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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은 응답하라

1990년대 복고풍 대중문화 열기 X세대 영향력 여전

하재근│문화평론가 ㅣ 승인 2013.11.20(Wed) 1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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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가 주목받고 있다. 2012년 <건축학개론>과 케이블TV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이례적인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 tvN <응답하라 1994>가 전작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면서 1990년대(이하 90년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 크게 보면 1990년대를 포함해 그 전 시기까지 조명받는 복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MBC <놀러와>와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기로 시작된 7080 복고의 흐름이, <응답하라 1997>을 기점으로 90년대 복고로 확장된 양상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90년대의 상황을 세세하게 그리면서 당시 시대상에 전면적인 관심이 쏟아진다.

패션계에선 90년대에 인기 있었던 브랜드나 디자인의 재출시도 기획되고 있다. 요즘 홍대 앞이나 강남역 지역에서 가장 뜨는 클럽 중 하나가 90년대 복고 클럽이다. 홍대 앞에선 주말마다 90년대 복고 클럽 앞에 20대까지 줄을 서고 있다. 토크쇼에선 90년대 스타가 나와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 tvN 제공
1990년대, 현재가 시작된 시점

최근엔 <라디오스타>에 베이비복스의 간미연이 나와 90년대 당시 H.O.T 문희준과 그 팬덤 사이에 있었던 일을 한참 이야기했다. 작가나 MC들이 그 시절 이야기를 유도하고 출연자도 그런 추억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건, 시청자가 과거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스타들이 뜨다 보니 1세대 아이돌 god의 컴백이 결정됐고, H.O.T·젝스키스·god·NRG에 소속됐던 연예인들이 뭉쳐 ‘핫젝갓알지’로 데뷔하기도 했다.

과거의 것들이 다시 조명받는다는 점에선 7080 복고와 90년대 복고가 비슷하다. 하지만 90년대 복고엔 그 이전 복고와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20대 등 젊은 세대들이 뜨겁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보통 복고는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90년대 복고는 단순한 향수나 추억에 그치지 않는다.

90년대에 한국 사회는 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일단 그 이전까지 전개되던 산업화·민주화 흐름이 일단락됐다. 한강의 기적과 군사정권의 종식이 나타난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냉전이 끝났고, 국내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공포심이 완화됐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인이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X세대’다.

배고픔을 모르고, 전쟁에 대한 공포도 없고, 이념에 대한 강박도 없으며, 어려서부터 서구 문화를 접하며 자라났고, 욕망을 향유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젊은이들. 이들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에 따라 ‘신세대론’이 나타나게 된다. 부를 과시하며 향락적인 생활을 일삼는 졸부 2~3세도 대거 나타나 ‘오렌지족’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신세대와 오렌지족 그리고 오렌지족을 따라 하려는 ‘낑깡족’ ‘감귤족’ 등에 의해 한국은 본격적인 소비 사회로 진입한다. 백화점 쇼핑이 본격화되고, 10만원짜리 브랜드 청바지가 인기를 끌었으며, 1999년 말에는 급기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까지 등장했다.

신세대의 영웅은 서태지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한국 가요계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후 댄스음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마침내 H.O.T·젝스키스·SES·핑클 등 아이돌 전성시대가 열리고 한류까지 시작됐는데, 이 흐름에 아직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즉 90년대는 현재의 직접적인 기원인 셈이다. 바로 이것이 20대가 90년대의 것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클럽 문화도 90년대에 처음 시작됐다. 그 이전까지는 나이트클럽이 청춘의 상징이었다가 90년대에 락카페를 거쳐 클럽 문화가 청춘을 대표하게 됐고, 이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질투> <사랑을 그대 품 안에> 같은 트렌디 드라마가 처음 나타난 것도 90년대였다. <결혼이야기> <접속> 등을 통해 한국 영화가 현대화되기 시작했고, <쉬리> 같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도 출현했다. 오늘날과 같은 조직적이면서 광적인 팬덤 문화도 그때 나타났다.

디지털 통신, IT 문화도 90년대에 시작됐다. 파란 화면의 PC통신에서 출발한 컴퓨터통신은 90년대 말엔 초고속인터넷으로 발전했다. 휴대용 통신기기는 90년대에 삐삐, 시티폰을 거쳐 마침내 휴대전화 시대를 열었다. 인터넷 벤처 붐, IT 신경제도 90년대에 나타난 현상이다.

1990년대산이 주도하는 시대

최진실·신은경 등이 X세대 스타였는데 이들에겐 모두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자 중에선 차인표가 영어 쓰고, 부드럽고, 근육을 키운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했고 박진영은 욕망에 충실한 B급 가치관을 제시했다.

90년대에 시작된 패러다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 X세대들이 아직까지도 연예계를 주도한다. 이병헌·정우성·유재석 등을 구세대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JYP의 박진영, YG의 양현석처럼 한류를 주도하며 아이돌 가요계의 최전선에 있는 것도 X세대들이다. SM에선 90년대에 데뷔한 유영진이 음악 스타일을 주도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여전히 90년대의 흐름이 계속되는, 즉 ‘장기 90년대’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90년대 콘텐츠는 현재의 원형으로서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90년대 연예인들이 ‘아이돌의 조상’ ‘힙합의 조상’ ‘R&B의 조상’ 식으로 TV에서 끊임없이 각광받는 이유다.

게다가 현재보다 더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 대중문화는 르네상스를 겪는다. 특히 90년대는 대중문화의 폭발기였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개성을 가진 콘텐츠와 신인들이 나타났고, 대중문화 시장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그에 반해 2000년대에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산업화로 말미암아 문화적 획일화라는 문제가 나타난다. 정신없이 발전하는 디지털 문명이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90년대는 지금 시대의 연장 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특성도 남아 있는 문화적 복합성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다.

한때 기성세대를 놀라게 했던 X세대도 어느덧 기성세대가 됐다. 이들도 추억을 돌아볼 나이가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90년대가 향수를 선사하는 복고의 중심에 서게 된 측면도 있다. 90년대에 세상을 흔들었던 X세대는 인구, 구매력, 강렬한 문화적 욕구 등으로 여전히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들이 주도하는 90년대 복고의 힘도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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