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권력 5년 막후] #20. 강남 ‘큰손’ 부동산업자에게 땅 비밀 거래 꼬리 잡히다
  • 소종섭│편집위원 ()
  • 승인 2013.12.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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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내곡동 사저 단독 공개’로 MB 정권 강타…특검도 의혹 해소 못해

2011년 10월9일. 시사저널은 인터넷판을 통해 ‘단독 공개-MB 퇴임 후 사저(내곡동 사저)’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 기사는 역시 시사저널이 2주 전에 보도한 ‘이국철 SLS 회장의 로비 의혹’ 기사와 함께 후반기에 접어든 이명박(MB) 정권을 강타했다.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아들인 시형씨와 공동으로 땅을 사들인 데다가, 시형씨의 자금 출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내곡동 사저 신축 의혹은 정권을 궁지로 몰았고 끝내 특검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은 MB 정권의 취약한 위기관리 실상과 가족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MB는 결국 ‘내곡동 사저’를 백지화하고 자신이 살던 논현동으로 가야 했다. 한국을 뒤흔든 이 사건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청와대와 MB 아들이 강남에 땅을 샀대요”

2011년 9월 중순, A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시사저널 김지영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A씨: 김 기자, 바쁘죠?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기자: 뭔데요?

A씨: 누가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 아들(시형씨)이 서울 강남에 땅을 샀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A씨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굽니까?

A씨: 강남에서 큰 물건을 주로 매매하는 부동산업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한테 그렇게 얘기했다는 겁니다.

기자: (A씨가)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A씨: 김 기자도 그 사람을 알지 않나요? B씨라고.

기자: 잘 알죠. B씨가 강남 부동산업자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겁니까?

A씨: 네. 그렇다고 하네요.

기자: 혹시 청와대와 대통령 아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땅을 샀는지 알 수 있나요?

A씨: 정확한 곳은 아직 모르는데, 한번 알아볼까요?

기자: 네, 꼭 좀 알아봐주세요.

며칠이 지난 후 A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A씨: 김 기자, B씨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내곡동에 땅을 샀다네요. 지번도 나왔어요. 시간 될 때 한번 만나죠.

기자: 그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만나죠.

이명박 대통령의 장남 이시형씨(가운데)가 2012년 10월26일 새벽 조사를 마친 후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그렇게 해서 2011년 9월23일 확인된 ‘수상한 땅’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20-17번지 일대 여덟 필지였다. 다음은 김지영 기자의 증언이다.

“2011년 8월 중순, 어느 모임 자리에서 한 인사가 ‘대통령이 퇴임 후 어디로 갈지 모르겠네? (이명박 대통령이) 논현동(사택)으로 간다고 하는데 실제 갈까?’라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시작이었다. 이후 이 대통령의 공직자 재산 공개 현황을 들여다봤다. 논현동 사택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소유권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다만 MB의 장남인 시형씨가 어머니 김윤옥 여사 명의로 된 부동산을 담보로 7억여 원을 대출받은 기록만 명시돼 있었다. 이후 이 대출금은 시형씨가 내곡동 사저 부지를 매입한 자금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논현동 사택 주변 부동산 11곳의 등기부등본도 함께 떼어보았다. 아무래도 이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가 논현동이라면 경호 시설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논현동 사택 부근의 부동산을 우선 매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택 주변 부동산의 소유권에도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그렇다면 논현동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며칠 뒤 평소 알고 지내는 지인에게 넌지시 ‘대통령 퇴임 후 사저가 어디인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그 역시 ‘논현동 아니냐?’고만 되물었다. 때마침 기자는 당시 9월 이국철 SLS그룹 회장 로비 의혹 취재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통령 사저’ 취재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9월 중순, A씨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내곡동 사저 관련한 3대 의혹 여전히 남아

당시 확인된 8필지의 토지 면적은 모두 2378㎡(약 720평)였다. 그런데 이후 청와대는 추가로 한 필지가 더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시형씨 등은 모두 9필지를 매입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토지 가운데 ‘내곡동 20-17번지 외 2필지’의 소유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는 점이다. ‘20-17번지 외 2필지’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인 한정식집이 있었다. ‘2004년 Hi-Seoul 자랑스러운 한국 음식점 50선’에 선정됐던 ‘수양’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을 MB의 장남인 시형씨가 2011년 5월13일 10억1775만원에 매입했다. 이 땅의 지분 일부도 매입했다. 시형씨가 이 건물과 일부 토지 지분을 매입한 지 12일이 지난 5월25일 대통령실(청와대)이 이 땅의 나머지 지분 등 앞서 언급한 8필지의 토지를 40억원에 모두 샀다.

