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이 자기 돈으로 경쟁사 만드는 건 배임”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2.3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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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현 철도노조 지도위원) 인터뷰

“아직 점심, 저녁도 못 먹었습니다.” 시사저널이 2013년 12월26일 만난 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쉬지 못한다. 백방으로 뛰며 ‘수서발 KTX’ 경쟁 체제 도입의 부당함을 알리고 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철도기관사 출신으로서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지낸 김영훈 지도위원은 “정부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직접 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못 믿는 이유는.

‘대통령이 말했는데 왜 못 믿느냐’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이들에게 ‘짐이 곧 법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꾸로 묻고 싶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의 공약을 하나도 안 지키고 있는데 무작정 믿으라고 하면 어떻게 통하겠는가.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정권 때 4대강이 대운하가 아니라고 했던 것이 다 거짓으로 드러났지 않은가.

ⓒ 시사자널 박은숙
수서발 KTX 경쟁 체제 도입이 민영화 수순이라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우리 주장이 아니라 이미 국제 규범과 학문적으로 확립돼 있는 개념이다. 철도 민영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법인의 성격이다. ‘상법의 적용을 받는 주식회사’라면 민영화로 봐야 한다는 것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2001년 썼던 논문에도 나와 있다. 일본도 국철을 철도주식회사와 화물철도주식회사로 분할해 출범시킨 것이 민영화의 시작이라고 정부와 학계에서 말한 바 있다. 수서 주식회사를 분할해서 설립하는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방식의 민영화다. 이게 민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국민 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철도 민영화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꽤 있지 않은가.

처음 KTX가 만들어진 후 민간 항공사가 타격을 받은 게 그들이 비효율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지 않나. 교통 서비스의 특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손실이다. 민간이 운영하면 효율적이고, 공공이 하면 비효율이라는 것 자체가 허상이다. 경쟁 체제를 만들면 효율성이 달성된다고 하는데, 코레일이 자기 돈으로 경쟁 회사를 만드는 건 경영상 배임 아닌가. 세상에 이런 엉터리 같은 일이 어디 있나. 발전회사를 5개로 분할했는데 경쟁이 되기는커녕 원가 도입 비용만 늘어나 결국 전기 요금에 반영됐다. 늘어난 건 자회사 사장뿐인데 이게 바로 비효율이다.

그렇다면 매년 수천억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데도 적자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돈을 코레일에 ‘지원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노인 무임 정책을 하면 그 손실분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인데, 그건 정부가 복지 정책 차원에서 하는 것을 코레일이 대행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화물열차가 지금 엄청 적자를 내고 있는데, 운송 원가 대비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낮은 운임 때문이다. 그 덕에 운송을 이용하는 대기업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거다. 코레일에 주는 손실분이 무슨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당장이라도 무임 혜택 등을 다 없애버리면 정작 코레일은 경영 사정이 나아지고 적자도 벗어나겠지만, 그러면 결국 반대급부로 누군가는 부담을 안게 된다. 제일 우스꽝스러운 논리 중 하나가 독점이라서 비효율적이고 적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독점인데 어떻게 적자가 나겠나. 말 자체가 모순이다. 지역 노선 등 공공 서비스는 어떤 경영자가 와도 흑자 경영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사회적 필요에 의해 유지하는 것이다. 공기업 설립 이유 자체가 공기업을 통해 공공성을 대행하자는 것인데, 정부가 마냥 지원했다고 하는 건 설립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정부가 이러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역 노선 등에 돈을 보전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것이다.

철도노조가 고액 연봉을 받는 귀족 노조라는 비판도 있다.

코레일 직원들은 엄격히 정부 통제를 받는 공기업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에 의해 임금을 받지, 사기업처럼 자율적으로 임금 교섭을 한 적이 없다. 지금 신규 채용을 안 해서 직원 평균 연령이 48세를 넘어가고 있다. 또 제조업처럼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으로 단순하게 따질 수도 없다. 매출액 자체가 원가 대비 79%밖에 안 되는 운임을 받아서 적은 상황인데, 여기에 인건비를 대비하는 건 맞지 않다. 매출에 대비해 연봉을 계산하자면 사람 많이 타는 경부선 운행 기관사는 능력과 무관하게 유능한 기관사가 되고 다른 작은 노선은 무능한 기관사가 돼야 한다.

노조가 회사 문제에 정치권을 끌어들인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새누리당이 철도 문제를 정쟁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국민 생활과 직결된 철도 민영화 문제를 배제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민생이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국민 생활과 직결된 공공 정책을 수립할 땐 당연히 의회 차원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리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놓고 자꾸 ‘불법 파업’이라고 하는데, 유죄 확정도 안 된 상황에서 이런 말은 사법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다.

정부에서 철도 문제에 강경하게 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요즘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집권 1년 차가 아니라 마치 내일모레 임기를 마칠 정권 같다. 대선 콤플렉스 때문에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오는 것 같다. 그 강박관념으로 모든 걸 힘으로 제압하려는 시대착오적 행위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집권 1년 차에 ‘여소야대’도 아니고 집권 여당이 절대 과반수인데 이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것이 뭐가 두렵나. 대통령 취임사 때 “전체 국민이 100%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1년도 안 돼 민주노총을 테러범으로 규정해 쑥대밭을 만들어놓았다.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한 집권당의 무능함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 행정부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논의하자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3권 분립 민주주의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인가. 독일은 무려 4년 동안 철도 구조 개혁과 관련한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를 도출해냈다. 우린 4년은 고사하고 4개월도 논의가 안 되고 있다.

민영화가 대안이 아니라면 철도 경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소비자로서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철도 이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측의 낙하산 문제도 견제하면서 노조의 무리한 복지 요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는, 시민이 참여하는 감시 체계가 생겨야 한다. 공공기관을 어떻게 효율화하고 혁신시킬지 감시 체계가 만들어지면 투명한 운영이 가능해지고 그렇게 되면 부채 원인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객관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서로 자기가 유리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싸우니 논의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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