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권력', 검찰과 맞짱 뜰 힘갖추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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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폭력 기구다. ‘폭력’이 ‘합법’이라는 사뭇 이질적인 개념과 만나게 된 배경에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있다. 공공의 질서를 수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불법적 폭력’으로부터 시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공동체 차원의 합의다. 정치학 교과서에서는 그 전제가 민주적 통제라고 가르친다.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은 시민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결코 합법적일 수 없다.

경찰은 시민과 가장 밀접한 권력기관으로 꼽힌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별칭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특히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기관이 제 몸집을 불려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경찰과 같은 국가 핵심 기관의 권력 구조를 면밀히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시사저널은 2011년 경감 이상 경찰 간부 5953명의 명단을 입수해 분석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최근 경찰의 권력 구조에서 경찰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경찰 간부의 핵심 세력이었던 간부후보생 및 고시 특채 출신은 상대적으로 퇴조하는 기미를 보였던 것이다. 이후 2년이 지나는 사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8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간부 후보 출신 총경 이상 고위직은 30% 안팎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관통하는 6년의 시간 동안 경찰 권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 흐름을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시사저널은 유대운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최근 6년간 총경 이상 승진 현황’ 자료를 입수했다. 경찰청이 작성·제출한 이 자료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총경 진급자 417명, 치안감 진급자 63명, 치안정감 진급자 25명, 치안총감 승진자 5명의 연령·승진 일자·출신 학교·입직 경로 등이 기록돼 있다. 총경과 치안감 사이 계급인 경무관 승진 정보는 입수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

총경은 흔히 ‘경찰의 꽃’으로 불린다. 각 지역 경찰서장, 경찰청 과장급 간부 등이 총경의 몫이다. 고위직 진출의 중요 교두보이기도 하다. 치안감 이상의 경우 경찰의 최고위 핵심 계급이다. 결국 총경 및 치안감 이상 계급의 승진 정보는 경찰의 ‘근(近)미래 권력’과 ‘현재 권력’의 변화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유컨대 2011년의 경감 이상 간부 분석이 경찰 권력이라는 ‘호수’ 전체를 탐색하는 일이었다면, 총경 이상 진급자 분석은 그 호수의 ‘물갈이’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인 셈이다.

경찰 내 권력 지형과 직결되는 요소가 ‘입직 경로’다. 입직 경로란 경찰공무원이 채용된 경로를 말한다. 국가가 경찰공무원을 채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순경 공채’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채용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조직의 말단인 순경부터 경찰 생활을 시작한다.

이와 달리 간부로 경찰 경력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간부후보생’ 제도가 대표적이다. 시험에 합격하면 1년간 교육을 받은 후 바로 경위로 임관된다. 사법·행정·외무고시 합격자를 경정으로 채용하는 ‘고시 특채’도 있다. 과거에는 경사·경위·군 특채 등 예외적인 입직 경로를 통해 경찰공무 원을 일부 충원하기도 했다.

입직 경로는 경찰 간부의 승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신라 시대의 골품제와 같이 암묵적인 신분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간부로 경찰 경력을 시작하는 ‘경찰대 출신’ ‘간부후보생’ ‘고시 특채’가 경찰 권력의 성골 내지는 진골로 꼽힌다.

우선 10만 경찰 조직 구성원 전체의 입직 경로 분포부터 확인해보자. 경찰청이 유대운 의원실에 제출한 ‘입직 경로에 따른 계급별 경찰관 인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순경 공채 등 일반적인 입직 경로를 거친 경찰관이 경찰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체의 95.8%다. 경찰대 출신은 2.8%, 간부후보생 출신은 1.3%에 불과하다.

하지만 총경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찰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45.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특히 고위직 진출의 ‘입구’에 해당하는 총경·경무관 계급에서 각각 45.6%, 53.5%의 높은 점유율을 보인다는 점이 주목된다. 30% 안팎인 간부후보생 출신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한다.