주목되는 것은 ‘20-17번지 외 2필지’ 토지를 청와대와 시형씨가 공동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20-17번지(5백28㎡·160평) 토지의 경우 시형씨가 8분의 5(330.6㎡·100평), 청와대가 8분의 3(198.3㎡·60평)의 지분을 각각 갖고 있었다.

청와대와 시형씨는 왜 내곡동 땅을 산 것일까. 국회 운영위원회는 2010년 12월2일, MB가 퇴임 이후 돌아갈 논현동 사저 주변에 경호 시설을 짓기 위한 부지 매입 예산 40억원을 통과시켰다. 청와대는 MB의 자택인 서울 논현동 인근에 모두 661.2㎡(200평)의 대지를 평당 3500만원에 사들일 예정이었다. 이 661.2㎡의 대지 위에 근무동 462.8㎡(140평), 숙소동 264.5㎡(80평), 체력관리시설동 264.5㎡(80평) 등 연건평 991.7㎡(300평) 규모의 경호 시설을 짓는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MB는 논현동 자택 부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내곡동 땅을 사들여 사저를 지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왜 내곡동이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저로 쓰려고 해서 문제가 됐던 서울 강남구 내곡동 사저 예정 터. ⓒ 시사저널 전영기
MB 등 7명 모두 ‘무혐의’…여야, 특검 합의

당시 ‘내곡동 사저’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11억2000만원대에 달하는 시형씨의 부동산 매입 자금의 출처가 어디인가였다. 시형씨는 2012년 4월 검찰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아버지(이 대통령)가 ‘네 이름으로 사저 부지를 사는 게 좋겠다. 큰아버지(이상은 회장)에게 6억원을 빌리고, 나머지는 어머니(김윤옥 여사)를 통해 마련하라’고 지시해서 돈을 마련해 청와대로 가져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곧바로 의혹이 제기됐다. 이상은 회장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6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현금을 서울 구의동 자택에 보관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24일자 한겨레는 ‘시형씨가 경주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청와대에 있는 가방 3개를 자신의 차에 실은 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이상은 회장의 집으로 갔다’고 보도했다. 당시 집에 있던 이 회장의 부인 박 아무개씨가 집 붙박이장에 있던 1만원권과 5만원권 현금 6억원을 건넸고, 시형씨는 현금을 가방에 담은 뒤 곧장 청와대로 왔다는 것이다. 이 돈의 출처가 다스의 비자금이 아니냐는 관측이 불거졌으나 밝혀지지 않았다. 나중에 도입된 특검에서도 이 문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차용증을 쓰고 빌렸다”는 주장에 대해 특검이 ‘6억원 차용증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검은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시형이 작성하였다고 주장하는 2011년 5월20일자 차용증의 진위 여부에 관하여 조사하였으나, 이시형은 청와대 관저 내 대통령의 방에 있는 컴퓨터로 차용증을 작성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파일 원본을 제출하지 아니하여 위 차용증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지 못함’이라고 밝혔다.

둘째, ‘20-17번지 외 2필지’의 토지를 시형씨와 대통령실이 왜 공동으로 소유했느냐는 것이다. 청와대 경호처의 의뢰로 두 곳의 감정평가법인이 지난 2012년 3월24일과 5월20일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시형씨 지분의 감정평가액은 17억3212만원이었다. 그런데 실제 매매계약서상 시형씨가 지불한 금액은 11억2000만원에 불과해 시형씨가 6억1212만원의 이득을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경호처의 지분 평가액은 25억1481만원이지만 실제 매입가는 42억8000만원이었다. 17억6519만원이나 비싸게 산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경호처 지분의 땅이 도로에 붙어 있어서 공시지가와 달리 시세가 비싼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공시지가와 비교해도 시형씨는 건물 대지 727.3㎡(220평) 매입에 공시지가(12억8697만원)보다 10%(1억6000여만원) 싸게 산 반면, 경호처는 공시지가(10억9385만원)보다 약 4배(42억8000만원) 비싸게 땅(2142.1㎡·648평)을 샀다. 경호처의 예산이 시형씨의 지분 매입에 투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마지막 의문은 ‘논현동 사저’를 계획하고 경호 시설 부지 매입 예산을 받았던 청와대가 왜 내곡동으로 급선회했느냐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논현동 일대 땅값이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지난해 배정된 경호 시설용 부지 매입비 40억원으로는 330.6㎡(100여 평)밖에 살 수 없었고, 경호 문제도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MB는 2012년 2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그 문제가 나왔을 때 경호 문제가 매우 중요시된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살아갈 집인데도 사실 좀 소홀히 했다. 내가 챙기지 못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경호 문제 등에만 신경 쓰다가 다른 부분에 소홀했다는 뜻이다.

