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인터넷 동거는 실험 아니라 생존 게임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12.31 14: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도 큰 폭의 적자가 예상되었고, 이 잡지를 가지고 지속적인 수익을 낼 길이 보이지 않았다.” 2010년 워싱턴포스트 컴퍼니의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이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한 말이다. 식상할 정도로 되풀이되지만 시사주간지의 위기론이 다시 부각됐다. 일각에서는 ‘종이 매체의 종말’을 예고했고, 그 신호탄이 시사주간지 시장의 붕괴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이어졌다. 하지만 파도를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는 시사주간지들의 분투는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2013년 한 해에도 슈피겔은 ‘미국이 10년 전부터 독일 메르켈 총리를 감청했다’는 보도를 통해 세계적인 이슈를 주도했다. 200명 넘는 기자를 보유한 채 100만부 가까운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슈피겔의 권위는 흔들림이 없다. 물론 이런 슈피겔도 온라인의 ‘공습’에 휩싸이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슈피겔 온라인’은 주간지 슈피겔을 모태로 탄생했다. 슈피겔의 명성을 등에 업고 안정적으로 정착한 슈피겔 온라인은 지금 월 페이지뷰가 10억회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함께 성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간지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은 한때 갈등을 빚었다. 주간지 슈피겔의 기자는 현재 210명인데, 슈피겔 온라인 역시 기자 수를 점점 늘려 지금은 150명 규모가 됐다. 슈피겔 온라인의 확장 전략은 2010년 블로거로 활동하는 자유기고가 카트리나 보헐트가 슈피겔 온라인 대표로 오면서 본격화됐다. 같은 ‘슈피겔’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하나는 종이,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라는 다른 플랫폼을 통해 고유의 저널리즘을 펼치는 영역 굳히기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2012년 4월 슈피겔 온라인 편집장이 주간지 슈피겔 편집국장의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주간지 슈피겔의 편집국장이 슈피겔 온라인의 전면적 유료화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무료로 기사를 제공하는 슈피겔 온라인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 유료화 주장의 이유였다. 이에 슈피겔 온라인은 인쇄 매체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오히려 국장 교체 요구라는 강수를 두며 더 이상 슈피겔 온라인이 주간지의 종속적인 매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에서 일어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갈등. 인쇄 매체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층기획 취재에 적합한 형태로 조직해야”

여러 가지 지표에서 국내 시사주간지들은 슈피겔보다 더욱 강한 위기의 신호를 내고 있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한때 15만부 이상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며 국내 시사주간지의 르네상스를 이끌기도 했지만, 지금 국내에서 10만부를 넘기는 시사주간지는 전무하다. 오프라인의 위기를 만회할 수 있는 온라인이라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무료화의 틀에 갇혀 자생력을 기대하기란 무망한 상태다. “편집과 제작의 모든 면에서 실험성을 키우고, 심층기획 취재에 좀 더 적합한 형태로 조직을 운영하고 역량을 배치하는 점을 여전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제시한 해법이다.

그럼에도 시사주간지의 희망은 분명히 있다. 나아가야 할 길도 확실하다. 인쇄 매체의 위기라고 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시사저널이 세계 3대 시사주간지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타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독일의 슈피겔을 주목하는 이유다. 이들이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더욱 냉혹하게 펼쳐질 생존 경쟁에서 어떤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 그 길을 묻고자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