡사한 김기춘식 조직 관리·운영 스타일이 청와대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임명된 지 3개월도 채 안 돼 김기춘식 스타일이 정치권 안팎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단행된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인선을 두고 PK(부산·경남) 독식을 문제 삼고 있다. PK 출신 김 실장의 영향력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하반기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인선에 대해서도 영남 편중과 대선 공신에 대한 보은 인사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최근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공공기관장과 정부 산하 위원장 등에 대한 인선 과정을 둘러싼 하마평이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공공기관장 등의 인선은 허태열 전 비서실장 체제하에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결국 허 전 실장이 임기 3개월여 만에 낙마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에 따라 구원투수로 등장한 김 비서실장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각에서는 청와대 조직 안정화에 기여한 김 비서실장이 주도하는 인선이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선 과정에서 특정 지역 편중 인사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보은성 인사 등의 논란과 함께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지역이나 출신 학교를 안배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그 자리에 적합한 인사인지 아닌지만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현 정부 초기부터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면서도 그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김 실장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최종 인사 결정은 대통령이 하겠지만, 배수의 후보를 올리는 과정에서 비서실장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우려했다.

특히 지역 편중 현상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논공행상식 보은 인사 논란은 공공기관장 인선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옥동석 한국조세연구원장, 임광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장,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경남 출신 인맥은 공공기관장 자리에 두루 포진해 있다. 그 밖에도 친박계 정치인 출신인 이규택 전 의원은 지난 9월 말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 이사장은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친박연대를 창당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선 사례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3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종북 척결’ ‘좌편향 교과서’ 문제 등에 관심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앞으로가 더욱 시끄러울 전망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아직 인선이 진행 중인 공공기관장·공기업 인사 인선 과정을 두고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마사회장의 경우, 그동안 친박 중진인 김학송 전 의원과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제주 캠프를 담당했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등이 거론돼왔다. 하지만 한국마사회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다. 기존에 거론된 인사 외에도 박 대통령 당선에 공로가 많고, 권력 실세와 가까운 또 다른 친박 인사 ㅊ씨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 불미스런 일로 구설에 오른 바 있어 여권 내에서도 거부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회장 인선이 늦어지는 것을 두고 청와대가 ㅊ씨를 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초반 국무총리와 장관 인선 과정에서 도미노 낙마 사태를 빚으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하지만 특정 지역 인사 편중과 논공행상식 보은 인사가 공공기관장 인선 과정에서까지 불거져 나오자 집권 초반의 인선 홍역을 떠올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 출범 전 조각 인사에서 박 대통령의 ‘수첩 인사’가 보여준 밀실 인사가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하의 청와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권 내부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임명된 지 불과 2~3개월 만에 청와대 내부의 조직 관리 등 기강을 잡았다며 이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김 비서실장이 특유의 강단 있는 카리스마로 윤창중 성추문 사건과 인사 낙마 사태 등으로 흔들렸던 박근혜정부 초반의 청와대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한때 ‘문고리 권력’으로 언론의 집중 표적이 됐던 박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 3인방과 관련한 구설도 싹 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호평과 달리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경직된 분위기 탓이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신임하는 이유는 그가 사심(私心)이 없다는 점 때문”이라며 “김 실장은 대통령이 먼저 묻기 전에는 결코 먼저 나서서 말하는 법이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윗사람의 심중을 먼저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하는 김기춘식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실장을 발탁한 이유 또한 이런 점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황우여 대표와 정홍원 총리, 허태열 전 실장 등 당·정·청의 수장들이 정권 초기 박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박 대통령이 신뢰하는 원로 그룹으로 알려진 이른바 ‘7인회’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좌장 격인 김용환 전 의원이 ‘이래서는 안 된다’며 7인회 중 강창희 국회의장을 제외하고는 나이가 제일 어린 김기춘 실장에게 ‘박 대통령을 곁에서 도와주라’고 해서 비서실장에 전격 발탁됐다는 게 정설”이라고 전했다.

김기춘 실장이 박 대통령에 대한 보필 업무에만 자신의 영역을 묶어두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철학이 은연중 현 정부의 방향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최근 지인들과 가진 사적인 자리에서 세 가지 사항에 대해 특히 관심을 표명했다고 한다. ‘종북 척결’ ‘역사 교과서 좌편향’ ‘밀양 송전탑’ 문제 등이다. 특히 최근 우편향적인 발언으로 구설을 낳고 있는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아들의 특혜 취업과 거짓말 논란으로 말썽을 빚는 등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음에도 꿈쩍도 않는 배경에는 청와대의 이러한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 주변에서는 지난 10월27일 박 대통령의 프로야구 시구가 전격 이뤄진 배경에도 김 실장의 역할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김 실장이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지낸 경력 때문이다.

“경직된 청와대 조직이 화근” 지적도

이러한 김기춘식 스타일은 폭넓은 추천 시스템을 기반으로 다양한 인재 풀을 형성하는 데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김 실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금의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박준우 정무수석, 홍경식 민정수석 등이 고정 멤버로 참여한다. 인사 성격에 따라 해당 분야의 수석이 인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고정 멤버 중 박 수석은 정통 관료 출신으로 상명하복식 관료 문화에 익숙하고, 홍 수석은 검사 출신으로 김 실장의 후배다. 사실상 김 실장이 주도하는 인사위원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토론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철통 보안을 인선의 제일 요건으로 강조해오고 있는 청와대의 경직된 조직 문화가 오히려 인선을 더디게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이후 팀별로 개별 업무만 진행할 뿐 업무 정보 교류가 거의 되지 않고 있다”며 “결국 박 대통령과 김 실장만 바라보면서 일해야 할 판”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청와대 인선 과정은 친박 내부에서도 불만을 사고 있다. 친박 중진인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0월31일 공공기관장 인선과 관련해 “정권 출범에 기여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인사까지 무리하게 인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며 “장고 끝에 악수를 둘 수 있다”고 박 대통령 등 청와대의 인선을 정면 비판하고 나서 이목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곪았던 환부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외부로부터는 공정 인사 논란, 내부로부터는 자기 사람을 챙기지 못한다는 비난까지, 청와대의 인선 스타일이 다시 도마에 올라 있다.  

 

청와대가 새누리당 눈치를 본다?  


   
최경환 원내대표 ⓒ 시사저널 이종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경남 거제 출신에 경남고를 졸업한 점을 들어 최근 PK(부산·경남) 인맥이 잘나간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이는 김 실장과 연결 지으려는 억측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여권에서는 대구고 인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TK(대구·경북)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대구고 출신 친박 실세로 알려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있다.

최근 검찰로부터 배임 혐의를 받으며 사실상 사퇴 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이석채 KT 회장의 후임을 둘러싼 이야기가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 가운데 이 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한 인사가 대구고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 내정 이후 서울중앙지검장 교체설도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역시 대구고 출신인 최재경 대구지검장이 거론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임환수 서울지방국세청장도 대구고 출신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새누리당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혼자만의 힘으로는 향후 정국을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이고, 여기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3선 의원 출신으로 경남도당위원장 등을 지낸 김기춘 실장의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존재로 최 원내대표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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