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발 풍랑’에 어렵게 뜬 배 가라앉을라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우·삼성·현대중공업 납품 비리 수사…뇌물액 50억원에 40여 명 기소

국내 조선업계에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등 ‘빅3’ 조선사와 납품업체에 검찰이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납품업체의 상납액이 현재까지 50억원에 이른다. 기소된 조선업체와 납품업체 임직원 수도 40여 명이나 된다. 검찰은 대형 조선업체 직원들의 금품 수수가 조직적·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협력업체에 대한 압수수색과 거래 계좌 추적을 통해 과거 거래까지도 샅샅이 살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검찰에 기소되는 대형 조선업체 및 납품업체 직원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어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조선업계의 납품 비리가 처음 포착된 것은 지난 5월이다. 울산지방검찰청 특수부는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이 부품 납품이나 협력업체 선정 대가로 거액을 상납받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후 5개월 동안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200여 명의 계좌를 추적했다. 대우조선해양과 납품업체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횟수만 18회에 달한다. 최창호 울산지검 특수부장은 “수사 중에도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 내부 직원의 제보가 계속됐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세계 최대의 해상 풍력발전기 설치선을 건조하고 있다.
결과는 검찰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 임원은 “아들이 수능을 본다”며 순금으로 된 50만원 상당의 열쇠를 요구했다. 시험이 끝난 후에는 가족들의 해외여행 경비 일체를 제공받았다. 한 차장급 직원은 12억원 상당의 차명계좌 4개가 검찰에 적발됐다. 이 중 한 개가 친어머니 명의였는데, 수사관이 관계를 다그치자 이 직원은 모자 관계를 부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임원은 협력업체 자금 일부를 받아 주택을 매입한 뒤 회사에 재임대하는 방법으로 폭리를 취했다. 한 직원은 1억원의 현금을 5만원권 다발로 집에 보관하다가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검찰은 10월15일 전·현직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협력업체 간부 30명을 기소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시작된 납품 비리 수사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으로 확대됐다. 검찰 수사를 받은 납품업체들이 두 회사에도 거액을 전달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검찰은 납품업체 선정 대가로 2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증재)로 삼성중공업 간부 곽 아무개씨를 최근 구속 기소했다. 납품 청탁이나 납품 기간 연장 대가로 협력업체에 적게는 4000만원, 많게는 5억원을 받은 현대중공업 간부 3명도 구속했다. 아울러 대형 조선업체에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배임수재)로 H사와 L사 대표 박 아무개씨와 이 아무개씨도 구속 기소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뇌물로 받은 액수가 큰 점을 고려할 때 조직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상납 고리가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창호 울산지검 특수부장이 10월15일 대우조선해양 납품 비리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우조선에서 삼성·현대중공업으로 ‘불똥’

검찰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전혀 모르는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직원 개인의 일”이라고 부인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검찰 조사는 우리도 모르는 일이다. (검찰에서) 어떤 통보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다시 답변을 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그동안 윤리경영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룹 차원의 노력을 펼쳐왔다”며 “이번에 검찰에 비리가 적발된 직원은 3~4년 전에 내부 감사에서 비리가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일부 직원은 검찰 수사 와중에도 협력업체에서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함 아무개 차장은 올 2월까지 배전반 부품 납품 청탁과 함께 협력업체 대표에게서 1억2000만원을 받았다. 박 아무개 차장의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납품 비리 수사가 한창이던 올 10월까지도 총 5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조선업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삼성그룹은 그동안 내부 기강 확립을 강조해왔다. 삼성은 크고 작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재발 방지와 함께 내부 기강 확립 방침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화성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가 터진 올 초에는 계열사 대표이사 및 임원 평가에 준법경영 결과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삼성중공업 직원 비리가 검찰에 적발되면서 준법경영 의지가 무색해졌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3분기에 매출 3조5757억원, 영업이익 208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고, 영업이익은 40% 가까이 급감했다. 이런 사유로 연말 인사를 앞두고 ‘박대영 사장 경질설’이 나돌기도 했다. 12월2일 발표된 사장단 인사에서 박 사장의 유임이 결정됐지만 내부 직원이 납품 비리에 연루되면서 박 사장의 입지도 좁아들 것으로 보인다.

윤리경영 천명했지만 ‘공염불’

현대중공업에서도 올해 초부터 임직원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5월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 임직원 25명이 하청업체 7곳으로부터 10년 동안 25억원을 받은 혐의로 사법 처리됐다. 7월에는 원전 납품 비리와 관련해 10억원대의 자금을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에게 전달해 임직원 3명이 구속됐다.

현대중공업은 11월 말 그룹 법무감사실장을 맡고 있는 이건종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윤리경영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도 11월21일 사장단 인사에서 부회장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회장으로 승진했다. 마찬가지로 재계에서는 책임경영과 준법경영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이재성 회장은 취임사에서 “투명한 경영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국제적 기준에 맞는 윤리경영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전 비리에 이어 협력업체 납품 비리까지 터지면서 그룹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빅3 조선 3사 중에서 올해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곳은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며 “실적 악화에 이어 납품 비리까지 터지면서 이재성 회장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주,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모처럼 살아난 조선 경기가 ‘검풍’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2008년 닥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가 최근 어렵게 부활에 성공했다. 2013년 9월 말을 기준으로 발주량은 8000만DWT(재화 중량 톤수)를 기록했다. 2012년 전체 발주량(5400만DWT)을 훌쩍 넘어섰다. 조선 업황을 가늠할 수 있는 신조선가 지수도 반등에 성공했다. 최광식 LIG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세계 경제 회복 기대감으로 2013년 대부분의 선박 발주와 신조선가가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며 “내년에도 유럽과 중국의 경기 회복이 예상돼 전망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운 오리’ 취급을 받았던 증시에서도 조선주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12월6일 기준으로 코스피지수의 최근 1년간 상승률은 1.84%에 그쳤다. 하지만 삼성중공업(-0.27%)을 제외하고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각각 41.27%와 19.3% 상승했다. 지난 10월 중순 이후 조선주들이 시장에서 조정을 받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삼성중공업 역시 20%대의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외국인과 기관들은 저평가돼 있던 조선주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기 바빴다. 이동근 써미트투자자문 본부장은 “조선주 중심의 경기 민감 대형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며 “내년까지 조선주 비중을 20~30%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터진 부실 사태로 홍역을 치른 STX그룹 역시 경영 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다. 채권단 방침에 따라 조선그룹(STX조선해양·STX엔진·STX중공업·포스텍)만 남기고 나머지는 공중분해 될 상황이지만 회사는 신규 자금을 지원받아 정상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 그룹의 핵심인 STX조선해양은 이미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17.16%)로 올라선 상태다. 산업은행은 최근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신임 대표로 내정하고 새판 짜기에 나섰다. 나머지 회사 역시 채권단의 출자 전환이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 절차에 돌입했다. 조만간 STX그룹까지 정상화되면 국내 조선산업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으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현재 수사 내용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금품 수수 혐의로 기소되는 조선업체 임직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조선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오래전부터 예견돼왔다”면서 “향후 해외 경쟁사와의 입찰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