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보다 ‘조건부 승인’ 가능성 크다
  • 윤성옥│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 ()
  • 승인 2013.12.1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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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초 종편 재승인 심사에 관심 집중…“한두 개 탈락할 것” 전망도

내년 초에 있을 종합편성 채널(종편)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말이 많다. 과연 승인 취소 사업자가 나올지, 나온다면 JTBC·TV조선·채널A·MBN 중 어떤 채널이 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기회에 부적절한 종편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7월 종편 중간 점검을 통해 곧 시험을 치르게 되는 사업자에게 현재 스코어를 알려주고 재승인 심사 전까지 보완하도록 지침을 주었다. 9월 초에는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을 마련해 심사 절차와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1?2개 채널이 탈락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사업자들의 ‘군기’를 바짝 잡았고, 종편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관련해 엄격한 심사 의지를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편 탈락은 ‘가능한 일이지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재허가 제도의 법적인 취약성 때문이다. 둘째는 방통위가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거대 신문사들을 적대적 관계로 만들면서까지 굳이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종편 재승인 심사가 있는 내년 상반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종편 개국 축하쇼에서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가 축사를 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지방선거 앞두고 ‘탈락’ 쉽지 않을 듯

올해 9월 방송계에서는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방통위가 2009년 지역의 한 케이블 SO의 재허가를 거부했는데, 대법원이 이러한 방통위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재허가·승인 거부 결정이 법원에서 번복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방송위원회(방통위의 전신)는 경남 지역 중계 유선방송인 하나방송의 SO 전환 신청에 대해 승인을 거부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2007년 당시 대법원은 하나방송에 대한 승인 심사에서 방송위원회가 비율 산정과 감점 처리 중 행정 오류를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소규모 SO도 재허가·승인이 거부되면 소송을 제기한다. 국내 재허가 제도의 허술함 때문에 방통위의 결정은 번번이 취소되고 있는 게 현 실정이다. 과연 재승인이 거부된다면 종편 사업자들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종편 4사는 2012년 손실 규모만 2754억원에 이른다. 기존 보도 채널이었던 MBN은 다소 예외지만, 설비·장비·콘텐츠 등 막대한 신규 투자를 해놓은 종편 사업자로서는 사업권 박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이 법적으로 정교해보이지도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방통위가 법적 소송을 간과한 것인지, 실제 재승인을 거부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방통위 안팎에서는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채널은 탈락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종편에 반발하는 시민·언론 단체도 함량 미달 종편은 이번 재승인 심사에서 반드시 탈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노조와 시민 단체들은 공동으로 ‘종편 국민감시단’까지 발족했다. 종편 재승인 심사 과정을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종편이 한두 개쯤 탈락했으면 하는 바람은 사업자들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협소한 방송 시장에서 4개나 되는 종편이 경쟁하는 것은 모두 망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니지만 너는 좀 탈락해주었으면’ 하는 게 속내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최대의 관심사는 그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채널이 어디일까 하는 것이다. 결국은 재승인 심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치명적인 불법 행위가 적발된 사업자가 탈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심사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즉, 종편 도입 당시 허가 조건을 위반했다든지 치명적인 불법 행위가 적발되는 경우다. 현재 채널A의 경우 ‘고월’과 ‘환인제약’에서 받은 투자가 이면 계약을 통한 차명 투자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칫하면 방송법상 소유 지분 제한 규정까지도 위반한 것일 수 있다. 대법원이 방통위에 종편 심사 자료를 공개하라고 결정했지만 현재 MBN은 행정소송까지 제기하면서 주주 구성에 대한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종편들은 최초 허가 신청 시점과 승인 시점 사이 주주 변경이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문제점에도 방통위가 종편의 재승인을 실제 취소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오히려 강력한 조건을 들어 ‘조건부 승인’ 방식을 취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본인들의 의사와 관련 없이 KT, CJ E&M 등 특정사업자들의 인수·합병설도 떠돈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11월1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종편 탈락보다 특혜 개선이 더 시급”

최근 한 일간지에서는 종편에 대놓고 ‘괴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실 종편은 방송 성격이나 도입 취지만 본다면 ‘좋은 방송’이다. 지상파 방송과 달리 유료 방송에서 다양한 장르와 프로그램을 종합편성하는 것은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 유료 채널들이 대부분 전문 편성인 이유에서다. 현재 종편들이 보도 채널화된 것도 시장에서 자신들의 수익 모델을 찾아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사업자가 ‘돈’ 대신 ‘공익성’을 택해 ‘좋은 방송’인 종합편성을 굳이 하겠다면 정부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 승인이나 허가를 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규제 기관은 사업자가 원하면 모두 허가해주고 종편 채널의 편성에 대한 규제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시장에서 알아서 할 일이며, 그 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채널은 남고 아닌 채널은 시장 경쟁에 의해 퇴출되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종편에 대한 과도한 특혜에 있다. 2년 전 종편이 도입된 과정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거나 죽어가는 신문 산업을 살릴 특효약인 양 허상을 심어주었다. 거기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으로 지상파 독과점을 깨고 다양성까지 확보된다고 했다. 황금 채널 배정, 의무 전송제 도입, 광고 직접 영업, 방송발전기금 면제 등 다양한 특혜를 종편에 부여했다. 이런 특혜는 시장을 왜곡시켰다. 막말 방송 등 프로그램의 선정성, 정치적 편향성이 늘 문제가 됐다. 당초 약속한 일자리 창출과 콘텐츠 투자는 절반에도 못 미쳤고, 외주제작사 간 불공정 거래 문제는 지상파 방송보다 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종편 채널이 사실상 보도 채널화되면서 YTN·뉴스Y의 시청률 하락 등 기존 보도 채널들이 엉뚱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형편이다.

케이블 및 위성방송 사업자는 선택권도 없이 종편을 의무적으로 전송해야 하는 데다가 수백억 원의 수신료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200여 개의 PP 채널들이 유료 방송에 진입하기 위해 뼈를 깎는 경쟁을 하고 있다. 홈쇼핑 채널은 황금 채널 대역인 지상파 방송 인접 채널을 배정받기 위해 케이블·위성방송에 연간 7700억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야말로 종편만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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