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로 이름 바꾸겠다고?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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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부는 신격화 바람…기념사업에 혈세 쏟아부어

국가 지도자가 사후에 신(神)으로 여겨지는 사례는 여럿 있었다. 강원도 영월과 그 인근 지역에서는 단종을 마을신으로 모시고 있고, 봉화군은 공민왕을 신으로 모신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생전에 절대군주, 즉 ‘왕’이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현재 ‘신의 대접’을 받고 있는 인물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박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를 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최근 ‘박정희 신격화’를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때아닌 박정희 우상화 논란이 한창이다. 우상화 논란이 새삼 이슈가 되는 이유는 박정희라는 인물과 현재의 권력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매년 경북 구미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날을 기려 ‘박정희 탄신제’가 열린다. 이 행사에 ‘탄신제’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2009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숭모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지난 11월14일 열린 탄신제에서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역시 반신반인(半神半人)이다”라고 말해 박정희 우상화 논란에 불을 질렀다. 남 시장의 반신반인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조국에 헌신하신 반신반인의 지도자는 이제 위대한 업적으로 남아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렀다. 남 시장의 지원 아래 2009년부터 구미시 주최로 열리는 박정희 탄신제는 매년 그 예산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 6390만원이던 것이 올해에는 7700만원으로 올랐다. 박정희 탄신제와 더불어 추모제도 매년 진행되는데, 이 두 행사의 예산을 합치면 1억원 가까이 된다. 구미시 장애인 사업 중 하나인 휠체어 보조 사업 예산의 두 배에 해당한다.

박정희 탄신제는 구미시가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사업에 비하면 별게 아니다. 구미시는 현재 박정희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이 사업에는 경상북도 예산 18억원, 구미시 예산 268억원이 투입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에 들어간 구미시 예산은 2013년 기준 10억원이 넘는다. 세부 내역을 보면 생가 주변 공원화 5억1240만원, 추모관 건립비 5억원, 추모관 건립 감리비 740만원, 홍보물 320만원, 추모관 건립 부대비 180만원 등이다. 이와 별도로 2013년 박정희 대통령 생가 관리 및 추모에 쓴 돈이 11억5393만원에 달한다. 제14회 대한민국정수대전(2억1000만원), 박정희 리더십 연구비(1억원), 생가 관리·운영 위탁금(2억4650만원) 등이며 이와 별도로 경상북도의 돈도 들어간다. 녹색당 소속 김수민 구미시의원은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지지자들에 의한 자발적 행동이 아니라 지자체가 행사를 주도하고 혈세로 충당한다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난 11월14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96회 탄신제.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00층짜리 컨벤션센터 짓겠다는 엉뚱 공약

우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뿐 아니라 부인인 고 육영수 여사를 대상으로도 진행된다. 육 여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충북 옥천에서도 매년 숭모제가 열린다. 올해 역시 민간 주도의 행사와 옥천군이 주최하는 숭모제가 각각 같은 때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부터 2011년까지 매년 유족 대표로 참석했다. 올해는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유족 대표로 모습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올해 행사는 특히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서울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결국 ‘도서관’을 떼고 ‘박정희 기념관’으로 변모할 상황에 놓였다. 애초 무상 임대를 조건으로 공공도서관 역할을 하기로 서울시와 약속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자랑하는 자료만 가득해 공공도서관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었다. 결국 서울시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에 부지를 매각하기로 함에 따라 도서관 기능은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 가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박정희 신격화에 대해 순수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현 정권에 눈도장을 찍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특히 구미시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의심할 만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여권 정치인이 박정희 홍보관 건립을 놓고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라며 박정희생가보존회를 상대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당시 상황을 김수민 시의원은 ‘사랑싸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시장이 탄신제에 열을 올리는 것도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현 정권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탄신제에는 심학봉 새누리당 국회의원(구미갑)이 참석해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며 추도사를 읽었다. 그는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아 대법원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에는 종교계까지 신격화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11월25일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가 열렸다. 여기서 원미동교회 목사는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하나님이 독재하셨어. (중략) 박정희 대통령님 보면서 참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멋있어요”라고 발언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 부분과 육 여사의 서민 친화적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권력에 줄을 서는 듯한 신격화 움직임이 번져갈수록 국민이 외면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수민 의원은 “그동안 지역 정치인들 사이에서 100층짜리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짓겠다거나, 시 이름을 아예 ‘박정희시’로 바꾸겠다는 엉뚱한 공약이 많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신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시키는 이런 발언들은 박 대통령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이들이 오히려 기분 나빠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육영수 여사 일대기 영화 ‘흐지부지’ 


지난해 고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퍼스트레이디> 개봉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영화의 개봉 시기가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 말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영화는 어떤 내용과 배경으로 기획된 것일까. 시사저널은 이 영화의 A4용지 89장짜리 대본과 투자 유치를 위해 만든 제안서를 입수했다. 영화는 제작비 총 65억원 규모로, 1000만 이상의 관객 동원을 목표로 했다. 제작사 ‘드라마 뱅크’는 제안서에서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 많은 이들에게 대한민국 최초의 복지 아이콘 육영수는 서민을 위로해줄 신화로 재창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용은 알려진 대로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다. 대본에 따르면 영화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 여사의 젊은 시절 로맨스와 나환자촌 등을 누볐던 육 여사의 활동이 담겨 있다. 영화는 육 여사가 저격당하고 국민들과 박 대통령이 슬퍼하면서 끝을 맺는다. 해당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역을 맡을 예정이던 감우성에 이어, 최근 육 여사 역을 맡았던 한은정도 하차하겠다고 밝히면서 현재 제작 여부도 점치기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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