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통 ‘칼잡이’들의 반격 시작된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1.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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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춘, 윤석열 징계 사건 변호…특수부의 전설 안대희의 ‘입’ 주목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지난 10월21일 서울고검·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검찰과 법무부 수뇌부를 향해 작심한 듯 돌주먹을 날렸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며 직속상관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정조준했다. 대검 감찰본부가 즉각 조사에 나섰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감찰본부는 11월11일 윤 지청장을 중징계(정직)하고 조 지검장에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감찰본부의 ‘찍어 내기 식 표적 감찰’ 의혹이 제기되면서 제2 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검찰이 외부 인사 위주로 구성된 감찰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남기춘 전 서울 서부지검장, 안대희 전 대법관, 윤석열 여주지청장. ⓒ 시사저널 우태윤·임준선·박은숙·연합뉴스
윤 지청장도 다시 한 번 공세에 나섰다. 윤 지청장은 감찰 결과 발표 하루 뒤인 11월1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검 감찰본부가 감찰위원들한테 최소한 징계 혐의자(윤석열)의 진술서는 검토하도록 했어야 했다”며 “법무부 징계위원회는 본인이 출석해 진술할 수 있으니까 거기 가서 하고 싶은 얘기(국감에서 밝혔던 사건 진행 경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최종 징계 여부는 검사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되는데, 윤 지청장은 여기에 직접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적극 소명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윤 지청장이 자신의 징계 사건 변호인으로 남기춘 변호사(전 서울서부지검장)를 선임했다는 점이다. 검사징계법에 따라 징계 대상자는 변호사나 학식과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특별변호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남 변호사는 ‘칼잡이’라고 불릴 정도로 알아주는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무엇보다 남 변호사는 윤 지청장과 함께 특수검사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는 안대희 전 대법관의 직속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태를 특수통 대 공안통의 갈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한 이때, 특수검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OB’가 이 사건에 뛰어든 것이다.

“남기춘과 윤석열은 ‘관리’가 안 되는 검사”

안 전 대법관과 남 변호사 그리고 윤 지청장은 대검 중수부의 업적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2003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불법 대선 자금 수사의 핵심 멤버였다. 세 사람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오른 후 남 변호사를 클린정치위원장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남 변호사와 윤 지청장은 각별한 친구 사이다.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동기로 성격도 비슷해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왔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윤 지청장은 남 변호사보다 8년 늦게 사시를 통과했다. 당시 남 변호사는 평검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이 시절만 해도 일과 후 술자리가 일상화돼 있었다. 부장검사가 배석하게 되면 평검사는 꼼짝없이 참석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남 변호사가 부장검사에게 “오늘은 술자리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가 사시를 통과해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친구가 바로 윤 지청장이었다.

안 전 대법관과 남 변호사, 윤 지청장이 포함된 이른바 ‘안대희 드림팀’은 검찰 내에서 아직까지도 ‘검찰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이들을 ‘삼성에 찍힌 검사’로 말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검사였다. ‘관리’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한 검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안통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라면, 안 전 대법관은 특수통에서 그와 맞먹는다. 윤 지청장도 안 전 대법관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민 검사’라는 애칭을 받은 인물은 안 전 대법관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남 변호사의 윤 지청장 변호는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외압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법무부 징계위원회 위원장은 법무부장관이 맡게 되는데,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윤 지청장이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했던 인물이다. 검찰 관계자는 “징계위원회에서 황 장관과 윤 지청장, 남 변호사가 함께 있는 모습을 생각해봐라. 검찰 후배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이 심판관으로, 수사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인물이 징계 대상자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모양새가 우습게 됐다. 만약 윤 지청장에 대한 징계가 확정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징계 대상자가 ‘안대희 드림팀’ 멤버라면 파문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 안 전 대법관이 윤 지청장을 거들고 나선다면 검찰 조직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은 여전히 이번 사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안 전 대법관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는 이미 검찰을 떠났다. 검찰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내부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맞다. 남 변호사가 윤 지청장의 변호를 맡은 것도 전혀 모르는 일이다. 윤 지청장과 남 변호사가 상의해서 결정한 게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다.

