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제통’ 시대 열렸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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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장성 인사 집중 분석…박지만 동기들 요직 포진

“이명박 정부는 형님 인사로 만사형통, 박근혜정부는 동생 인사로 만사제통.”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10월28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국정감사(국감)에서 한 말이다. 최근 군 장성 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육군사관학교(육사) 동기들이 핵심 요직에 포진한 것을 두고 이명박 정부 때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만사형(兄)통’에 빗대 ‘만사제(弟)통’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국방부에서 열린 이날 국감에는 최근 군 정보기관 수장으로 임명된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 회장의 육사 동기인 이 사령관은 고등학교(서울 중앙고)도 박 회장과 함께 다니는 등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박 회장과의 친분과 관련해 ‘친하냐’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이 사령관은 “친하게 지낸다”고 밝혔지만, 이어 계속된 ‘인사를 부탁한 적 없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적 없다”고 일축했다.

ⓒ 시사저널 포토
‘박지만과 친하면 잘나간다’ 소문

별들의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정부는 10월25일 올해 후반기 군 장성 인사를 단행했다. 9월25일에 있은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 인사의 후속 조치다. 이로써 박근혜정부의 첫 번째 군 지휘부 인선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수장이 될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중도 하차하고 이전 정부의 장관이 유임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군이 8개월여 만에 체제 정비를 끝낸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군 인사 발표가 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면서 국가관과 안보관이 투철하고 통합 작전 수행 능력과 덕망, 리더십을 고루 갖춘 우수자를 선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주목받는 부분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의 육사 37기 동기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박 회장은 1977년 육사에 입교했는데, 그가 생도 3학년일 때 10·26 사태가 일어났다. 그의 동기들은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나뿐인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정권의 감시 대상으로 전락한 박 회장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1981년 2월 육군 소위로 임관했지만 그의 군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대위로 전역한 후 군과의 인연은 사실상 끊어졌다.

그런 박 회장의 군 경력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아버지에 이어 큰누나가 대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육사 동기 모임에 참석한 일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동기 중에서 누구와 가깝게 지낸다는 얘기가 입길에 오르내린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군 사회에서는 박 회장과의 친분을 은근히 내세우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박지만과 친하면 잘나간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럴까. <시사저널>은 지난 1년 동안 발표된 군 장성 인사 전체를 집중 분석했다. 최근에 발표된 올해 후반기 인사 명단을 살펴보면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한 육군 장성은 모두 여섯 명이다. 이 중에서 절반인 세 명이 박 회장의 육사 동기들이다. 올해 4월 전반기 인사에서는 네 명 중 세 명, 지난해 10월 후반기 인사에서는 다섯 명 중 두 명이 37기였다. 세 차례 진행된 인사에서 중장으로 진급한 15명 중 8명이 박 회장의 육사 동기인 셈이다. 이 기수가 중장 진급 시기이기는 하지만 다른 기수에 비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해 후배인 38기에서 김용현 수방사령관 한 명만 중장으로 진급한 것을 두고 37기가 너무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수 내 선두 주자로 합동참모본부(합참) 작전부장을 맡으며 진급 코스를 밟아온 김 사령관 이외에 다른 38기들은 한 기수 선배들이 중장 자리를 꿰차는 바람에 비집고 올라갈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1977년 육사 입교식에 참석한 뒤 육사 생도 복장을 한 박지만 회장이 큰누나인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통해 군 핵심 요직 포진

군 인사에서 육사 37기가 부각되는 이유는 중장 진급자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들 중에서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가 이뤄진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동기 중에서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아온 신원식 중장은 이번에 합참 내에서 핵심 보직으로 꼽히는 작전본부장을 맡았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부산 동성고를 나온 그는 지난해 10월 후반기 인사에서 일찌감치 중장으로 진급해 군단장 보직인 수방사령관에 취임했다. 중장 진급 후 1차 보직으로 군단장을 맡게 되면 보통 18개월 이상 근무한 후 2차 보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런데 신 본부장의 경우 그 기간이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당히 이례적인 인사라고 한다. 합참 작전본부장은 한 달 전에 있은 수뇌부 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박선우 연합사 부사령관(육사 35기)이 직전까지 맡았던 자리다. 박 부사령관은 대장 진급 1순위였다.

신 본부장은 박근혜정부의 초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박 대통령 당선 후 경호 책임자로 군 출신이 중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박 회장의 육사 동기들이 주목받았다. 청와대 경호실 경험이 있고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예비역 소장 윤종성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교수와 함께 현역으로는 동기 내 선두 그룹에 있던 신 본부장이 우선 거론됐다. 경호 책임자가 장관급으로 격상되면서 한참 선배인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28기)이 최종 낙점됐지만, 이때부터 육사 37기의 전성시대가 올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이재수 기무사령관의 경우는 또 다른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박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이 사령관에 대해선 중장으로 진급한 올해 4월 전반기 인사 때부터 주요 보직에 기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주특기가 인사 분야로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을 맡고 있던 그가 인사사령관에 임명된 것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기무사령관으로 한 기수 선배인 육사 36기이지만 중장 진급을 하지 못한 장경욱 소장이 기용된 것도 예상 밖이었다. 그런데 10월 후반기 인사에서 장 전 사령관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이 사령관이 차지했다.