승진 인사에서 경찰대 출신 증가세 뚜렷

더욱 크게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최근 6년간의 승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위 간부로 새로 유입되는 경찰대 출신의 증가세가 뚜렷했다는 점이다. 총경의 경우 2008년만 해도 전체 진급자 중 35%를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후 50% 안팎대로 훌쩍 뛰었다. 반면 간부후보생 출신은 40% 중반에서 20% 초반까지 내려앉았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2013년 인사에서 고시 특채 출신의 수가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치안감·치안정감 승진의 경우 최근 6년이 매우 의미심장한 시기였다. 1980년대 중반 배출된 경찰대 1, 2기가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2007년 윤재옥 전 경기지방경찰청장(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처음 스타트를 끊은 이래 본격적으로 경찰대 출신의 ‘진격’이 시작된 것이다. 2010년 치안정감 승진, 2011년 치안감 승진에서 전체 중 절반을 차지하며 힘을 과시했다. 이에 따라 간부후보생 출신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크게 좁아지는 추세다. 전체 진급자 중 70~80%를 차지하던 데서 해가 갈수록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은 진급 속도도 월등히 빠르다. 6년간 진급자의 승진 당시 평균연령을 입직 경로별로 비교해보면 차이가 크다. 총경 진급자의 경우 간부후보생 출신이나 일반 공채 출신의 경우보다 5~6세 젊은 45.2세다. 치안감·치안정감 승진에서는 다른 입직 경로 출신의 경우 50대로 넘어간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은 40대 후반이 평균이다. 특히 치안감 진급자(48.1세)와 치안정감 진급자(48.2세)의 승진 당시 나이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경찰대 출신일수록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출신 대학은 어떨까. 동국대와 한국방송통신대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국 각지의 대학에 분산돼 있다. 이 때문에 경찰대의 위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총경 진급자의 경우 경찰대 출신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경찰대 출신 경찰공무원들은 여타 경우와 달리 입직 경로 면에서도, 출신 대학 면에서도 공통의 정체성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대 출신 독주에 일선 경찰 불만 커

결국 경찰 고위 간부 승진 현황 분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현재 경찰의 권력 구조에서는 공통의 입직 경로와 출신 대학 ‘성분’을 공유하는 경찰대 출신의 영향력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경찰대 초기 기수들이 경찰 최고위급으로 대거 진출했다. 전체 총경 계급 진급자 중 경찰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진다.

경찰대 권력이 ‘위’로도 ‘옆’으로도 팽창하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은 상당하다. 20년 넘는 경력의 한 경찰관은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인사·기획 등 경찰 조직의 핵심 기능을 경찰대 출신들이 장악한 지 오래”라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여러모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찰대 출신이 조직의 ‘엘리트’로 대접받으며 고위직을 독점해나가는 데 반해, 순경 공채 등 일반적인 입직 경로를 밟은 경찰관은 고위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지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2012년도 최종 계급별 경찰관 정년퇴직 현황’에 따르면, 순경 공채 출신 정년퇴직자 1324명 중 최종 계급이 경위인 경우가 954명(72.1%)이었다. 경찰대나 간부후보생 출신이 임관하자마자 얻게 되는 계급이 순경 공채 출신 70%의 퇴직 계급이다. 경감 퇴직자는 285명(21.5%), 총경 퇴직자는 불과 13명(1%)이었다.

유대운 민주당 의원은 “경찰대 출신들은 사회의 우수 인력이다. 이들이 경찰의 수준을 높였다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간부직이 특정 대학 출신에 편중되는 것은 조직 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실제로 일반 구성원의 사기 저하, 조직 결속력 약화 등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 집단의 ‘끼리끼리 문화’ 또는 폐쇄적 소통 구조 등으로 경찰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이 전국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찰 복지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 직장에서 승진 기회가 많다’는 항목에 57.3%(1만2661명)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유대운 의원실이 일선 경찰관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경찰의 발전과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분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이 ‘직급 구조 문제로 인한 하위직 경찰의 의욕 저하’(51.6%)였다.

최근 6년은 치안정감까지 진급한 경찰대 출신들이 또 다른 권력집단으로 배출된 시기이기도 했다. 50세 전후의 이른 나이에 경찰 권력의 정점에 접근한 후 ‘제2의 인생’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대 1기 입학·졸업 수석 출신으로 가장 빠른 진급 속도를 보였던 윤재옥 전 청장은 19대 총선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서천호 전 경찰대 학장(경찰대 1기)은 국가정보원 제2차장, 박종준 전 경찰청 차장(경찰대 2기)은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경찰대 출신들이 본격적으로 경찰 권력을 넘어 입법·행정 권력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다.

경찰대 출신, 권력집단화 가능성 충분

수도권 소재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감은 “앞으로는 ‘경찰 권력’이라기보다는 ‘경찰대 권력’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경찰대 출신이 막강한 권력집단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력집단인 검사의 수가 2000명 상당이다. 경찰대 출신 경찰의 수는 이미 3000명을 넘는다. 이들의 손에는 1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경찰 조직이 있다. 만약 향후 국정원 개혁·검찰 개혁 과정에서 국내 정보 파트·수사권 등이 경찰로 넘어오게 된다면, 경찰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경찰대 출신의 ‘권력집단화’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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