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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1.08(Wed) 18: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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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청률 50%를 넘긴 TV 드라마처럼,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막장 스토리도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 변호사 시절 이야기다. 정치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전직 대통령 관련 영화다 보니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을 줄은 몰랐다. <변호인> 열풍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영화 한 편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한때 ‘제대로 개봉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영화다. 스크린에 오른 이후에는 ‘별점 테러’에 ‘티켓 테러’까지 당했다. 그런데도 관객이 끊이지 않는다. 흥행 속도가 무섭다. 기록이란 기록은 죄다 갈아치우고 있다. 관객 수 700만명을 넘어 1000만명 고지가 눈앞에 있다. 역대 최다 관객(1362만명)을 동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를 넘어설 기세다. 관객 수 증가 추세로는 이미 앞지른 상태다. 이대로라면 한국 영화의 역사는 새롭게 쓰일 게 분명해 보인다.

   
ⓒ NEW제공
<변호인> 열풍이 거세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일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1981년에 일어난 시국 사건을 다룬 영화다. 군사정권의 용공 조작 사건인 ‘부림 사건’(부산 학림 사건)이다. 30년도 더 지난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처질 것 같은 분위기다. 당시를 기억하는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와 무관하게 무엇인가가 발길을 잡아끈다. 문화 영역을 넘어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알려진 대로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의 실제 모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세무 전문으로 승승장구하던 ‘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빨갱이’로 내몰린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작진은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지만 많은 관객이 배우 송강호가 열연한 송 변호사에게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영화가 투자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노무현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였다.

몇 가지 극적 장치를 제외하면 <변호인>은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 예를 들어 세무 변호로 돈을 벌어 이사한 남천동 아파트는 노 전 대통령이 공사를 한 아파트는 아니었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생활이 어려웠던 그가 울산에서 막노동을 한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변형시킨 것이다. 고문 사실을 법정에서 증언한 군의관도 실제로는 없었다. 하지만 부당한 수사와 고문에 분노하는 고졸 출신 변호사는 현실 속 인물이다.

“친노 동원령 내렸다고 이렇게 들어오겠나”

부림 사건의 변론을 맡던 날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끔찍하다. 우리 아들도 머지않아 대학에 가는데 이런 사회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변론을 맡은 후 고문당한 상처를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온몸에 시퍼런 멍 자국이 남아 있었고, 변호사인 나조차 믿지 못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 송 변호사의 분노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변호인>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정치인 노무현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친노(친노무현) 동원령’ 때문일까. 영화 개봉 초기까지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관객 수 1000만명을 바라보는 상황은 ‘노무현 지지자’의 결집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여권의 한 인사도 “친노 쪽에서 몇 번씩 다시 보기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작전을 짰다고 관객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겠나.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현실 정치 상황을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현재 친노 진영은 상당히 고립돼 있다. 수백만 명을 모을 만큼 동원력이 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분석은 어떨까. 출범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놓고 볼 때 상당 부분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론이 제기된다. 2012년 대선 직전에 개봉된 영화 <남영동 1985>가 비교 대상이다. 이 영화는 ‘민주화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 전 의원이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간 당한 고문의 참상을 담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에 개봉돼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 성적은 부진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당시는 정권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을 때인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보다는 영화 <변호인>이 담고 있는 보편적 정서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송 변호사는 영화 속에서 ‘상식’을 변호한다. 부림 사건을 계기로 들여다보게 된 공권력의 횡포는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헌법 1조 2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상식이 법정에서조차 외면받는다. 상식이 거부당하는 현실은 현재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핵심 정책 기조로 삼고 있는 박근혜정부는 현 정권의 행태가 비정상이라는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박주민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영화를 보면서 요즘의 공안적 분위기와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정서는 ‘포옹’으로 표현된다. 송 변호사는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를 찾아가 그를 따뜻하게 보듬는다. “끝까지 네 편이 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속삭이는 듯하다. 포옹이 필요한 건 그때의 진우만이 아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안부를 물어온 학생들에서부터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장기 파업에 나섰던 철도 노동자들에게까지 등을 돌릴 게 아니라 가슴을 열어주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하고 있을까.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요즘 들어 MB(이명박 대통령) 시절이 그립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때는 반응이라도 있었다는 거다”라고 꼬집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송 변호사는 진우의 변론을 맡게 되면 예전의 ‘돈벌이’를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빨갱이’의 손을 잡는 순간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을 결단을 한 것이다. 변론을 맡은 후 그는 검찰이 ‘불온서적’이라고 낙인찍은 책들을 밤새도록 읽고 또 읽어 반론을 준비한다. 경찰이 매수한 방청객으로 가득 찬 법정에서도 한 발짝 물러섬이 없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정치적 평가를 떠나 약자를 위해 할 얘기는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또 ‘연대’의 힘을 믿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수의를 입은 송 변호사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순간이다. 판사는 그의 변론을 맡은 변호사를 한 명씩 호명한다. 무려 99명이나 된다. 이름을 부르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나 혼자만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이 하나씩 모여 함께하면 가능하다. 연대를 하면 힘이 생긴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영화 <변호인>은 개봉 12일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노풍’ 재현될 경우 정국 요동

