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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마음의 병 아니라 두뇌에 이상이 생기는 것

고장 난 특정 유전자 치료 연구 활발 한국인은 어릴 적 학대와 인간관계가 주원인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3.11.27(Wed) 18: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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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아동 학대 사건이 불거지는데, 어릴 때 학대를 받은 사람은 성인이 된 이후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크다. 이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졌는데 최근에는 과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의 우울증은 어린 시절 당한 학대나 소외감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존 제이 범죄대학 연구팀이 어릴 때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를 경험했거나 29세가 될 때까지 사회적 소외감을 느낀 678명과 그런 경험이 없는 520명을 비교 분석했더니, 아동 학대나 소외감을 받은 사람은 평생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9%나 높게 나타났다. 특히 성적 학대를 받은 경우에는 우울증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아동 학대나 소외감을 경험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는 시기도 일반인보다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 학대를 경험한 우울증 환자는 치료도 잘 안 된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정신의학연구소가 관련 연구 26건을 종합해서 분석한 결과, 아동 학대를 당한 우울증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이 지속되고 반복될 가능성이 두 배 컸다. 2만3000여 명의 우울증 환자를 조사한 결과 아동 학대를 경험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물 치료나 정신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덜했다는 것이다. 아동 학대로 인해 뇌와 면역체계 등 스트레스에 특히 민감한 신체 부분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 내렸다.

   
미국, 환각 성분 마취제를 우울증 치료제로 승인

부모의 불화만으로도 자녀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이 30대 우울증 환자 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들 중에는 성장기인 아동·청소년 시기에 부모의 싸움을 본 경험이 일반인보다 매우 많았다. 부모의 불화가 스트레스로 작용해 우울증 발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뜻이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무의식적인 경로를 통해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최근 과학적으로 속속 증명되고 있다”며 “부모로부터 양육을 잘 받지 못했거나 과하게 받은 아이는 성인이 된 후 특정 유전자의 발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특정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울증 진단과 치료의 실마리를 유전자에서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그 유전자의 발현 과정을 보면 몇 년 후에 우울증에 걸릴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예컨대 혈액검사만으로도 특정 유전자의 발현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면 우울증에 잘 걸릴 것 같은 사람을 미리 판별해낼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 또는 억제함으로써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아직은 동물 실험 단계이지만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학자들은 유전자에 희망을 걸고 있다.

현재 우울증 진단은 환자가 경험하는 증상의 횟수나 정도에 의존하고 있다. 그 외에 인지 기능, 위험 인자, 정서 조절 기능도 확인하지만 우울증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모호해서 진단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우울증이 아닌데도 우울증으로 진단되고, 우울증이 심한데도 정상으로 진단되기도 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우울증을 지금보다 과학적으로 진단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홍진표 교수는 “일이 안 될 것이다, 내 인생은 망쳤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뇌의 전두엽에 기능적인 변화가 생기는데 이를 영상 진단기로 촬영해 눈으로 보면 진단이 확실히 정확해질 수 있다”며 “뇌 영상 진단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의 병이 아니라 두뇌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것임을 알게 된 의학계는 치료제 개발을 서둘렀다.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적을수록 우울해하고 자살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물질의 농도가 줄어들지 않도록 유지하는 약이 1987년 개발됐다. 불면증, 체중 증가, 시력 장애 같은 기존 항우울제의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우울증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이 약으로 치료 효과를 봤다. 우울증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고 불안감도 사라지는 현상도 관찰됐다. 이 약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우울증 치료제다.

그러나 이 약의 효과는 늦게(복용 후 2~4주일) 나타난다. 또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서 세로토닌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자 미국은 최근 마취제로 사용하는 성분(케타민)을 우울증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성분은 효과가 수 시간 이내에 나타나므로 수술, 분만, 화상 치료 등에 마취제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오·남용하면 환각 증세가 생기고 중독될 수도 있다. 나이트클럽에서 ‘스페셜K’로 통하는 환각제다. 한국은 2006년 이 성분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했고 다른 나라도 이 물질의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물질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이어졌다. 미국 연구팀이 저용량의 케타민을 정맥 주사로 장기간 투여하면 우울증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영국 연구팀도 죄의식, 두려움,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 등의 증상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환자 33명의 정맥에 이 물질을 투여하면서 뇌를 영상으로 촬영해보니 케타민이 환각 증상을 조절하는 뇌 영역 외에도 우울증과 연관된 뇌 부위에 영향을 미쳐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아직 한국은 이 약물을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에서 치료 성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심한 우울증은 전기 자극 요법으로 치료