어쨌든 보도가 나오고 날이 갈수록 의혹이 커지자 청와대는 시사저널 첫 보도가 나간 지 열흘 만에 ‘내곡동 사저’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현 통합진보당)이 이 대통령 등을 업무상 배임과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10월26일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민주당 등 야권의 공세가 거셌다. 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한편 ‘내곡동 MB 사저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그러나 7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한 검찰이 내놓은 결과는 허무했다. 2012년 6월10일 검찰은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과 MB의 아들 시형씨 등 2명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4명에 대해서는 ‘각하’ 처분을 내렸다. 즉, 내곡동 사건 관련자 7명 모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과 배임 의혹 등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내곡동 사건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여야는 2012년 6월 제19대 국회 개원 협상에서 내곡동 사저 사건에 대해 특검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특검 사상 처음으로 야당인 민주당에 특별검사 추천권을 줬다. 당시가 MB 정권이었지만 친박계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2년 10월15일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가 출범했다. 이광범 특검은 시형씨와 이상은 ㈜다스 회장 등 주요 수사 대상자 10여 명을 바로 출국금지시켰다.

이 회장과 시형씨 등의 다스 사무실과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고, 광범위한 계좌 추적도 벌였다. 시형씨와 이 회장을 소환해 조사한 데 이어, 김인종 전 처장과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등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광범 특별검사가 2012년 11월14일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일각에서 “부동산 투기 목적 아니냐” 의혹

이 대통령이 직접 관련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내곡동 사저 부지에 있던 한정식집 ‘수양’을 철거했던 업체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철거) 계약 당사자이고, 세금계산서 발행도 대통령이 했다”고 밝혔다. 김인종 전 처장은 2011년 월간 신동아 12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부지를) 방문해서 오케이(OK)하니까 산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다 보고를 드렸다. (검토하고 추진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는 ‘내곡동 부지를 시형씨 명의로 계약했던 것’에 대해 “대통령 사저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나면 주변 부동산 가격이 오르게 되고, 보안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도가 나오기 전부터 내곡동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곡동 사저 부지에) 이 대통령이 왔다 갔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도 자주 왔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다. 특히 서울 강남 일대에서 ‘큰 매물’을 주로 취급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런 소문은 일부 언론사만이 아니라 민주당에도 흘러갔다. 당시 민주당은 ‘내곡동 사저’와 관련한 첩보를 입수하고 대통령 사저와 관련해 청와대에 질의서를 보내는 등 관심을 갖고 알아보던 중이었다.

이광범 특검은 2012년 11월14일, 3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기간을 15일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김인종 전 처장과 청와대 실무자 김태환은 불구속 기소, 이 대통령은 공소권 없음, 김윤옥 여사는 혐의 없음, 이시형·임태희·김백준 등은 혐의 없음이었다. 특검까지 도입했지만 결과는 김 전 처장과 실무자를 불구속 기소한 것 외에 검찰 수사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셈이다.

‘내곡동 사저 사건’은 제기됐던 의혹의 실체보다도 두 가지 점에서 MB 정권으로서는 뼈아픈 사건이었다. 하나는 소통에 대한 것이었다. 국민들이 퇴임하면 논현동 사저로 돌아갈 것이라고 알고 있던 상황에서 갑자기 불거진 ‘내곡동 사저’는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각에서 “부동산 투기 목적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알리고 투명하게 사저 신축을 추진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청와대의 업무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사저 문제 하나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하는데…”라는 말들이 세간에 오갔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 후반기에 어려움을 겪던 MB 정권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이런 제반 문제는 또한 ‘보안을 중시한다’는 명분 아래 사회적인 감각이나 정무적 고려 없이 일을 추진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런 식의 일처리가 사후에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아니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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