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는 국민 오락 감옥에서도 열린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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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미스유니버스 배출한 베네수엘라…뷰티스쿨·성형 산업 호황

결국 베네수엘라를 이길 수 없었다. 11월9일 러시아 모스크바로 모인 세계 80개국의 늘씬한 미녀들은 저마다 미스유니버스 왕관을 노렸다. 하지만 미스베네수엘라인 가브리엘라 이슬러가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180cm의 큰 키, 플라멩코 댄서에 아나운서라는 이력까지. 심사위원들은 재색을 겸비한 이슬러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선정된 순간이었다.

세계 미인대회에서 베네수엘라는 매회 유력한 우승 후보다. 1952년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처음 열린 이후 베네수엘라는 올해 우승까지 7번이나 왕관을 차지했다. 최다 우승국은 8번을 기록한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대회 운영권을 소유하고 있고 대회 스폰서가 대부분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베네수엘라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 AP 연합
미스베네수엘라 대회 TV 시청률 70%

베네수엘라는 세계 3대 미인대회에서 모두 강하다. ‘미스월드’에서는 6번 우승했고, ‘미스인터내셔널’에서도 6번 우승했다. 여기서는 모두 최다 우승국이다. 미스월드에는 미스베네수엘라 2위가, 미스인터내셔널에는 3위가 출전한다. “베네수엘라 스타일이 미인의 기준이다”라는 폴라 슈가트 미스유니버스 조직위원회 위원장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인구 2972만명의 나라가 전 세계 미의 기준이 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미인에 대한 관심이 무한하다. “브라질에서는 축구, 쿠바에서는 야구,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인대회가 국민 스포츠”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스베네수엘라 선발대회에는 각 지역 예선을 통과한 28명이 본선에 오른다. TV 채널인 베네비전을 통해 4시간 동안 생중계되며, 2시간짜리 편집 버전도 곧잘 재방송된다. 매년 열리는 미스베네수엘라 선발대회의 TV 시청률은 70%에 가깝다. 국토 전역에서 최고의 미인을 가리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다음 날이면 자국의 1등 미인이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통할 수 있을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사회적 격차나 정치적 대립을 뛰어넘는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이 바로 베네수엘라의 미인대회다.

미인대회 열풍을 증명하듯 베네수엘라에서는 학교와 마을, 심지어 감옥에서도 매년 미인대회가 열린다. 1년에 개최되는 미인대회 수만 어림잡아 2만여 개다.

베네수엘라에는 ‘메스티소’로 불리는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이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인이 많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것은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 같은 남미에 위치한 브라질이나 콜롬비아도 메스티소 비율이 높다. 하지만 그들은 베네수엘라처럼 왕관을 차지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교외에 자리 잡은 1960년대풍의 저택이 앞선 의문에 해답이 될 수 있다. ‘지젤 뷰티스쿨’이라 불리는 이곳은 미인대회 출전자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무대 위에서 뽐내는 걸음걸이부터 와인 잔을 올바르게 쥐는 법까지 미인대회에 필요한 모든 소양을 가르친다. 걸을 수 있고 말만 알아듣는다면 선발 과정을 통해 입학할 수 있다. 4~24세까지의 학생들이 옷매무새를 완벽하게 한 뒤 5인치(12cm) 하이힐을 신고 자세를 잡는 곳이다.

지젤 뷰티스쿨이란 간판명은 설립자이자 미스베네수엘라 우승자인 지젤 레이즈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곳은 가족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젤 레이즈의 조카인 안드레아 레이즈는 “어릴 때부터 미(美)는 우리와 함께 자란 단어”라고 말했다.

나이만큼이나 학생들의 신체 조건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네 살짜리 아이부터 20대 아가씨까지 좁은 통로를 걸어가서 허리를 휙 돌려 방향을 튼 다음 반대편까지 돌아오기를 열심히 반복한다. 한 명이 걸음걸이를 반복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을 참관한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묻는다. “저 아이의 옷은 어때? 괜찮아 보여?” 학생들과 선생은 패션과 걸음걸이, 동작과 눈빛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지적한다. 이곳에서는 외모에 관한 험담을 듣더라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이에 따라 20명씩 반을 이루는데 평균적으로 이 중 한두 명 정도가 미스베네수엘라 왕관을 다툴 기회를 얻는다.

지젤 뷰티스쿨의 학생은 대략 160명이다. 4~11세의 어린 소녀가 대다수다. 그리고 대부분이 부유층 자녀다. 더러는 부유하지 않아도 자신의 딸을 위해 모든 수입을 뷰티스쿨에 투자하는 부모도 있다. 미인대회에서 입상하면 연예인으로서 미래가 보장된다는 생각에 부모가 딸에게 입학을 제의하는 경우도 많다. 미인대회를 통해 상류층으로 발돋움하고 싶은 부모의 꿈이 딸에게 투영된 결과다. 실제로도 그랬다. 1981년 미스유니버스를 차지한 이레네 사에즈는 1998년 32세에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대선에서 자웅을 겨룰 정도의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다야나 멘도사는 2008년 미스유니버스가 된 후 연예인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지젤 졸업생이다.