약물에 효과가 없거나 난치성 우울증은 전기 자극 요법으로 치료한다. 이 방법은 1930년대 이탈리아 의사가 당시 뇌전증(간질) 환자에게 전기 자극을 가하자 우울증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이후 이 방법은 우울증 치료에 널리 사용됐다. 이 치료법은 재부팅 효과와 비슷하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을 때 보통 전원을 껐다 다시 켜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이치다. 헤밍웨이는 1960년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이 치료를 받았다. 우울증은 좋아졌지만 기억력이 감퇴하는 부작용에 시달린 끝에 196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뇌 전체에 자극을 주므로 기억력 감퇴, 의식 저하, 두통 같은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치료법은 계속 발전해왔다. 올해 오스트리아의 연구진은 전기 자극 요법의 효과를 뇌 영상 연구로 증명하기도 했다. 우울증을 앓던 환자 12명에게 전기 자극 요법을 사용하기 전후 이들의 뇌 변화를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을 통해 비교했더니 12명 중 10명(83.3%)의 환자가 전기 자극 요법 후에 우울 증상이 호전됐고, 2명은 충분한 치료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이마에 붙이고 자면 우울증이 개선되는 전기 자극 패치도 최근 개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의대 교수가 개발한 이 패치는 우울증을 50%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자기 전에 이 패치를 눈썹 위쪽 이마에 붙이면 혈류가 줄어든 뇌 부위에 혈류량이 늘어나면서 치료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러나 뇌에 전기를 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혀 요즘은 사용 빈도가 낮아졌다. 자기장 치료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자기장 치료는 망상 증세를 보이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우울증이 심한 환자에게 사용하는 특수 치료법이다. 자기장 치료를 3~5번 정도 받으면 우울증이 눈에 띄게 호전된다. 전기 자극 요법과 달리 뇌 일부분에만 자극을 주어 부작용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자기장이 뇌 깊은 곳까지 침투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밖에 초음파로 뇌의 특정 부위를 치료하는 방법도 조금씩 시도되고 있다. 초음파를 돋보기처럼 뇌 속의 한 부분에 집중시켜 문제가 되는 부위를 치료하는 것이다.

   
한국인 우울증은 잘못된 육아에서 비롯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앓는 질환이어서 ‘마음의 감기’라는 별칭이 붙었다. 우울증 환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경 우울증이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GBI리서치)은 항우울제 시장 규모가 2018년 12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60만명을 넘어섰다. 2008년 환자 수가 약 47만7000명인 점을 고려하면 4년 새 26%가량 급증한 셈이다. 특히 40~50대 우울증이 크게 늘어났다. 우울증 환자 4명 중 1명은 40~50대 여성으로, 지난해에는 약 15만7000명에 달했다. 같은 연령대의 남성 우울증 환자도 6만명을 넘는다.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한국인의 우울증은 잘못된 육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홍진표 교수는 “아동 학대와 소외감 외에도 어린 시절 인간관계가 적을수록 어른이 된 후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크다”며 “이런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이른 나이에 술·도박 같은 중독성 행동에 빠질 가능성이 큰데, 그럴수록 성인이 된 후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은 환자의 10%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심각한 질환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로, 매년 약 1만5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들 가운데 80%는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심해지면 자해·자살은 물론 살인까지 할 수 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한 개그우먼은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수면제 수십 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주부가 우울증에 시달리다 못해 어린 자식을 살해하거나 함께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극단적인 결과까지는 이어지지 않더라도 우울증은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든다. 또 심장동맥 질환을 일으키고 뼈를 약하게 해 골절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라연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과장은 “우울증 진단 평가 항목에 ‘직업·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느냐’가 있다. 일시적인 기분 변화나 직업·사회적 기능에 큰 지장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우울 증세가 매일, 종일 지속되거나 직업·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 호에는 자궁암 편이 이어집니다.


“인간관계가 행복의 열쇠”

인간관계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유명한 연구 결과가 있다. 1937년 미국 하버드 대학 남학생 268명이 인생 사례 연구를 위해 선발됐다. 하버드 의대는 이들을 72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이들 중에는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등 사회 각계에서 두각을 보인 인재도 많다. 이른바 ‘하버드 대학 2학년생 268명 생애 연구’는 알리 복 하버드 의대 교수가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됐다. 연구진에는 하버드 대학 생리학·약학·인류학·심리학 분야의 최고 두뇌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정기적인 인터뷰와 설문을 통해 대상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점검했다. 전체의 절반 정도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남은 이들도 80~90대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2009년 공개됐다. 약 47세까지 형성된 인간관계가 남은 인생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1967년부터 이 연구를 이어받아 주도해온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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