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경쟁’ 따라 피바람 몰아칠 듯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3.12.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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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 권력 구도 변화 전망

12월8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반당·반혁명적 종파 행위와 관련한 문제’를 토의한 후 그의 해임 및 출당, 제명을 결정하고 이를 9일 오전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북한이 지난해 7월15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 총참모장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는 했지만, 그를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지는 않았으며 또한 출당·제명시키지 않은 데 비하면 이는 매우 강도 높은 징계 조치였다. 급기야 12월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일에 진행됐다”며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고 판결 즉시 집행됐다”고 보도했다.

11월2일 북한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4ㆍ25 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제2차 보위일꾼대회에 참석해 대회를 지도하고 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
행정부, 다시 조직지도부에 흡수 통합될 듯

북한 공식 매체는 장성택의 숙청 사유와 관련해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동상이몽, 양봉음위(북한 사전에 의하면 ‘겉으로는 지지하고 받드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반대하고 뒤로 돌아서서 딴짓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고 밝혔다. 장성택이 “정치적 야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지난 시기 엄중한 과오를 범하여 처벌받은 자들을 당 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 단위 간부 대열에 박아 넣으면서 세력을 넓히고 지반을 꾸리려고 획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에서는 장성택 일당의 반당·반혁명적 종파 행위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알고 주시해오면서 여러 차례 경고도 하고 타격도 주었지만, 응하지 않고 도수를 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어 장성택을 제거하고 그 일당을 숙청함으로써 당 안에 새로 싹트는 위험천만한 분파적 행동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핵심 측근들인 리룡하 당 중앙위원회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11월 하순에 공개 처형됐다고 밝혔다. 당시 북한이 내부적으로 언급한 그들의 죄명은 ‘월권’ ‘분파 행위’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거부’ 등이다. 리룡하와 장수길은 “장성택 등 뒤에 숨어서 당 위의 당으로,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군림하려 했다”고 비판받았다. 그리고 “경제 과업 관철 및 군사 분야에까지 관여하려 책동했다”고 비판받았다. 북한 지도부는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을 전시법에 따라 군사재판에 넘겨 공개 처형했는데, 이는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공포 정치가 통치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장성택 측근의 공개 처형 사실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고, 장성택의 매형 및 조카의 소환 등이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지도부가 언제까지 장성택 숙청 사실을 외부에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차제에 이 문제를 대내적으로도 크게 ‘비상사건화’함으로써 유사한 권력 누수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이번에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리룡하와 장수길의 ‘반당 혐의’에 대한 조사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금년 들어 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에서 장성택 심복에 대한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가는 등 일부에서 견제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장성택은 공개 활동을 자제해왔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지난해 10월29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에서 한 연설에서 “당과 수령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군사가다운 기질이 있고 작전 전술에 능하다고 해도 우리에겐 필요 없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은의 군부 장악에 크게 기여한 리영호의 해임을 정당화한 바 있다. 이러한 논리를 장성택에게 적용한다면, 그가 김정은의 고모부이고 과거 김정은의 후계 체계 구축과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국정 장악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그의 측근이 ‘반당·반혁명 종파 행위’를 했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내각과 공안기관에 대한 행정적 지도를 담당하는 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의 수장인 행정부장과 그 아래 핵심인 제1부부장 및 부부장이 모두 처형됨에 따라 이 조직은 해체돼 다시 과거처럼 조직지도부에 흡수 통합될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당과 국가기구, 군대 전반을 좀 더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이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국방위원회는 그대로 존속하겠지만, 4명의 부위원장 중 가장 영향력 있던 부위원장이 숙청됨에 따라 국방위원회의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들이 모두 전투복이 아닌 노농적위군복을 입고 나타난 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북한에서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는 정규군을 지휘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국방위원회가 군대에 대해 영향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므로 장성택이 숙청당했다고 해서 군부에서 큰 동요가 발생하거나 군부에까지 숙청 여파가 크게 미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군부에까지 숙청 여파 미칠 가능성은 작아

장성택 숙청으로 그가 관장해온 라선특구와 황금평특구에 대한 북·중 공동 개발과 외자 유치에 단기적으로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들 사업이 내각으로 이관된다면, 박봉주 총리의 경제 개혁·개방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수 있다. 북한이 이번에 장성택을 숙청하면서 “(장성택이) 당이 제시한 내각중심제·내각책임제 원칙을 위반하면서 나라의 경제 사업과 인민 생활 향상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고 비난한 점에 비추어볼 때 향후 내각의 자율성과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 측근의 공개 처형과 장성택 숙청은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불안감을 주어 김정은에 대한 충성 경쟁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김정은으로의 권력 집중이 더욱 심화되고 그에 따라 피바람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장성택의 실각으로 급격히 커진 최룡해의 영향력을 김정은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장기적으로 정권 불안정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대내외 정책에 대한 장성택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숙청으로 북한의 대내외 정책이 급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반당·반혁명 종파 행위’에 대한 투쟁으로 북한 내부 분위기가 경직되면서 북한이 일시적으로 대외에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리고 장성택 숙청 이후 나타날 북한 파워엘리트들 간의 역학 관계 변화가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장기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북한 내부의 정세 변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필자인 정성장 위원이 ‘세종논평’에도 동시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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