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죽고, 말의 테러만 넘친다
  • 박명호 | 동국대 정치학 교수 ()
  • 승인 2013.12.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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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받이’ ‘미친 사람’ ‘암살 비극’…갈 데까지 간 여야의 막말

우리나라 국민은 여당과 야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1월 마지막 주에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여당으로서의 역할과 야당으로서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조사 대상자의 53%는 여당이 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78%는 야당이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나라 국민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들에게 불만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기국회는 정쟁으로 개점휴업 상태이기 일쑤였고, 여야가 하는 일이라고는 말싸움뿐이었으니 국민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10명 중 9명 전후가 대한민국 국회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정부 첫 정기국회는 100일 회기 중 99일 동안 하나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6300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마지막 날 국회는 34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역대 최악의 저효율 국회”라는 비난에 직면하자 서둘러 법안을 처리한 것이다.

본회의 찬반 토론 법안은 단 한 건뿐

최근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 2013년 정기국회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알 수 있다. 2009년 이후 국회는 정기국회에서 평균 77.5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정기국회 법안 통과 건수는 2009년 108건, 2010년 30건, 2011년 55건, 2012년 117건이었다. 처리 법안 건수도 적었지만, 정작 처리되었어야 할 법안은 처리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다 보니 여야 간 이견이 심한 법안은 대부분 처리되지 못했다. 부실 심사 가능성도 보인다.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을 한 법안은 한 건에 불과했고, 2분 30초마다 한 건씩 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정기국회의 부실·졸속 진행은 예상된 일이었다. 정기국회 개회일인 9월2일 민주당은 국회가 아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 당사에 있었다. 여야는 전년도 예산 결산도 처리하지 못했고, 정기국회 일정 조율조차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한 것은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 25일이 지난 후였다. 이러니 국민이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국회를 불신하는 것이다. 다음 주쯤 여당과 야당의 역할 그리고 국회 신뢰에 대해 국민 의견을 조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2012년 대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야 막장 드라마는 ‘막말 정치 공방’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막말 정치 공방’의 시작은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대선 불복’ 발언이었다. 장 의원은 “부정선거 대선 불복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도 지난 대선은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총동원된 총체적 부정선거임이 명백하다”며 “총체적 부정선거이자 불공정 선거로 당선된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즉각적인 사퇴를 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현역 의원이 대선 불복을 처음으로 공식 선언한 것이다.

예상대로 새누리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장 의원의 발언은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며 “유권자 모두를 모독하고 국민의 선택으로 뽑은 대통령을 폄훼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처럼 새누리당을 대표하는 ‘청년 일꾼’으로 선거를 치른 손수조 위원장도 한마디 했다. 그는 “민주당 청년비례의 모습, 참 실망스럽다”며 “민주당이 당의 청년 정치인들을 정쟁의 총알받이나 군불 때는 장작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니 변화라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발언 강도는 더 높아졌다.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결정을 뒤집는 망언을 하고 있는데, 미친 사람들도 하루에 몇 번씩 제정신이 들어온다.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이런 발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까지 했다. 장 의원의 발언으로 민주당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사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면서도 대선 불복은 아니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그렇다고 소속 의원을 보호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민주당은 장 의원의 발언에 대해 “개인 입장”이라고 선을 그으며, “당의 입장과 다른 개인적 입장을 공개 표명하는 것에 대해서 유감스럽다”고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11월28일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상정한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과 여당의 경직성도 문제

하지만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막말 정치 공방’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양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정(중앙정보부)’이란 무기로 공안 통치와 유신 통치를 했지만 자신이 만든 무기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극적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데, 국정원을 무기로 신공안 통치와 신유신 통치로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했다.

여야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국민과 국가원수 모독이고 정치를 떠나 불행한 개인사를 들춰냈다는 점에서 인간의 최소한의 도를 넘어선 반인륜적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도 동참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에 대해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은 언어 살인”이라며 “대통령 위해를 선동·조장하는 무서운 테러”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당직자가 공식 석상에서 이런 말을 한 사실이 국기 문란이며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무서운 도전”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갈 데까지 간 막장 드라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와 존재 이유에 대한 부인(否認) 때문이다. 막말 정치 공방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자. ‘모독’ ‘총알받이’ ‘망언’ ‘미친 사람’ ‘암살 비극’ ‘반인륜적’ ‘언어 살인’ ‘테러’. 마주 보고 앉아 국정을 함께 논의하는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을 단어가 아니다. 전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사용될 말들이다. 전쟁은 한쪽이 없어졌을 때 끝난다. 서로가 서로의 타도 대상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 선(善)이고 상대는 절대 악(惡)이다. 이때 정치는 선과 악의 대결이다.

따라서 공감은 불가능하다. 공감에도 수준이 있다. 가장 낮은 공감은 상대의 눈높이에서 이해하는 것이고, 가장 높은 공감은 상대의 필요를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이 가장 낮은 수준의 공감인데 우리 정치에서는 이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상대의 존재와 존재 이유를 인정하고 공감하려면 나의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만 생각한다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다. 내가 틀릴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상대만이 잘못된 것이다. 서로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전쟁이다. 어느 한쪽이 사라질 때까지. 정치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대통령과 여당의 경직성 때문이다. 물론 야당 의원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말끝마다 발끈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온당했다. 국민이 판단하도록 내버려두면 될 일이기도 했다. 정치는 말이고, 말에는 격(格)이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품위 있는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 그게 여권의 책임이다. 공감의 정치, 그 시작은 대통령과 여당의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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