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봉급 받으며 일에 쫓기고 회사에 치인다
  • 김민신 인턴기자 ()
  • 승인 2013.11.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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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센터 AS기사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목소리

지난 10월31일 오후 5시30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을 앞길에 세워진 카니발 승합차에서 최종범씨(32)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삼성전자 서비스 천안센터에서 근무했으며, 조사 결과 메신저로 유서를 남긴 후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전날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 회원들에게 메신저를 통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 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최씨는 지난 7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조합 활동을 한 뒤로 극심한 압박을 받아왔다. 그가 소속된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선 의도적으로 일거리를 주지 않거나 표적 감사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9월엔 근무하던 천안센터 사장에게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최씨가 방문했던 고객으로부터 항의가 들어온 게 원인이었다. 사장은 최씨에게 전화로 “○○야 (고객을) 네가 지져불던지 (…)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불던지 그렇게 하든지 해야지. 왜 말이 나오게 하고 애들이 가서 빌게 만드냐”며 험악한 폭언을 퍼부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최씨의 죽음에 대해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며 고인에 대한 책임과 노동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최씨가 평소 월 400만~500만원의 급여를 받았으며, 최씨의 죽음은 개인적인 원인 때문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11월3일 천안시 삼룡동 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AS기사 최종범씨의 빈소에 조문객이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하루 10시간 일해야 한 달 200여만원 벌어

최근 서비스센터 AS(애프터서비스)기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주목받고 있다.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씨앤앰(C&M) 협력업체 직원들은 올해 2월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를 설립해 원청인 씨앤앰에 노동 개선과 시정을 요구해왔다.

씨앤앰은 현재 25개에 달하는 외주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케이블 설치와 철거 및 보수 등 주요 업무를 이 업체들에 위탁한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씨앤앰의 AS기사는 입사 당시 본사에 소속된 정규직으로 채용됐으나 2008년부터 규정이 바뀌었다. 씨앤앰은 케이블 서비스 업무를 단계적으로 외주화하면서 정규직이었던 기사들을 협력업체 소속으로 바꿨다. 당시 씨앤앰은 기사들의 처우를 보장했다고 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올해도 임금은 동결됐고, 노동 시간은 길어졌다. 기름값 및 식대와 자재비 등을 빼고 나면 AS기사의 실급여액은 한 달 평균 200만원 남짓이다. 이것도 하루 10 시간, 일주일에 60~72시간 정도 근무해야 겨우 가능하다.

임정균 씨앤앰 비정규직지부 정책팀장은 “원청이 직접 고용을 해야 맞는 일”이라며 “원청과 협력업체(하청) 사이에서 우리만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를 해오다 조합원들이 투쟁으로 이를 거부하자 협력업체와 마찰이 생겼고, 이로 인해 계속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 협력업체에선 노조에 가입할 사람은 자진해서 그만두라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다른 협력업체는 업무용 차량에 부착된 GPS(위성항법장치) 기록을 조회해 직원들의 퇴근 후 동선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씨앤앰 홍보팀 관계자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근로 개선을 요구한 것은 맞다. 씨앤앰은 올해 8월 말 상생위원회를 열어 50억원을 협력업체에 출자했다”며 “이를 통해 직원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도록 씨앤앰과 협력업체가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아직 협력업체와 AS직원들 간 갈등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자신들은 성의를 다했다는 얘기다.

태광그룹 티브로드 홀딩스(티브로드)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최근 파업을 중단했다. 한 달에 걸친 파업이었다. 그동안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 200여 명은 하루 10시간씩 근무하며 월 15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아왔다. 이들은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티브로드가 서비스센터 사장을 직접 배치해 직원들의 인사 및 노무를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9월27일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좋은 일자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민주노총 주최로 열리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파업 중일 땐 해고 협박 이어져

이에 조합원들은 원청인 티브로드에 근로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곧바로 맞대응이 시작됐다. 티브로드는 파업을 선언한 기술센터 관할 지역에 다른 하청업체 직원들을 일당 20만원을 주고 투입했다. 뿐만 아니라 부분 파업 중일 땐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PDA 접근도 차단했다. PDA는 서비스센터 직원이 사내 전산망을 이용할 때 필요한 기기로, 전산망을 통해 업무를 배분받고 신규 장비를 등록할 수 있다. 즉, 직원들의 생계이자 작업 수단이다. 협력업체는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차단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파업을 하면 즉각 해고해버리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는 9월30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티브로드 본사를 점거했다. 10월1일까지 농성이 이어진 결과 티브로드 및 협력업체와 집중 교섭을 통해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티브로드는 “재정적 지원을 두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참석했다”고 밝혔다. 합의안에 따르면 서비스센터 직원의 연장 근로를 제한하고 임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또 티브로드는 협력업체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사업장을 변경하는 등의 사유가 발생할 경우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하도록 협조하기로 했다.

서비스센터 직원의 문제는 노동 구조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대부분 특수고용 형태로 협력업체에 등록돼 있다. 특수고용직은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개인 사업자 형태로, 정식 근로 계약이 아닌 도급 계약에 의거한다.

서비스센터 AS기사뿐만 아니라 보험모집인, 골프장 캐디, 화물차 운전기사 등이 이에 속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계약 형태는 대부분 사업주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식 근로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은 사업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고, 직원 교육 및 임금도 사업주의 감독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대다수 사업주는 경영상의 이유로 협력업체에 하청을 주고 거기서 직원을 고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협력업체를 통해 직원을 고용하면 원청은 정식 근로자일 때 부과되는 복리후생·산재보험 등의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일반 노동자보다 산재가 34배나 많이 발생하지만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된다”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꾸릴 권리와 산재보험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직원의 죽음이 원청과 협력업체 그리고 직원들의 먹이사슬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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