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호’, 거센 풍랑 헤치고 순항할까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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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중단 등 가시밭길 현대그룹 회장 취임 10년 ‘제2기 신경영’ 선포

“‘자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자신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외치는 현대맨이 돼주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말고 긍정의 힘을 믿읍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해마다 임직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다. 현 회장이 ‘긍정의 리더십’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2003년 8월4일 현 회장의 남편 정몽헌 회장이 타계했다.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터라 세간의 충격은 컸다. 그해 10월21일 그동안 경영엔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현정은씨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선임됐다. 현대그룹이 위기에 처해 있던 때에 평범한 가정주부가 파도를 헤쳐나갈 선장이 된 것이다.

‘예상대로’ 지나온 10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취임 직후 시숙인 정상영 KCC명예회장, 2006년에는 시동생인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등과 두 차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2010년에는 현대건설을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넘겨줘야 했다.

현 회장은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취임 직후부터 대북 사업에 힘썼다. 그런데 2006년 10월 북핵 사태로 남북 경협 사업이 존폐 위기에 몰렸다. 당시 현 회장은 “단 한 명의 관광객만 있어도 금강산 관광은 계속하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2008년 7월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그렇게 올해까지 5년이 흘렀다.

ⓒ 현대그룹 제공
10년간 매출 두 배·자산 세 배 성장

현 회장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를 직접 만난 국내 유일의 기업인이다. 지난 8월 고 정몽헌 회장의 10주기 때는 김정은 비서로부터 구두 친서를 받기도 했다. 현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현대그룹은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한국 경제의 발전을 이끌고 남북 간 소통의 물꼬를 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며 “남북 화해와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역사적 사명과 자부심을 가지고 대북 사업 재개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갖은 시련과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정은 체제’ 10년의 경영 성적표는 대체로 ‘우수하다’는 평가다. 그룹 자산은 2003년 8조4590억원에서 2012년 27조5820억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매출도 2003년 5조4830억원에서 11조703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특히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 등 계열사들의 해외 네트워크가 크게 확장됐다. 현대상선은 현 회장이 취임한 2003년 4개 본부, 23개 현지 법인, 57개 해외 지점을 운영했다. 현재는 4개 본부, 26개 현지 법인, 75개 해외 지점으로 늘어났다. 2006년엔 세계 최대 해운 동맹인 ‘G6’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또한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코마, 타이완 카오슝, 부산 신항 등에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용하고 있다. 2014년에는 중국 훈춘 국제물류단지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을 개장할 예정이다.

현대상선은 현 회장이 취임한 2003년 매출 4조5454억원, 자산 5조4438억원에서 2012년 말 현재 매출 8조468억원, 자산 8조9824억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래 해운업계의 극심한 불황으로 현대상선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점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성과라는 분석이다.

현대그룹이 10월24일 그룹 종합연수원 ‘블룸비스타(BloomVista)’를 개관했다. ⓒ 뉴시스
제2기 신경영 ‘현대WAY’ 선언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2003년 20여 개였던 해외 법인 및 지사를 중국·인도 등에까지 60여 개로 확대했다.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브라질 현지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당장 올해 말까지 베트남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해외 법인 4곳과 대리점 6곳을 추가로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주관한 ‘2013년 노사문화 대상’ 심사에서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가장 우수한 기업으로 선정돼 10월23일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 회장은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11년 발표한 ‘2011년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에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선정됐다.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으로 뽑기도 했다.

2010년 노르웨이의 권위 있는 해운 전문지 <트레이드 윈즈(Trade Winds)>는 현 회장을 ‘세계 해운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가운데 18위로 선정했다. 100인에 포함된 한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다. 여성 중에선 가장 앞섰다.

요즘 현대그룹의 고민 역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먹거리’ 발굴이다. 현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 한 해 균형 잡힌 사업 구조와 신성장 동력 발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자”고 당부했다.

현대그룹은 10월24일 경기도 양평에서 1만5000평 규모의 종합연수원 ‘블룸비스타(BloomVista)’ 개원식을 가졌다. 현 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선대 회장님들로부터 이어받은 현대 정신과 ‘인재경영·창의경영·행복경영·신뢰경영’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임직원 모두의 꿈과 공유해야 할 가치, 실천해야 할 역량을 담은 ‘현대WAY’를 정립할 것”이라며 “그룹의 비전을 새롭게 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미래적 시각에서 재편하는 한편 글로벌 전략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10년 제2기 신경영’을 구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이 취임한 이후 10년 동안 현대그룹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지만 긍정의 리더십으로 극복해왔다”며 “제2의 신경영 선포에 따라 앞으로 이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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