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나와 용의 이빨 드러내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3.11.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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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국 NSC’ 본뜬 국가안전위원회 창설

11월13일 오후 중국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장. 일본 언론사의 한 기자가 “이번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국가안전위원회(국가안전위) 설립을 결의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일본이 ‘일본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만들기로 한 데 따른 대응이라고 말한다”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의 반응은 매우 날카로웠다. 친 대변인은 전날 발표된 ‘3중전회 공보(公報)’ 내용을 그대로 옮겨 “중국이 국가안전위를 설립키로 한 목적은 국가 안전 체계와 전략을 개선해 국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곧이어 “당신의 질문 후반부에 ‘함정’이 있는 것 같다. 중국의 국가안전위 설립으로 테러리스트, 분열주의자, 극단주의자 등이 긴장하고 있다. 질문 요지가 일본도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인가”라고 반박했다.

국가안전위로 권력 독점 나선 시진핑

친 대변인은 평소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독설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날 반응은 도가 지나쳤다. 지난 수년간 기자회견장에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외교부 대변인과 일본 기자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지만, 이번처럼 협박에 가까운 반응은 이례적이었다. 새로운 안보 기구 설립이 중·일 간에 긴장 국면을 더욱 심화시키는 현실을 반영한 풍경이었다.

11월12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 자리한 시진핑(가운데) 지도부. ⓒ XINHUA 연합
11월12일 폐막된 3중전회는 개막 전부터 전 세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등 5세대 지도부가 앞으로의 집권 10년 청사진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임기 5년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들은 임기 중 보통 6~7차례 베이징에 올라와 전체회의에 참석한다. 임기 첫해에 열리는 1중전회는 당의 새 지도부를 결정하고, 2중전회는 정부 기구의 구성과 개편을 논의한다. 1년 후 열리는 3중전회에서는 새로운 국가 비전과 정책 방향이 결정된다.

과거 열렸던 3중전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번 회의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1978년 11기 3중전회는 중국 현대사의 분기점으로 손꼽힌다. 이 회의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인 화궈펑(華國峰) 당시 총서기가 주창한 ‘마오 사상을 보호하고 실천한다’는 이론을 배격하고,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상 해방과 실사구시 정신을 통한 개혁·개방’을 당의 기본 노선으로 채택했다. 문화대혁명을 종식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개혁·개방 정책을 국가 통치 이념과 정책으로 결정한 중요한 무대였다.

1984년 12기 3중전회에서는 경제 체제 개혁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농촌에 한정했던 경제 개혁을 도시로 확대해 전면적인 경제 실험에 나섰던 것이다. 1993년 장쩌민(江澤民) 시대의 14기 3중전회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수립에 관한 결정’을 채택해 중국식 시장경제를 완성했다. 2003년 후진타오 집권 후 열린 16기 3중전회에서는 사유 재산을 헌법상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번 3중전회 폐막일에 ‘전면적 개혁 심화에 관한 약간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중국공산당 중앙 결정’이라는 제목으로 공보가 발표됐다. 공보에는 시진핑 체제 10년의 청사진을 5000자로 담았는데, 유독 ‘개혁’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무려 59회나 등장해 제도(44회)·발전(37회)·경제(34회)·당(32회)·사회주의(28회)보다 많았다.

개혁 심화에 초점을 둔 이번 공보는 단순한 회의 결과물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3중전회 결정문을 발표하기 위해 보통 6개월 정도 준비 기간을 갖는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이끌고 각계 최고 전문가가 참여한 25명 안팎인 초안 작성반은 최고 지도부와 수시로 면담을 갖는다. 지방을 순회하며 좌담회를 열거나 민생 현장을 탐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보보다 더 눈에 띄는 사안이 있었다. 국가안전위의 설립이다. 현재 중국은 2000년 설치한 공산당 중앙 국가안전영도소조가 존재한다. 하지만 대외 안보는 중앙 외사영도소조가 책임지고, 대내 안보는 공안부·국가안전부 등이 맡고 있어 권한과 조직이 분산돼 있다. 이런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 국가안보와 관련된 대내외 정책과 군사 정책 등을 수립하고 각 부처의 의견을 조율해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미국의 NSC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국가안전위가 설립되면 국가 안전, 군대, 무장경찰, 공안, 외교부 등 다양한 관련 기관을 통합해 국가안보를 총괄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경제·사회 분야까지 포괄하는 공룡 기구가 될 거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국방대학 쉬후이 교수는 <신경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의 대전략에는 국가 안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정보, 사회 안정 등 전 방위 안전이 포함된다”며 “국가안전위는 국방·안보기관, 공안 조직, 경제 기구까지 아우르는 조직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국가안전위가 당·정 상설 기구 중 공산당위원회, 국무원,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에 이어 다섯 번째 거대기구가 될 것’이라는 글이 떠돌다 삭제됐다.

이 시나리오처럼 진행된다면 시진핑 총서기는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시 총서기가 당·정·군의 3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국가안전부·공안부 등은 리커창 총리와 멍젠주 정법위원회 서기가 관할해왔다. 시 총서기가 국가안전위 주임을 맡게 되면, 멍 서기와 판창룽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좌우로 두고 전권을 휘두르는 체제로 바뀐다.

중국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는 일본

이미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툴 만큼 성장한 중국의 입장에서 안보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대응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러나 일본과는 댜오위다오에서, 동남아 국가들과는 남중국해에서 해상 영유권을 놓고 분쟁하는 민감한 시기에 국가안전위의 설립을 들고 나온 것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일본은 지난 11월7일 중의원에서 일본판 NSC 창설 법안을 통과시키고 내년 초 출범을 추진 중이었던 터라 중국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3중전회 폐막일부터 중국의 속내를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며 견제에 들어간 상태다.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벌어진 친강 대변인과 일본 기자의 신경전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교도통신>은 국가안전위가 “격화되는 소수민족의 독립 움직임, 극심한 사회적 격차 등 대내 문제에 대응하고 대외적으로 첨예한 해상 영유권 갈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중국 위협론’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일본이 앞다퉈 NSC와 유사한 조직을 신설함으로써 우리에게도 적극적이고 세심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북핵 문제, 중·일 분쟁, 한일 갈등 등 동북아 정세의 긴장이 어느 때보다 드높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을 내던지고 용의 이빨을 드러낸 중국. 국가안전위 설립은 그 행보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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