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같은 매형 버리고 제 갈 길 가나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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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이창석, 전두환 걸고넘어진 이유

‘매형’ 전두환 전 대통령과 ‘처남’ 이창석씨는 각별한 사이다. 매형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처남은 철강업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성공 신화를 쌓았다. 불과 몇 년 전에 동력기사로 취직한 이씨는 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위치에 올랐고,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사업은 말 그대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 1985년 매출액 519억원에 이르는 알짜배기 회사를 움켜쥐었다. 매형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처남은 ‘금고지기’로 불리며 전씨 집안의 살림을 도맡았다. 전 전 대통령은 물론 그의 자녀들 재산을 챙기는 일까지 이씨 몫이었다. ‘전두환 비자금’ 수사가 있을 때마다 검찰에 불려다녔다. 매형과 처남은 늘 한 몸처럼 같이 있었다.

이번에도 칼날이 이씨를 향했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에 나선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가까운 친인척 가운데 유일하게 구속 상태에 있는 인물이 바로 이씨다. 그는 경기도 오산 땅을 매각하면서 124억원 상당의 양도세와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걸까. 환갑이 지난 처남이 팔순이 넘은 매형을 걸고넘어졌다. 이씨는 오산 땅의 실소유주가 전 전 대통령이라고 시인했다. 그의 변호인은 “오산 땅은 전 전 대통령의 장인(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이 연희동에 증여하거나 상속한 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증거로, 오산 땅의 70%는 연희동 소유라는 내용을 담아 2006년 9월에 작성한 이규동 회장의 유언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가 8월19일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구치소로 향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추징금으로 낼 돈이 없다던 전 전 대통령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소리로 들렸을 수 있다. 그동안 매형을 끔찍이도 챙겼던 이씨가 왜 이런 얘기를 끄집어냈을까. 그와 가깝게 지내온 한 인사는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추징금 환수 수사의 불똥이 튀어 자신만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8월19일 밤에 구속된 그는 9월26일 변호인을 통해 보석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10월10일 보석 신청을 기각하면서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 ‘죄증을 인멸할 염려’ 등을 사유로 제시해 이번 사건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짐작케 했다.

오산 땅의 주인이 연희동(전두환·이순자 부부)이라고 실토한 것은 결국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씨가 자신의 혐의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로 보인다. 그의 변호인은 “오산 땅 매각 과정에서 계약서가 두 차례 작성된 것은 실제 소유자를 연희동 쪽으로 바꾸기 위한 것으로, 다운계약서를 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 가운데 다운계약서 작성 부분을 빼고 양도세가 발생하지 않는 임목비(林木費) 허위 계상 부분만 공소 사실에 남겨달라며 공소장 변경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금액 다툼이 있으니 금액을 줄여달라는 쪽으로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보이나 기소한 내용과 달라 동의하긴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추징 이행 후 재판 받는 게 유리”

이러한 상황에서 이씨가 재판을 뒤로 미루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변호인은 “이씨가 구속된 배경은 전두환 일가의 추징금 징수와 관련이 없지 않다. 전 전 대통령 측에서 연말까지 170억원을 내기 위해 준비 중인데 여기에 피고인도 함께 준비할 수 있도록 다음 재판까지 시간을 넉넉히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눈여겨봐온 한 법조인은 “어느 정도 추징이 이행된 후에 재판을 받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9월10일 전 전 대통령 측에서 ‘자진 납부’ 의사를 밝히자 이후 수사와 관련해 “현재까지 드러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해 증거 관계와 책임 정도 등을 감안해 처리할 것이다. 다만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자진 납부 결정과 여러 가지 정상을 형사 절차상 참작 사유 등으로 감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산 땅 이외에 이씨가 관리해온 ‘연희동 재산’이 얼마나 더 있을지도 주목된다. 그는 1995년에 시작된 검찰의 12·12 및 5·18 수사에서 ‘전두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핵심 인물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은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후에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의 돈이 이씨 명의로 실명 전환된 혐의를 잡고 그를 극비리에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괴자금 167억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2004년에도 검찰은 재용씨뿐 아니라 이씨의 재산도 들여다봤다. 당시 검찰은 그의 재산을 1000억원대로 파악하고 여기에 전 전 대통령 비자금이 유입됐는지를 살폈다. 이씨는 재산의 출처로 2001년 작고한 아버지 이규동 회장을 거론해왔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산 땅의 실소유주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만큼, 다른 재산 또한 차명으로 관리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오산 땅 가격 뻥튀기 됐다? 


검찰이 500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본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일대 땅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검찰은 전두환 일가의 재산 환수 차원에서 처남 이창석씨 소유 였던 5개 필지 49만9500㎡(15만1100평)를 압류했다. 검찰이 압류한 재산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부동산으로, 추징금 환수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압류된 토지 중 상당 부분이 개발이 힘든 부지로 드러나면서 매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압류된 토지 가운데 약 36만㎡(10만9000평)의 땅이 개발 및 이용이 불가능한 역사 문화 환경보호 지역으로 묶여 있다는 설명이다. 혹여 사겠다는 곳이 있더라도 매각 대금을 기대만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이 일대의 경우 몇 년 전 부동산 개발에 대한 기대로 가격이 급등했다가, 이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땅값이 곤두박질쳤다고 한다. 1만 세대에 이르는 공동주택이 들어서는 세마지구에 편입됐지만 사업 계획 자체가 틀어졌다. 오산시는 8월14일 시행사인 오산랜드마크프로젝트가 사업 제안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사업을 제안한 지 2년 만이다.

당초 계획은 이 일대에 대규모 공동주택과 상업지구를 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교육청이 학교 수용 계획을 허가하지 않았고, 문화재청도 개발 부지 내에 있는 문화재 현상 변경을 불허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압류된 땅을 공매에 붙여 매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도 오산 땅의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공매 의뢰를 하지 않았다. 대신 부동산 컨설팅 전문 업체를 통해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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