영화 <변호인>은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의 속내가 복잡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한두 달 지나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라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PK(부산·경남) 출신의 한 인사는 “부산에서 <변호인>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영화도 영화지만 입소문이 심상찮다”고 전했다.

여권이 이른바 ‘친노 프레임’으로 현상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능구 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로 영화가 흥행하고 있는 게 아니다. 관객들의 호응과 공감을 친노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대응하다가는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정부 운용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월3일 영화 <변호인>을 보기 위해 부산시 진구의 한 극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은 일단 ‘호재’로 여기는 분위기다. 계파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온도 차가 있지만, 영화를 통해 민주화운동이 왜 필요했고 이를 억압한 게 어떤 세력인지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역풍을 우려한 듯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친노 진영이 특히 그렇다. 좌장 격인 문재인 의원이 영화 관람 시기를 늦춘 것도 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문 의원 측의 한 인사는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1월3일에야 부산에서 영화를 봤다. 민주당이 현상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해구 교수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반발 성격이 있겠지만 그것이 민주당 지지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층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단 민주화 이후 정치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할 계기가 마련됐다. 여권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분 ‘노풍’이 재현될 경우 정국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 인물인 송 변호사를 굳이 노 전 대통령과 연관 짓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에 대한 갈망이 특정 정치 세력에게로 향할 이유는 없다. 야권도 넋 놓고 구경만 할 상황은 아니다. 만약 <변호인> 열풍이 ‘광장’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기존 정치에 대한 경고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보며 ‘노변’ 생각에 많이 울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영화 <변호인>이 관객의 공감을 이끈 데는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의 인간적인 면모가 한몫했다. 송 변호사는 ‘방탄 망토’를 두른 영웅이 아니다. 돈 없고, 백 없고, 가방끈 짧은 소시민이다. 갖은 고생 끝에 변호사가 됐지만 여전히 돼지국밥에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무침을 한 가득 넣어 먹기를 좋아한다. 송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땠을까.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부림 사건’에 연루돼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당시 22명에 이르는 ‘공범’이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들은 형 집행정지로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야 처음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이 정도로 ‘엉터리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들을 변론해준 변호사는 5명이었는데, 노무현 변호사(노변)가 각별히 챙겼다고 한다. 이 전 수석비서관은 “감옥에서 나온 뒤 인사드리러 갔다가 꼬리곰탕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먹어봤다”고 회상했다.

‘노변’은 다른 변호사들과 달랐다고 한다. 징역 살고 나온 이들에게 “너그들 뭐 해먹고 살래. 취직도 안 되는데”라며 걱정을 했다. 당시 피해자 중 한 명인 송병곤씨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그는 지금도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을 맡고 있다. 이 전 수석비서관도 이때 맺은 인연으로 ‘정치인 노무현’의 책사 역할을 맡아 청와대까지 함께 갔다. 결혼 적령기에 있던 이들의 주례도 ‘노변’ 몫이었다. 송 사무장과 이 전 수석비서관 모두 그의 주례사를 들으며 혼인 서약을 했다.

부림 사건 이후 인권 변호를 맡으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농성장에서 집회 사회를 보기도 하고, 경찰이 잡아가려고 하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티고, 플래카드를 직접 들고 가두시위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 전 수석비서관은 “영화를 보며 ‘노변’ 생각에 많이 울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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