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지 마, 벗는 것도 예술이야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3.12.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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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포르노 스타들, 미술계·문학계 맹활약…선정성보다 예술성 중시

“프랑스 출신 섹시 여가수의 캘린더가 프랑스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국내 몇몇 언론은 최근 프랑스의 가수 클라라 모르간에 주목했다. 관심을 모은 것은 그의 누드 화보를 담은 달력이었다. 모르간의 캘린더 사진 전시회가 대박이 나 프랑스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인데, 사실 여기에서 소개된 모르간은 원래부터 가수는 아니었다. 그의 전직은 프랑스 최고의 포르노 배우다. 이미 포르노를 찍던 시절에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모르간이다.

프랑스의 최대 민영 케이블인 ‘카날 플뤼스’에서는 매주 토요일 심야 시간에 <주르날 드 하드>라는, 포르노 영화를 다루는 뉴스를 내보낸다. 클라라 모르간은 이 프로그램 진행자였다. <주르날 드 하드>는 200만명 가까운 시청자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중적 인기를 얻은 클라라 모르간은 2007년 흥미로운 시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가수와 모델 그리고 방송 진행자로 전업하겠다.”

국내 언론에도 소개될 정도로 모르간은 성공했다. 그의 사례에서 보듯 프랑스에서는 포르노 스타들의 크로스오버(장르의 교차) 행보가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클라라 모르간 외에도 많은 포르노 스타가 공중파를 비롯해 대중문화계로 진출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포르노 프로덕션인 ‘마크 도르셀’에서 활동했던 오비디는 18세 때 자신이 직접 업계를 찾아가 포르노로 데뷔해 4년간 활동한 후 소설가 및 영화 제작자로 전향했다.

2010년 열린 카프리스 페스티벌에서 노래하고 있는 프랑스 여가수 클라라 모르간(가운데). ⓒ EPA연합
TV에서 인기 얻은 후 포르노로 가기도

오비디가 메가폰을 잡고 찍은 다큐멘터리는 포르노 배우들의 사회 편입 문제를 다뤘다. 이 작품은 공영 방송인 ‘프랑스2’를 통해 안방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대중적인 스타가 포르노 배우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최대 민영 방송인 TF1의 주말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랄릴이 대표적이다. 전직 모델이었던 랄릴은 지상파에 출연해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마크 도르셀의 문을 두드려 포르노 배우로 데뷔했다. BBC뉴스가 보도한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국민 1인당 포르노 산업에 지출하는 액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하지만, 포르노는 여전히 터부시되고 음지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와 반대로 포르노와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프랑스에서는 중립적인 시각으로 포르노를 바라본다. 뚜렷하게 반대하는 움직임도, 그렇다고 환영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포르노 스타들의 사회적 행보는 늘 이슈가 된다.

미국의 포르노 스타였던 사샤 그레이는 2011년 미국의 에머슨 초등학교에 일일교사 자격으로 방문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수업을 진행했다. 학부모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항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사샤 그레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게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과거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일교사 활동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레이는 19세에 자발적으로 포르노업계에 발을 들였는데 2011년 그는 이미 포르노 스타로 정점에 섰고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난 상황이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에 주연으로 발탁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비록 흥행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영화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고, 급기야 미국 드라마 <안투라지> 시즌 7에 합류하며 안방극장에도 입성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 화랑가에서 톱클래스로 평가받는 가고시안 갤러리의 전속 작가 리처드 필립의 작품에 모델로 참가해 뉴욕의 화랑가와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지난 11월 책 홍보차 파리를 방문해 카날 플뤼스에 초대된 그레이는 함께 초대받은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로부터 “용기 있는 활동”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우리 정서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르노 배우가 대중문화로 편입되거나 컬트 무비를 통해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유럽에선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제프 쿤스는 포르노 배우이자 이탈리아 국회의원으로 유명했던 치치올리나의 성행위 장면을 사진과 조각 등 다양한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의 작품이 발표되었던 1991년 당시에는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 그 문제작들은 당당히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포르노가 프랑스에서 칸 영화제 대상

유럽에서 마니아층을 두텁게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도 빼놓을 수 없다. ‘꽃과 성적 유희’를 주제로 하드코어를 방불케 하는 그의 사진에 대해 일본에서는 ‘엽기적’이라고 비난하며 빨간 줄을 그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뚜렷한 아라키만의 미학 세계를 칭송받는다.

미술보다 성(性) 담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영화에서는 이미 포르노와 대중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인 카트린 브레야의 작품은 늘 실제 성행위와 파격적인 장면들로 화제를 모았다. <로망스> <지옥의 체험> 같은 작품에서 모든 배우는 실제로 성관계를 갖는다. 그의 작품 두 편에 출연한 로코 시프레디는 이탈리아 출신의 포르노 배우인데도 세계적인 컬트 무비 배우로 떠올랐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실제 정사를 갖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파격적이었던 작품은 일본의 거장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이다. 추잡한 포르노라는 비난과 함께 일본에서는 상영 금지의 철퇴를 맞았지만, 프랑스는 오시마 감독에게 칸 영화제 대상을 안겨주며 그의 작품을 포르노가 아닌 명작의 반열에 올렸다. 당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하는 일본 관광단이 만들어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선정성보다 예술성이 상위 가치로 인정받는다. ‘예술성’이 인정되면 ‘선정성’과 무관하게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한국에서는 24년 만에 가위질당한 채 상영됐던 <감각의 제국>을 ‘악테’와 같은 프랑스 예술 전문 채널에서는 무삭제로 안방에 내보낸다.

최근에는 포르노가 아니지만 포르노에 가까운 수위를 보여주는 대중문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선정성’으로 특히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분야는 음악이다.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리한나의 경우에도 언제나 초점은 ‘노출’이다. 20년 전 마돈나의 누드 사진은 아직까지 뉴스거리가 된다. 성행위 퍼포먼스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마일리 사일러스의 활동은 프랑스에서 ‘포르노 팝(porno-pop)’으로 규정되고 있다. 프랑스 무가지 메트로는 “사일러스는 ‘포르노 팝’ 전략으로 부재중인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의 자리를 꿰찼다”고 분석했다. 그의 성공 이후 음악계의 뮤직비디오는 전체적으로 ‘섹시 코드’를 넘어 ‘섹스 코드’로 가고 있는 분위기다. 포르노를 좇아가는 포르노적인 선정성이 대중문화에서 확실한 흥행 코드로 자리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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