올해의 미스유니버스로 선발된 베네수엘라 대표인 가브리엘라 이슬러가 지난해 우승자로부터 왕관을 넘겨받고 있다. ⓒ UPI 연합
오스멜 수사의 눈이 세계 미(美)의 기준

1969년부터 미스베네수엘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스멜 수사(67)는 베네수엘라 미인의 산파다. 그의 기준이 곧 세계 미인대회의 기준이다. 카라카스에서 열린 한 미인대회에서 콘수엘로 애들러를 보자마자 그는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손에 발탁된 애들러는 1996년 미스베네수엘라 본선에서 3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 열린 미스인터내셔널에 참가해 우승 왕관을 썼다. 1996년 베네수엘라 서부에 위치한 마라시에서 키 164cm에 불과한, 미인대회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여성을 선발했던 것도 소사였다. 관중을 압도하는 매력을 가진 이 여성은 1997년 열린 미스유니버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알리시아 마차도가 그 주인공이다. 카라카스의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소사와 대화를 나눈 자켈린 아길레라는 1995년 미스월드 왕관을 들고 베네수엘라로 돌아왔다.

그가 설립한 ‘라 킨타 미스베네수엘라 아카데미’는 미인 학교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전국 미인대회에서 수사가 엄선한 여성들을 선별해 조련하는데, 이들은 철저하게 미스베네수엘라 선발대회를 목표로 한다. 앞선 우승자들도 본래의 매력에다 아카데미 교육을 더했기 때문에 미인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수사를 거치지 않고서는 베네수엘라의 미인을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미인대회의 미가 이상적 아름다움 압박

미인이 추앙받고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곳이 베네수엘라다. 그래서인지 예뻐지기 위한 노력은 도처에서 행해진다. 성형은 일종의 문화처럼 유행하고 있다. 소득과 비교할 때 성형 산업이 매우 번성하고 있는 곳이다. 좋은 성형외과 의사도 많다고 전해진다. 미국과 중남미, 카리브 해 지역의 여성들이 자국보다 저렴한 베네수엘라에서 성형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성형 투어’가 산업화돼 있다.

올해 일곱 번째 미스유니버스를 배출했으니 베네수엘라 성형 관계자들은 업계의 호황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미스유니버스가 배출됐던 해마다 실제 성형업계가 기대 밖 매출을 올리곤 했기 때문이다. AP통신과 인터뷰를 한 베네수엘라 정형외과 의사 다니엘은 2009년 미스유니버스인 스테파냐 페르난데스를 두고 “내가 시술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성형을 했다. 페르난데스의 우승에 성형이 기여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올해의 미스유니버스인 이슬러 역시 최근 과거 사진이 떠돌면서 성형 의혹에 휩싸이고 있다.

미인대회에서 효과를 본 성형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AP의 취재에 응한 바네사 브리토(27)는 가슴 확대 수술을 받은 여성이다. 그는 “미스유니버스 같은 대회에서 볼 수 있는 미(美)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세 소녀 라우라 곤잘레스는 지난 4년 사이에 코 성형과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다. “미스유니버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 여성은 자신을 예쁘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게 소녀의 말이다.

19세 소녀가 지난 4년간 두 번이나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게 베네수엘라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부모가 10대 초반의 딸에게 성형수술을 선물해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베네수엘라 소녀들은 보통 13~15세 때 엄마의 손을 잡고 성형 클리닉의 문을 처음 두드린다.

성형이 유행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아지는 법이다. 사춘기 소녀들의 몸은 성형을 견딜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부작용 사례가 늘어나고 의료 사고 전문 변호사라는 새로운 하위 산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은 유방 확대 수술이다. 연간 3만건 정도가 시술되고 있는데 비용은 해외보다 저렴하다. 카라카스의 성형외과에서는 유방 확대 수술을 2500달러(약 265만원) 정도에 받을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미(美)가 낳은 베네수엘라만의 산업이다.


남성 중심 문화가 미인대회 광풍 불러 


한국에서도 한때 미스코리아 대회에 열광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공중파에서 퇴출된 상태다. 외모 지상주의와 성 상품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반면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인대회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한 번 있긴 했다. 1972년 베네수엘라 국립중앙대학교가 미스베네수엘라 선발대회 방송을 방해한 것이 유일한 항의의 표시로 남아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도 미인대회를 싫어했다. 유방 확대 수술을 받는 여성들을 괴물 취급하며 성형 문화에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국민들이 미인대회에 열광하니 별수 없었다.

베네수엘라의 문화도 미인대회 광풍에 영향을 미쳤다.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미인대회를 쉽게 받아들인다는 지적이다. 베네수엘라 국민들 사이에는 전통적인 성별 역할, 즉 여자는 약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남성은 강하고 용감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 다른 원인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베네수엘라만의 문화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전해진다. “여자는 모두 미인이다. 단지 미인이 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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