국방부는 “직무대리로 운영해왔던 기무사령관에 기무사 개혁과 발전에 좀 더 적합한 이재수 중장을 임명하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4월 전반기 인사 때를 떠올리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장 전 사령관이야말로 대북 정보통으로 기무사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조직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권에서 믿을 만한 인사를 수장으로 앉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4월 전반기 인사에서 이 사령관을 임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민주당의 한 인사는 “당시에도 이재수 중장이 기무사령관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밝혔다.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군 인사에서부터 대통령의 동생과 가까운 친구를 군 정보 기관의 수장인 기무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덜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말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 될 수 있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육사 28기)가 낙마하면서 군 인사가 시작부터 꼬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이전 정부 때와 달리 군 수뇌부 인선을 4월에 하지 않고 9월로 미뤘다. 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여권 인사는 “정부 출범 직후였다면 오히려 얘기가 덜 나왔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사가 정체되면서 잡음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 중장으로 진급한 37기 중에서 전인범 특전사령관은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연합사 부참모장을 맡았던 국제통이다. 군 내 최다 훈·포장 수상자로 알려졌는데 이 중 상당수가 미군이 수여한 것이라고 한다. 전작권 환수 시기, 미국 MD 편입 여부 등 한미 간 군사적 논의 사항이 많아질 것을 대비한 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 연합뉴스
동기 모임 ‘누님회’ 실체는?

박 회장의 동기 중에는 이번에 준장으로 진급한 늦깎이 장군도 있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남재준 국정원장(육사 25기)의 군사보좌관으로 갔던 고명현 준장이다. 진급 대상에 오른 지 8년 만에 별을 달았다. 4년 후배인 41기가 소장으로 진급한 것과 비교하면 진급이 한참 늦었다. 고 준장은 국정원으로 갈 때부터 화제가 됐다. 준장이나 소장이 임명되던 자리에 처음으로 대령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남 원장이 그를 각별히 챙겨 별을 달게 해줬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군에서는 보통 진급 대상에 오른 후 3차 시기를 놓치면 진급이 어렵다고 여긴다. 고 준장의 경우 임기제라는 점에서 여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기는 하다. 임기제는 진급 적기가 지난 인사에게도 진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군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후배 자리를 뺏는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갈수록 자기 사람 챙기기 수단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군 내의 불만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이 군 인사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야권에서도 박 회장이 이번 군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군 인사에 밝은 민주당 관계자는 “박 회장이 친한 동기나 후배를 챙기려고 했을 수 있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이 때문에 인사가 뒤집어진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다만 박 회장을 매개로 한 육사 동기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군 안팎에서는 한때 ‘누님회’라는 모임에 대한 얘기가 떠돌았다고 한다. 박 회장의 육사 동기들이 대통령 당선 이전에 박 대통령을 ‘누님’이라고 부르고 다닌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0월 후반기 인사 때부터 나왔던 얘기라고 하는데, 실체 여부를 떠나 박 회장의 군 인맥이 그만큼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재수 사령관 이외에 박 회장과 특별히 친한 동기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면 단순한 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모임이 존재한다면 당장은 친목 차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사조직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고 친 장성들 줄줄이 진급 


박지만 EG 회장의 육사 동기로 최근 중장으로 진급한 엄기학 군단장은 지난해 10월 북한군의 이른바 ‘노크 귀순’ 때 지휘 라인인 합참 작전부장을 맡고 있었다. 엄 군단장에겐 올해 1월 징계위원회를 통해 견책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지휘관 확인 조치권을 발동해 징계 수위를 ‘징계 유예’로 감경했다. 6개월간 진급 심사에서 배제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이 있었지만 합참 작전기획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엄 군단장처럼 군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작전 지휘의 책임을 물어 징계 처분을 받은 장성들 중 대다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진급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 ‘무늬만 징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현돈 1군사령관도 ‘노크 귀순’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을 맡아 견책 처분을 받았다. 신 사령관도 이후 징계 유예로 감경되고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9월 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에서는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합참 정보작전처장을 맡아 징계 대상이던 이기식 준장이 4년도 지나지 않아 소장에 이어 중장으로 진급했다.


 
 

ⓒ 연합뉴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안보 실세’로 자리 잡은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육사 27기)이 군 지휘부 인사에서는 생각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육사 28기)이 인사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했다는 것이다. 김병관 후보자가 낙마한 직후 유임된 김 장관은 “허수아비 장관은 싫다. 연말 군 인사까지 인사권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김 실장과 김 장관이 밀월 관계가 아닌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른바 ‘김장수 라인’으로 분류되는 박선우 대장(육사 35기)이 9월 인사에서 진급해 연합사 부사령관이 됐지만, 이를 두고 김 실장이 실력 행사를 한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광주제일고를 나와 김 실장의 고향 후배인 박 부사령관은 합참 작전본부장을 맡아 대장 진급 1순위였다는 것이다. 김 실장이 육군참모총장일 때 비서실장을 지낸 황인무 육군참모차장(육사 35기)은 대장 진급 2순위로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 진급에 성공하지 못했다.

모종화 중장(육사 36기)은 1군단장에서 인사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목포고를 나온 모 사령관은 호남을 대표하는 군 인사인 김 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전반기 인사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는데, 한 해 늦게 중장으로 진급해 최근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1년 후배 이재수 사령관의 후임이 됐다.

올해 10월 후반기 인사에서 육군과 해군을 통틀어 여덟 명이 중장으로 진급했는데 이들 중에서 호남 인맥은 나상웅 3군단장 한 명뿐이다.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목포 문태고를 나온 나 군단장은 육사가 아닌 3사 출신(16기)이다. 두 명이 중장으로 진급한 해군의 경우 다섯 명의 후보 가운데 두 명이 호남 출신이었다.

이 중에서 한 명은 중장이 될 것으로 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국방부는 “출신·지역과 무관하게 오로지 능력과 전문성, 인품 및 차기 활용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군 지휘부 인사의 경우 지역 안배를 중요하게 여겨왔다는 점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호남 홀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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