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사외이사 10명 중 2명 의료계 인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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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60개 상장사 분석…국회·정부 “부적절 관계” 지적

시사저널은 지난해 두 차례(2013년 4월9일과 16일자)에 걸쳐 대학병원 의사들과 전직 보건복지부 차관이 제약회사의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는 사실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약 처방권을 가진 의사들이 제약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행위는 여러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제약회사와 의사 간 리베이트 문제가 시끄러운 때여서 병원과 제약회사의 불법 유착 관계 의혹이 일었다. 리베이트는 결국 국민의 세금이라서 병원업계와 제약업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보도 이후 이철 연세의료원 원장은 LG생명과학 사외이사직과 감사위원직을 모두 사임했다. LG생명과학은 지난해 7월24일 공시를 통해 이 원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중도 퇴임했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이 회사의 사외이사직을 맡아온 이 원장의 임기는 2014년 3월까지였다.

그러나 다른 의사들은 여전히 제약회사 이사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60개 상장 제약회사 사외이사의 면면을 분석한 결과 전·현직 의료인과 복지부 고위 공무원 출신 21명이 등재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제약회사 소속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2명은 의료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인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각 병원에서 과장급 이상 고참 교수이며 복지부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제약회사와 의사들의 유착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왼쪽)과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11월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제약회사와 의사 출신 사외이사의 부적절한 관계를 지적했다. ⓒ 연합뉴스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

국민의 의혹이 증폭되자 지난해 11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약회사 사외이사로 있는 의사들이 도마에 올랐다. 국회 보건보건복지위 소속 김정록 의원(새누리당)은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사외이사로 영입된 의사들은 제약사와 유착 관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도 “공감한다”고 답변해 의료인의 제약회사 사외이사 활동에 관심이 쏠렸다.

이에 따라 김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이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장이 의료 관련 업종의 사외이사로 선임 또는 해임될 경우 복지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김 의원은 이를 이 차관에게도 제안했고, 이 차관은 “민간 계약인 관계로 법률적 문제 등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법안을 오는 2월 임시국회에 상정할 계획인 김 의원은 “제약회사가 현직 의사나 의료기관의 장을 사외이사 또는 임직원으로 선임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유착 관계가 새로운 리베이트의 유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의사와 제약회사 간의 유착 관계를 근절해 이에 따른 국민 부담을 해소하려는 것이 법률 개정안을 낸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뿐만 아니라 제약회사에도 강한 처벌 장치를 마련했다. 앞으로 리베이트 영업이 두 번 적발된 제약회사는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할 전망이다. 리베이트 처벌을 대폭 강화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의약품 리베이트가 처음 적발되면 최대 1년 동안 건강보험 적용 제외 △두 번째 적발되면 보험급여 목록에서 아예 삭제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을 제외했을 때 국민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의약품에는 ‘건강보험 제외’ 대신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법안을 발의했던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실은 “리베이트 적발 때 가격 인하 등 행정처분을 할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은 제약회사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건강보험 적용 중지라고 판단했다”고 입법 배경을 설명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리베이트 규제 가운데 가장 강력한 처벌 조항이라는 반응이다. 리베이트 영업이 적발됐을 때 제약회사와 의사를 함께 처벌하는 기존의 쌍벌제 조항과 달리 이 법안은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회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리베이트 의약품의 건강보험 적용 제외는 사실상 아웃이라서 영업 활동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사들이 의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조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제약회사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신약 개발에 참여했던 한 의사의 말은 달랐다. 대학병원의 한 중견 의사는 “굳이 제약회사에 임원으로 직함을 걸지 않더라도 충분히 신약을 개발할 때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외의사 1인당 평균 연봉 2400만원

해당 의사와 그 의사들을 사외이사로 둔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의사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제약회사로부터 보수를 받는다. 제약회사에 사외이사직을 걸고 있는 의사들은 등기임원이기 때문에 그렇다. 등기임원은 이사회 구성원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 그에 걸맞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보수는 제약회사의 정기총회 등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집행된다.

제약회사가 의료인 사외이사에게 지급하는 금전적 보수는 얼마나 될까. 이 연봉은 제약사의 내규와 사외이사로 있는 의사들의 직급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한 의사가 많게는 1억원 이상을 받는다. 수억 원대의 주식을 소유한 의사도 있다. 의료원장급과 병원장급은 연 5000만~6000만원, 고위 공직자 출신은 연 6500만원 이상, 대학병원 과장급 의사는 연 3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한 대학병원 과장급 교수는 2억8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비상근 임원이라서 그 의사에게 연간 1억원가량의 보수를 지급했다는 게 제약사 측의 설명이다.

업계 전문지 ‘메디파나뉴스’에 따르면 상장 제약회사가 사외이사 한 사람에게 지출한 연봉은 2012년도 42개 회사 기준 평균 2478만원으로 집계됐다. 월 200만원가량인 셈이다. 의사 출신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제약사들의 연봉을 보면 녹십자가 67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녹십자의 사외이사는 윤성태 전 복지부 차관 등이다. LG생명과학은 한 사람당 6000만원을 지급했다. 2011년에 비해 500만원이 인상된 금액이다. 이 밖에 유한양행은 5040만원, 동화약품은 3380만원, 종근당홀딩스는 3300만원, 일동제약은 3000만원, 대웅제약·대화제약은 각각 2400만원을 지급했다.

사외이사 제도는 대주주와 관련 없는 인사들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8년부터 상장 기업은 의무적으로 사외이사를 두게 돼 있다. 주로 다른 기업체 임직원 출신이나 교수·공무원 등을 사외이사로 임명하고 있으며, 제약회사에는 의사 출신이나 관·법조계, 회계 관련 인사들이 주로 선임되고 있다. 사외이사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하는 경영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 상태를 감독하고 조언하기에 용이하나 그 취지에 대한 실효성은 평가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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