남기춘 “맡은 일만 충실히 할 뿐”

남 변호사 역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남 변호사는 2011년 초 한화·태광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중 과잉 수사 논란이 일자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그러다 지난해 6월 한화·태광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김앤장에 둥지를 틀었으나, 올 10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김앤장을 나왔다.

하지만 법조계 주변에서는 남 변호사가 김앤장의 내부 행태에 반발해 뛰쳐나왔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아직까지 특수검사의 기질이 남아 있는 남 변호사가 초대형 로펌 김앤장과 여러모로 정서가 맞지 않았을 것이란 전언이다.

현재 서울 광화문 인근에 개인사무실을 연 남 변호사는 김앤장을 나온 후 첫 사건으로 ‘절친’인 윤 지청장 사건을 맡게 됐다. 기자가 그의 광화문 사무실을 직접 찾아갔으나, 남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언론과 나눌 얘기가 없다. 맡은 일(윤 지청장 변호)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 다른 어떤 의미도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안 전 대법관과 남 변호사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일선 평검사들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윤 지청장에 대한 징계가 과도하다는 것이 평검사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김선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국정원 수사팀에 대한 정직·감봉 등 징계 건의를 철회하십시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평검사 상당수가 이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조 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나면서 잠시나마 평검사들의 반발이 무마되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특수검사는 검찰의 자존심이다. 그러나 ‘칼잡이’들의 끝은 항상 좋지 않았다. 윤 지청장도 수사를 잘해보려다 결국 이렇게 된 것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하다. 윤 지청장의 성품으로 봤을 때 이번 사태를 유야무야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윤 지청장과 함께) OB들이 나서준다면 일선 검사들의 움직임에도 힘이 실리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특별감찰과 신설 등 감찰부 대폭 강화될 듯

수사 외압 문제가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김 내정자는 11월13일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상명하복의 검찰 조직 질서가 모두 무너지고 한 사람의 소신이라는 명분으로 조직 전체가 위기로 몰렸다. 검찰총장이 되면 내부 기강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대로 김 내정자의 조직 장악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 내정자는 이미 지난해 말 한상대 전 총장의 불명예 사퇴로 이어진 ‘검란(檢亂)’ 당시 검찰총장 직무대리를 맡아 조직을 추스른 경험이 있다. 김 내정자의 깐깐하고 엄격한 ‘군기반장’ 스타일 때문에 벌써부터 검찰 내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 내정자가 정식으로 검찰총장에 취임하면 조직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외부 수사보다는 내부 감찰이 더 강화될 것이란 얘기가 검찰 조직원들을 자극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수사를 확대하기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방식은 과잉 수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몰라도, 수사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김 내정자가 총장이 되면) 특별감찰과가 신설되는 등 감찰부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감찰의 일상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명하복 체계는 굳건해지겠지만, 검사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 윤 지청장에 대한 징계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검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 ⓒ 시사저널 박은숙
11월13일 열린 국회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외압-항명’ 파동은 뜨거운 감자였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소속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은 검찰이 감찰위원들에게 미리 짜놓은 ‘각본’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이진한 2차장 검사에 대해서는 ‘비위 사실 없음’, 윤 지청장과 박형철 공공형사수사부장에 대해서는 공란으로 기록된 프린트물을 감찰위원들에게 배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감찰위원장인 손봉호 서울대 명예 교수는 “(프린트물에) 어떤 의견도 제시되지 않았다”며 윤 지청장 징계 각본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감찰위원회(감찰위) 운영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손 위원장은 조 지검장의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수사 외압 발언과 관련한 감찰 자료를 요청했지만 감찰본부는 이를 묵살했다. 이는 ‘감찰본부는 감찰위가 요구하는 자료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는 대검 감찰위 운영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즉, 감찰위는 가장 중요한 쟁점인 조 지검장의 ‘수사 외압’ 부분에 대해 아무런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조 지검장은 무혐의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만약 조 지검장에게 징계를 내리게 되면 외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러면 다음 차례는 황교안 법무부장관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사전에 막기 위해 검찰이 미리 손을 썼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검사징계위원회에서는 윤 지청장이 직접 소명할 기회가 있다. 이때 추가적으로 어떤 얘기가 나오느냐에 따라 징계 결과는 180도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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