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일으켜 세워라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11.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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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러 직업군 가운데 검사만큼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직업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 검사들의 조직인 검찰의 모양새가 요즘 말이 아닙니다. 호기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얼마 전 학교 후배인 현직 검사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났는데 그가 했던 말도 이런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검란(檢亂)이니 어쩌니 하며 여러 차례 혼란을 겪었지만 지금처럼 힘든 때도 없는 것 같다.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 한번 제대로 해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이젠 힘이 다 빠졌다. 냉·온탕도 이런 냉·온탕이 없다.”

그의 말대로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대기업들을 몰아붙이면서 기세를 올렸던 검찰이 요즘은 오히려 수세에 몰려 있는 형국입니다. 전임 총장이 ‘찍어 내기’ 논란 속에 사퇴한 이후 두 달 가까이 수장의 자리가 비면서 리더십 공백 사태까지 겪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팀장 징계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두고 잡음이 쏟아집니다. 징계 문제를 다룬 감찰위원회에 참가했던 일부 감찰위원이 “감찰위원회에서는 윤석열 전 팀장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상당한 파문도 일었습니다. 감찰본부의 이른바 ‘표적 감찰’ 의혹이 도마에 오른 것입니다. 수사 외압 문제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수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의혹만 더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그야말로 수난의 연속입니다.

상황이 이렇긴 하지만, 따져보면 검찰로서도 억울한 감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고를 친 국가정보원은 태연한데 그것을 수사하던 검찰만 오히려 궁지에 몰려 있으니 말입니다. 검찰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검찰을 흔드는 외풍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찰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지탄받는 정치검찰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검찰이 당당하게 바로 서지 못하면 끊이지 않는 범죄 행위, 특히 국가 전체를 수렁에 빠뜨리는 권력형 비리를 끊어내는 데 답이 없습니다. 검찰이 중심을 잃으면 나라가 덩달아 흔들리게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내놓았던 검찰 개혁 공약을 기억합니다. 지금 대통령이 되어 있는 박근혜 후보는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9개월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검찰 개혁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활동은 공약 이행에 적극 나서야 할 새누리당이 오히려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고

말았습니다. 대선 때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던 검찰 개혁이 말 그대로 공중에 붕 떠버린 상태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검찰 개혁 공약이 그저 표를 얻기 위해 띄워 올린 애드벌룬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습니다.

검찰 개혁은 결코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더 미루다간 검찰의 명예도 사기도 다 망가질 수 있습니다. 검찰이 소신 있게 비리·범죄와 맞서 싸울 용기와 체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개혁의 고삐를 제대로 당겨야 합니다. 검찰의 운명이 정부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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