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커피 마시며 잠에서 깬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4.01.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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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생동감 불어넣자는 의미로 커피 이름 차용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오라클(Oracle)이다. 오라클의 의미는 신탁·예언이다. 영화 속 오라클 역시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미래 예측이 가능한 이유는 과거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오라클은 세계 최대 데이터베이스(DB) 전문 IT회사인 오라클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오라클이 쿠키를 구워 주변 사람에게 나눠 주는 장면은 바로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쿠키를 전달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쿠키는 식량이 아니라 ‘지식의 덩어리’를 상징한다.

<매트릭스>에서 오라클이 지식의 보고로 설정된 이유는 세계의 많은 기업이 DB 서버로 오라클 서버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가장 많이 쓰는 DB 서버가 오라클 서버인 까닭에 <매트릭스> 안에서 오라클이 세계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보관하는 전지전능한 정보 프로그램으로 설정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오라클 본사. ⓒ 오라클 제공
오라클은 DB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다.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 제품은 전 세계 기업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라클(ORACLE)은 2009년 4월20일 썬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인수하는 큰 규모의 합병을 성사시켰다. 인수 가격은 74억 달러(약 9조8000억원)로 주말 종가에 42%의 경영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이다. 썬은 원래 IBM과 인수 협상을 진행했으나 가격 문제로 협상이 어려워지자 오라클을 택했다. 오라클이 서버 시장의 강자인 썬을 인수함으로써 전 세계 기업에 대한 오라클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썬은 과거에 서버 제품으로 명성을 날렸고 최근에는 ‘자바’라는 컴퓨터 언어와 데이터베이스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기업이다. 이에 따라 자바도 오라클의 품으로 들어가게 됐다. 이미 서버와 DB 쪽에서 최강자인 오라클로서는 썬의 서버 기술보다 자바가 더 탐났을지 모른다. 그만큼 자바는 중요한 도구다.

오늘날 자바는 주요 컴퓨터 언어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컴퓨터 언어를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많은 개발자는 자바 개발자다. C언어 개발자보다 많다. 자바 개발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터넷과 웹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전 세계 스마트폰 운영체제 1위인 안드로이드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자바를 이용해서 하기 때문이다.

여성 개발자 힘으로 ‘자바’ 탄생

그래서 인터넷 세대에게는 커피 이름인 자바보다 인터넷 언어인 자바가 더 익숙할 수 있다. 물론 자바의 로고도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 그림이다. 기존의 컴퓨터 도구나 언어가 딱딱한 공학적 이름을 가진 것과 달리 자바는 매우 향기로운 이름을 가졌다. 커피와 컴퓨터 언어는 아주 이질적이다. 자바가 이처럼 향기로운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자바 개발팀원이자 마케팅 담당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자바를 대중화시킨 일등 공신 중 한 명은 킴 폴리제(Kim Polese)라는 여성이다. 그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근무할 때 자바 개발팀에 있었다. 1996년 그는 동료들과 함께 ‘마림바(Marimba.com)’라는 회사를 차린다. 마림바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의 선두 주자인 클라이너 퍼킨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급성장했고, 킴 폴리제는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썬이 자바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도중인 1993년에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합류한다. 그는 4명의 자바 개발팀 중 유일한 여성이자 유일한 마케팅 담당자였다. 킴 폴리제의 마케팅 능력 덕에 자바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급성장한다. 이로써 썬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IT 시장의 거물로 다시 태어난다.

폴리제는 왜 자바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인터넷에 활기찬 생동감을 불어넣자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자바 개발팀이 자바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데는 근처 커피집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개발팀의 이름 첫 글자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자바가 처음부터 커피 이름을 가진 것은 아니다. 자바는 처음에 ‘Oak’라는 코드명으로 개발됐다. ‘Oak’라는 이름은 사무실의 창 앞에 서 있는 참나무(Oak)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다른 코드명은 ‘Green’이었다. 자바를 만들던 팀 이름이 그린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썬이 ‘Oak’ 대신 자바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Oak라는 이름의 상표가 등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Oak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상표를 등록해야 했기에 커피 이름을 딴 자바를 선택했다.

원래 이름은 개발팀 코드명인 ‘Oak’

당시 썬에는 ‘NeWS 프로젝트’를 이끌던 제임스 고슬링이라는 유명한 개발자와 패트릭 노튼이라는 25세의 젊고 재능 있는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찾아보기로 하고 그린팀을 만든다. 처음 팀의 목표는 가전제품이나 휴대용 기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주는 기술이었다. 먼저 이런 장치에 들어갈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사용할 언어를 개발하기로 하는데 이 프로젝트 이름이 ‘Oak’였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의 상당수가 자바로 개발되는 이유는 처음부터 자바의 목표가 모바일 기기를 목표로 개발된 언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썬은 그린팀의 성공을 확신하고 ‘First Person’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가면서 당시 붐이 일기 시작한 TV 셋톱박스 시장 진출을 노렸다. 하지만 실리콘 그래픽스라는 경쟁사에 밀리면서 Oak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 개발팀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웹(world wide web)에 주목한다. 웹이야말로 자바를 최적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라 생각한 개발팀은 ‘핫자바’라는, 자바를 기반으로 한 웹브라우저를 개발한다. 동적이고 화려한 핫자바와 컴퓨터 언어인 자바는 순식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는 마케팅 담당자인 킴 폴리제의 활약이 큰 힘이 됐다. 썬은 1995년에 자바라는 이름으로 전시회에 출품한다. 이때부터 자바는 인터넷 언어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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