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올해의 인물] 워싱턴에서 성추행 활극 벌인 ‘나라의 입’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12.2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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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여직원 ‘어찌’하려다 망신…이동흡·김병관·김학의·원세훈 등도 불명예

공인(公人)이든 사인(私人)이든 모든 유명인의 몰락에 공통적인 요인은 ‘돈’과 ‘여자’였다. 이 법칙은 2013년 한 해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사저널이 올해 최악의 인물로 선정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이 부문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많은 인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느 해고 평탄하게 지낼 수는 없겠지만, 특히 2013년은 새 정부 출범이라는 강력한 변수가 ‘몰락’의 폭을 키웠다. 권력 이양 과정 그 자체에 부침이 숱하게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장차관(급) 등 고위 공직의 전면 재편에 따르는 인사 검증은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도덕성 시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사가 많지 않은 데다 본격적으로 파헤치면 실정법 위반까지 드러날 만한 ‘내정자’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또 과거 권력에 대한 손보기와 새 정부의 권위 세우기를 위한 일련의 숙정 작업도 몰락 대상을 넓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이나 4대강 사업 전면 조사, ‘전두환 처리법’에 의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압류, 경제민주화 시책에 의거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의 구속이 전형적인 예다.

5월11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수행 중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해명 기자회견을 마친 후 퇴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러니저러니 해도 박근혜 대통령 패착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박 대통령의 인사 실력을 희화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 국정 평가 점수를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가 하면,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대국민 사과를 하게끔 만들었다.

사실 ‘윤창중 비극’은 예고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이 그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임명하자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갸웃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다소 자극적인 글과 말로 보수층 일각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대선 승리에 일조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아니다’ 싶은 그를 대변인에 기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깊은 신뢰를 표시했으나, 우려한 대로 대변인으로서 그의 행보는 시종일관 여러 뒷말을 양산했다. 마치 ‘인수위 부위원장’으로 보도진 위에 군림하는 모양새라는 취재진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부 출범 후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데려갔다. 언론은 아연했지만, 윤 전 대변인 본인은 대통령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하고 인수위에서의 대변인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을 법했다. 이 착각은 청와대에서 ‘만개’했고 대변인의 직속 상사인 홍보수석을 우습게 보는 상황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나중에 박 대통령을 곤궁에 빠뜨린 ‘워싱턴D.C. 성추행’ 사건도 필연이라는 것. 홍보수석에게 배당된 차를 자기에게로 돌리는 행위는 관료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백번 접고 보아도 해외 국빈 방문 중인 국가원수를 보필하기 위해 가장 바삐 움직여야 할 대변인이 술을 마시고 호텔 방에서 인턴 여직원을 ‘어찌’해보려 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워싱턴D.C.에서의 ‘활극’과 이후 청와대의 초보 대처, 이와 관련해 국내외에서 쏟아진 조소 등등은 새삼 입에 담기 민망스러울 정도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워싱턴D.C. 경찰 당국이 윤 전 대변인을 ‘경범’으로 분류함으로써, 미국 소환 조사 등에 따른 국가적 망신은 피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사의 한 구석을 더럽힌 추잡하고 한심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2013년 망신 퍼레이드는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명되자마자 위장 전입 의혹, 대기업 협찬 지시, 장남 증여세 탈루 등 10여 개의 시빗거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이 후보자는 업무추진비 사용 의혹 등이 줄을 이으면서 ‘종합 비리 세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급기야 야당의 공세를 ‘흑색선전’ ‘흠집 내기’로 비난하던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고개를 내젓자 사퇴해야 했다. 그뿐 아니었다. 6개월여 후 서울변호사회에 회원 등록을 신청했으나 “변호사직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이유로 거부되는 등 망신을 더해야 했다. 형식적으로는 이명박(MB) 정부에서 지명한 인물이었지만 박근혜정부 조각을 앞둔 ‘추태’는 다른 고위 공직자 인선에도 흙탕물을 끼얹었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인사 논란도 2013년 서두를 장식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핵 위협 등 긴박한 안보 상황을 들어 임명을 서둘렀지만 결과는 정반대가 됐다. 장관 내정 이후 쏟아지는 부동산 투기 의혹, 위장 전입, 늑장 납세에 무기중개업체 취업 등 30여 개의 ‘잡음’을 일일이 해명하며 1개월여를 버텼으나, 미얀마 자원개발업체 주식 보유를 신고하지 않은 사실 등이 추가로 불거지자 청와대에는 철회 요구가 빗발쳤다. 이미 그만두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던 MB 정부의 김관진 장관이 국방부장관을 계속 맡는 ‘희한한’ 상황은 그래서 벌어졌다.

과거 정권의 인사로 곤욕을 치룬 대표적 인물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MB의 총애를 받으며 행정안전부장관에 이어 국정원장이 돼 승승장구했던 그는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사건’과 관련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고 정보기관 수장이 개인 비리로 구속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 권영해 안기부장에 이어 두 번째로, 검찰과 국정원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번지며 박근혜정부에도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검찰은 올해도 최악의 상황 이어져

지난해 ‘검란(檢亂)’ 파동으로 본지 최악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었던 검찰에는 올해도 최악의 상황이 이어졌다. 올 초부터 언론을 장식한 김학의 전 차관이 연루된 성추문 파동은 검찰을 낯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비록 무혐의 처분을 받아 일단 ‘잠복’하긴 했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듯하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인이 계속 문제를 삼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최근 검찰에서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지난해 ‘스폰서 사건’ ‘피의자와의 검사실 성행위 사건’ 등으로 마음 상했던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검찰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이 밖에도 헌정 사상 최초로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된 현역 의원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만든 통합진보당 소속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을 면치 못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구자원 LIG그룹 회장 등 재벌 회장들도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부적절한 기업어음 발행과 계열사 간 자금 거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기업 윤리가 땅에 떨어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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