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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이석기를 도와줘?

‘RO 모임 녹취록’ 조작 논란…재판부 증거 채택 여부 주목

엄민우 기자·김민신 인턴기자 ㅣ mw@sisapress.com | 승인 2013.11.27(Wed) 17: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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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양대 이슈는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의혹과 통합진보당(통진당) 정당 해산 청구를 둘러싼 논란이다. 두 굵직한 사안에 관한 뉴스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경쟁하듯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윤석열 전 수사팀장의 경질과 중징계로 일단락되는 듯하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는 교체된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수사팀에서 “추가 공소장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으면 집단 사표를 쓰겠다”며 지휘부에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새 총장(김진태)이 온다 해도 해소될지 의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사퇴하지 않는 한 법무부에 대한 검찰의 불신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9월5일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수원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후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작된 녹취록, 증거 능력 상실”

법무부 등 박근혜정부가 궁지에 몰리는 것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뿐만이 아니다. 통진당 이슈 또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국정원의 ‘RO 모임 녹취록’ 조작 여부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시사저널이 인터뷰한 법조인들 중 상당수는 국정원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녹취록이 훼손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향후 재판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녹취록을 작성한 이는 국정원 직원 문 아무개씨로 이전에 녹취록을 작성해본 경험이 없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5월10일에 있었던 ‘RO 모임’ 녹취록을 이틀 후인 12일에 작성했고, 5월12일 합정동 모임 녹취록은 나흘 후인 5월16일 완성했다. 그는 11월15일 열린 3차 공판에서 “곤지암 모임 녹취록에서 112곳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또 합정동 모임 녹취록과 관련해서도 일부 수정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변호인단은 “이는 실수가 아니라 녹취록을 의도적으로 변조해 내란 음모를 한 것처럼 몰고 간 것”이라고 몰아쳤고, 국정원 측은 “잘 들리지 않고 부정확해서 남겨뒀던 부분과 잘못 들은 단어 일부를 수정한 것”이라고 받아쳤다. 녹취록은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다.

법조인 및 법학자 중에는 해당 녹취록이 증거 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가 많다. 특히 녹음 파일 원본의 일부가 지워졌기 때문에 국정원으로서는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 오 아무개씨는 “당연히 녹음 파일이 증거가 돼야 하지만, 편의상 녹취록으로 대체해서 제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파일이 원본과 다르거나 변조됐다면 증거 능력을 잃게 된다. 또 녹취록 작성 시 들리지 않는 부분은 점으로 표기하게 돼 있는데 그것을 굳이 다시 듣고 작성했다는 것도 법적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 사립대 법대의 장 아무개 교수 또한 오 변호사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장 교수는 “녹취록은 결국 원본 파일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원본과의 일치성이 중요하다. 원본과 불일치할 경우 문제가 된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인 박주민 변호사 역시 “디지털 기기 증거는 해시값(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수치)으로 원본 여부를 따지는데, 해시값이 다르다는 건 원본 파일을 수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위조 가능성이 뚫렸기 때문에 증거 채택 확률이 낮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와 상반되는 주장도 있다. 원본 파일이 없고 녹취록이 수정됐다고 해서 무조건 증거 능력을 상실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최진녕 변호사는 “녹취한 파일을 일부러 지운 게 아니라면 원본이 없다고 해서 증거 능력을 갖지 못한다고 할 수 없다”며 “이후 녹취한 내용이 제대로 됐는지, 원본이 없어지게 된 경위나 이런 것들을 따져 다른 문제가 없으면 증거 능력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 녹취록을 작성하다 보면 실수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이번 녹취록 수정의 경우 특별히 이해관계가 없다면 의도적으로 왜곡할 가능성은 작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녹취록 수정 여부와 더불어 녹취를 한 주체 자체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재화 변호사는 “제보자가 RO의 회원 자격으로 들어갔으나 활동을 중지하고 국정원과 접촉해 국정원 장비를 갖고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은 회원이 아니라 국정원 대리인 자격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경우엔 국정원 직원으로 봐도 무관하고 결국 제3자가 불법적으로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주민 변호사 역시 “예전 판례를 보면 수사기관에 의해 지시를 받거나 연계된 사람이 녹취한 건 증거 능력이 없다는 판결이 있다”며 녹음 파일의 증거 능력 자체가 부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진녕 변호사는 “제보자가 이석기 의원의 초대를 받아서 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보자가 처음에 국정원에 제보를 하니 국정원이 ‘녹음 한번 해보라’고 하며 녹음기를 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원본 없어도 증거 능력 인정 가능” 반론도

수정된 녹취록의 증거 능력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녹취록의 증거 능력이 상실될 경우 헌법재판소(헌재)에서 다루고 있는 통진당 해산 심판에 여파가 미칠 것이라는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판사 출신 오 변호사는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는 이석기 의원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지 않으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녕 변호사 또한 “이석기 사건 판결이 헌재의 위헌 정당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헌재가 쉽게 가처분 결정을 내리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국대 법대 한상희 교수는 재판 결과가 헌재에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석기 재판에서는 증거 채택이 안 된 것들이 위헌 정당 심판에서는 될 가능성도 있다. 절차와 소송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불법 취득한 증거물이 채택될 수 없는 경우는 형사재판에 한해서다.”

논란을 유발한 국정원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내란 음모는 민주주의, 법치주의와 직결된 심각하고 엄숙한 사안인데 (국정원이) 여기에 대해 준비하는 자세를 보니 허탈하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국정원이 수사권을 갖겠다고 주장하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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