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서 빛과 사물의 본질을 찾는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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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아타의 회고전 1부

15세기 조선의 문인 정극인이 인생의 황혼길에 지은 <상춘곡>은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 이 내 생활 어떠한고’로 시작된다. 이 ‘홍진’이란 말의 기원은 7세기 당나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당의 수도 시안은 중국 서북부의 깊숙한 황토 지대여서 마차가 일으키는 붉은 먼지가 가득했다. 그것이 바로 홍진이었고, 이는 번잡한 도시 생활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21세기를 사는 도시인에게는 홍진보다는 빛의 찌꺼기인 광진(光塵)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도시 전체가 환영 같은 미디어의 공세에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은 신기루 같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산다.

사진작가 김아타(57)는 기계와 미디어로 인해 7세기보다, 15세기보다 더 번잡해지고 더 부박한 현대를 빛의 찌꺼기로 표현한 ‘ON Air’ 시리즈로 뉴욕의 화랑과 베니스 비엔날레를 움직였다. 뉴욕 한복판에 8시간 동안 조리개를 연 카메라를 설치하고 장시간 촬영한 사진에는 움직이는 사람과 기계가 모두 먼지처럼 희뿌연 빛의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텅 빈 거리만 드러났을 뿐이다. 부처와 마오쩌둥과 파르테논 신전을 얼음으로 조각해 그 녹는 과정을 사진으로 채집한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는 생성과 소멸이 무엇인지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준다. 그가 2만년을 살 수 있다면 피라미드 앞에 소복이 쌓여 힘없이 휘날리는 사막 모래가 권세의 상징인 피라미드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기록할지도 모른다.

ⓒ 시사저널 임준선
2008년 로댕갤러리 전시를 끝으로 대외 활동을 멈췄던 김아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서울 신사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2월7일까지 <RE-ATTA:Part 1 On-Air> Project를 열고 있다. 전시는 내년까지 2부, 3부로 이어지는 대규모 회고전 성격인데, 1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온에어 프로젝트의 하나로 뉴욕·베이징·뭄바이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촬영한 ‘8시간 시리즈’와 아이스 모놀로그, <논어>나 <도덕경> <반야심경> 또는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중첩시켜 얻은 이미지인 ‘인달라 시리즈’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 기간 중 경기도 파주 작업실에서 만난 김아타는 “이번 전시는 내가 그동안 벗어놓은 껍질이고, 나는 지금 다른 데 가 있다”고 말했다. 작업실에는 그가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더 프로젝트: 드로잉 오브 네이처> 시리즈 작품이 걸려 있다. 대형 캔버스를 1년 넘게 남해의 바닷속이나 땅속, 강원도 인제 숲 속, 중국 허난 성 밭 한가운데, 도쿄와 뉴욕의 빌딩 위 등에 설치해놓고 바람과 눈과 비와 먼지와 벌레, 곰팡이가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기록하는 작업이다. 일종의 사진이자 청사진이며 지구라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만물의 무심한 기록인 셈이다.

그는 이에 대해 “내 작업의 핵심은 색에서 빛을 찾는 것이다. 색이 사물이라면 빛은 본질”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빛이 사물에서 반사되어 발현하는 가시광선을 통해 사물의 형태를 보고 촉각·후각 등 다른 경험을 보태 ‘사물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태양광이든 인공광이든 빛을 통해 재현되는 색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이게 서양 철학적 인식 행위다. 내 작업은 사물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가시광선이다. 그 이면의 세계, 볼 수 없는 세계, 책 뒤의, 물체 뒤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가시광선의 세계만, 보이는 세계만 전부라고 생각하고 소통하면 그게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으로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사람이 먹고살기 바빠서, 소통하기 위해서 빛에서 색을 찾았고, 그 이면의 세계를 찾는 일은 소홀히 했다. 그 부분이 소중하다는 게 내 메시지다. 그게 색에서 빛을 찾는 것,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사물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그는 서양의 ‘photography’는 ‘빛 그림’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했다. ‘진짜를 모사했다’는 사진(寫眞)이라는 일본식 번역어가 사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사진은 사실에 좀 가까운 매체에 불과하다. 진실은 더더욱 아니고. ‘드로잉 오브 네이처’에서 캔버스는 2년간의 빛 그림이다.”

색즉시공에서 공즉시색으로 나아간 세계

지난 10여 년간 그의 작업은 숨 가쁘게 진행돼왔다. 뉴욕의 사진 큐레이터가 주목한 것은 전라의 모델이 파격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뮤지엄 시리즈였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정적이며 동양적인 온에어 프로젝트로 뉴욕을 사로잡았다. 또 세상이 온에어 시리즈에 열광하는 동안 그는 ‘드로잉 오브 네이처’로 들어가버렸다.

도발적이고 현란한 색의 세계에서 그는 점점 단출하고 수식을 떼어버린 세계로 들어가는 듯이 보인다. “내가 인달라 시리즈를 발표하니까 나를 뉴욕에 소개한 친구들이 ‘하지 말라’고 하더라. ‘네 나이 70 되거든 그때 해라, 개념적으로 너무 어마어마하고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며 말렸다”는 그는 “내가 이미 거기에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걸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나를 유기하고 어떻게 사나”라고 되물었다.

물론 그도 시장 논리를 잘 알고 있고, 거기에 ‘집착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통이 돼야 유통이 된다. 유통의 전 단계가 소통이다. 유통은 결국 컬렉션이다. 어떤 작가도 빵을 해결하지 못하면 5년을 버티지 못한다. 이것은 작가에게 천형 같은 것이고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그는 “변했다”고 했다. “작업이 나를 살리고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렇게 한 작업의 가치를 시장 논리에 맡긴다는 게 마뜩지 않아서 일일이 관여하고 화랑의 가격 책정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움켜쥐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다 내려놓았다.” 그를 이런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 이는 손녀다. 그에게는 100일 된 손녀가 있다. “손녀를 만나면서 나의 신생아 시대를 상상하게 됐다. 엄청 젊어졌다. 꿈이 상상인데, 신생아 시대를 꿈꾸게 하기 때문에 나를 새로운 차원으로 밀어 넣고 있다.” 100일이 갓 지난 생명체가 그에게 ‘여태까지 해왔던 작업을 다 버려도 좋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에게 찾아온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영감이 그를 매개로 어떤 작품을 탄생시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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