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 정략적 계산에 빠져선 안 된다
  •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
  • 승인 2014.01.14 1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 백년대계, 정쟁 대상 될 수 없어…박근혜정부 진지하게 고민할 때

개헌에 관한 정치권의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항상 정권 말기에 나왔다가, 다음 정권 초기에는 사라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개헌 논의 역사다. 최근 새누리당 최고위원 중진 연석회의에서 ‘친이’ 이재오 의원과 ‘친박’ 서청원 의원이 개헌 문제를 놓고 입씨름을 벌인 것은 국민에게 ‘개헌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대목이다. 국가 백년지대계가 정파 간 정쟁 소재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동 때문에 개헌 논의가 본질에서 벗어나 정략적 계산에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는 생각을 하는 정계와 학계 인사가 많기 때문이다. 강창희 국회의장도 신년사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자신의 임기 내에 개헌 내용을 확정 짓고자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에 힘써야 할 때 개헌 얘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음에도 국회의장이 이런 의지를 계속 표명하는 것은 삼권분립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매번 반복되는 ‘대선 불복’ 논란 이제 그만

지금의 헌법 체계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1987년 당시는 다 알다시피 군사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비로소 민주적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기다. 당시 상황에서 가장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었던 측면은 독재와 같은 장기 집권을 막는 일이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정권이 개헌을 추진하더라도 그 헌법의 적용은 그다음 정권부터 해당한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는 것이다. 또한 ‘5년 단임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세부적 사항들은 관심 밖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그냥 장기 집권만 막으면 민주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우리도 두 번의 정권 교체를 경험했기 때문에, 장기 독재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대신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바로 ‘제도에 대한 신뢰’ 부분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는 민주주의 정착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이는 사회자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와 관련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대선 불복’에 관한 것이다. 지금 야당은 “대선 불복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야당의 주장이 대선 불복의 맥락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듯 대선 이후 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기 이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이후에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선, 대선 직후 컴퓨터 개표 조작설이 퍼졌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이회창 후보의 득표 차이가 57만여 표에 불과하자, 충격에 휩싸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당원들은 개표 오류설을 제기하며 대선 닷새 뒤 대선 무효 소송까지 제기했다. 결국 재검표를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한나라당은 책임론을 비롯한 내분에 휩싸여 결국 당시 서청원 대표가 사임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한나라당의 대선 불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2003년 9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누가 봐도 명백한 대선 불복이다.

1월8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맨 왼쪽)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이재오 의원(맨 오른쪽)의 개헌 주장에 반박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감사원·국정원, 독립 헌법기관으로 바뀌어야

이런 역사를 답습하기라도 하듯이 지금 다시 대선 불복 논란이 일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제도에 대한 신뢰가 중요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대선 불복은 쓸데없는 국력 낭비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개헌을 논한다면 권력구조의 근본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계속 대통령제를 고집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대두된다. 우리는 의원내각제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내각제=혼란’이라는 생각을 온 국민이 갖고 있다시피 한데, 이런 편견부터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은 물론, 좀 잘산다고 하는 나라 중에 대통령제를 하는 곳은 미국과 우리 정도다.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니까 제외한다 하더라도, 대다수 선진국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와 정치 문화나 기질이 비슷한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정국의 혼란이 계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의 경우 권력 교체 빈도로 치면 전 세계 일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 역시 사회적으로 혼란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의원내각제가 잦은 정권 교체로 정치·사회적 혼란을 가져온다는 식의 사고는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의원내각제가 도입된다면 최소한 선거 불복 같은 현상은 없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도에 대한 신뢰를 멍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공무원들의 정치권 줄 대기인데, 내각제를 할 경우 언제 정권이 바뀔지 몰라 정치권에 줄 대는 것을 자제하게 될 것이다. 특히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정권 교체에 대비해 국가기관들이 섣불리 정치 혹은 선거에 개입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의원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경험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중요하다. 우리 역사에서 의원내각제는 겨우 1년 남짓 유지됐기 때문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바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 문제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 사업이었던 이른바 4대강 사업에 대해 감사원은 전·현 정권 동안 무려 세 차례나 말을 바꿨다. 감사원이 이렇듯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데는 제도 탓이 크다. 지금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돼 있는데 이런 나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감사원이 행정부 소속이면서 행정부를 감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감사원은 의회 소속이다. 비단 감사원뿐만이 아니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의 법적 지위 역시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개헌을 통해 헌법적 독립 기관으로 법적 위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개헌을 통해 손질할 게 많다. 그럼에도 경제와 같은 다른 문제의 시급성을 들어 개헌에 반대하는 것은, 국가의 먼 장래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분단국가의 특수한 성격상, 그리고 국민 정서상 대통령제를 바로 버리기 어렵다면, 지금의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이원집정제부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고려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고치고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 백년지대계를 고민하는 현 정부의 의지다. 과거 정권들처럼 힘 다 빠졌을 때 대선 후보들에게 휘둘리며 개헌 논의를 받아들이는 식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지금과 같이 정권의 힘이 있을 때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그래야만 박근혜정부는 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