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달걀만 먹어도 감염된다?
  • 안성모·이규대 기자 ()
  • 승인 2014.01.28 18: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확산되는 ‘AI 괴담’ 진실은…정부 늑장 대응이 화 키워

공포의 근원은 무지에 있다. 에일리언(외계인)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은 그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괴담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지의 틈을 교묘히 파고든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괴상망측한 얘기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이는 곧 공포로 이어진다.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AI(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AI를 둘러싼 괴담도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AI는 닭·오리 등 조류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병원성 정도에 따라 고병원성과 저병원성으로 나뉘는데, 고병원성 AI는 가축 폐사율이 높아 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모두 네 차례 발생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AI가 발생할 때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빠른 속도로 불안감이 퍼져나갔다. 식생활과 밀접한 가금류가 관련돼 있기 때문에 어떠한 소문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와 설명을 중심으로 ‘AI 괴담’ 및 논란의 실체를 살펴봤다.

AI로 방역당국이 비상인 가운데 1월23일 서울 중구 봉래동 한 대형마트의 오리고기 진열대 주변이 한산하다. ⓒ 시사저널 구윤성
①달걀만 먹어도 감염된다?

가장 전형적인 ‘AI 괴담’은 먹거리와 관련한 소문이다. 최근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H5N8형으로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국내에 발생한 H5N8형 AI는 전 세계적으로 인체에 감염됐다는 보고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조류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일 뿐 인체에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물론 인체에 감염되는 AI가 없는 것은 아니다. H5N1형 AI의 경우 이미 여러 차례 인간에게 감염돼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해 12월20일 발표된 WHO 자료에 따르면, 2003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인도네시아·이집트·베트남·중국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15개 국가에서 총 648명이 AI에 감염됐고 이들 중 38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현재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H5N8형 AI와는 종류가 다르다.

이 또한 가금류를 음식으로 섭취했기 때문에 감염된 것이 아니었다. WHO는 “H5N1형에 감염된 인간 대다수가 AI에 감염된 가금류에 직간접적으로 접촉을 한 경우였다. 적절하게 조리된 음식을 통해 인간에게 병이 전염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도 “고병원성 AI에 걸린 닭은 달걀을 낳지 못하고 닭이나 오리가 AI에 오염됐더라도 70도에서 30분, 75도에서 5분간 열처리를 하면 바이러스가 모두 죽기 때문에 끓여서 먹으면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②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전염된다?

최근 들어 새롭게 등장한 ‘AI 괴담’은 더욱 충격적이다. 공기로 전염이 된다는 얘기인데, 사실이라면 확산 속도가 엄청날 수 있다. 이 괴담은 지난해 2월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AI의 영향으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177명이 감염돼 47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가금류에서는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사람에게만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신종 AI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중국 신종 AI는 H7N9형이다. WHO는 이와 관련해 “사람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다가 최근 들어 검출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동물과 사람 및 사람과 사람 간 전염 경로에 대해 활발하게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H7N9형도 아직 사람 사이에 전염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지금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AI는 H5N8형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H7N9형과 무관하다.

1월20일 경기도 수원시 서호에서 운동 나온 시민이 기러기 등 겨울 철새를 바라보고 있다. 서호 주변에는 국가 중요 종계 703마리가 보존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있다. ⓒ 연합뉴스
③AI 감염의 주범은 철새다?

AI가 발생할 때마다 ‘주범’이 무엇인지가 항상 논란거리였다. 2003년 이후 다섯 차례 AI가 발생했지만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이번에는 철새가 AI를 옮긴 것으로 방역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전북 고창과 부안의 오리 농가에서 발생한 AI도 인근 저수지로 날아든 가창오리 떼가 ‘주범’으로 지목됐다. 가창오리의 분변이 농장으로 유입됐거나 사람이나 차량에 묻어 전염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철새들의 AI 감염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AI 감염 루트로 철새를 지목하는 의견이 더욱 힘을 얻는 분위기다. 충남 합교호, 부산 을숙도, 경북 영덕 등에서 철새가 폐사하거나 배설물에서 AI 양성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철새가 ‘주범’일 경우 몇 가지 우려가 제기된다. 우선 관리·감독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AI 확산을 막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철새의 이동 경로를 일일이 쫓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철새는 또 가금류보다 내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더 강력한 변종 AI가 탄생할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감염 원인을 철새로 단정 짓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선 가창오리의 월동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초부터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AI 잠복기인 21일을 훨씬 넘겨 70여 일째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 AI에 감염됐다면 가창오리는 대부분 이미 폐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두표 호남대 생물학과 교수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저병원성 바이러스는 모든 조류에 상존하고 있고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고병원성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있다. 협소하고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이 감염의 원인일 수 있다”며 철새가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한 발병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공간에 많은 오리를 키우는 환경과 축산 농가에서 나온 오리의 분변이 저수지로 흘러들면서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방역 대책만으로는 AI 확산을 막기가 힘들어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력하고 있는 주요 철새 도래지의 예찰·소독과 일반인의 출입 통제 등은 실효성이 작다는 게 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이다. 철새가 아니라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변이한 게 원인이라면 기존의 발병 지역만 단속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④정부 알고도 손 놓고 있었다?

AI 감염이 확산될수록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진다. 정부가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20일 철새들의 분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반기 AI 바이러스 검출률이 상반기보다 크게 올라갔다는 것이다. 한 해 전 같은 시기와 비교해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2012년부터 전국 주요 철새 도래지 12개 지역으로 대상을 확대해 전국 규모의 AI 모니터링과 야생 조류 분변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2013년 하반기 야생 조류 AI 바이러스 검출률은 13.4%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시료 2900건 중 389건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그해 상반기 검출률 1.2%와 비교하면 급상승한 것이다. 2012년 하반기 검출률은 8.2%였다.

물론 검출된 AI 바이러스는 분석 결과 모두 저병원성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유전자 변이로 고병원성이 될 위험성이 큰 H5형 바이러스도 지난해 10월 충남 아산 지역에서 15건이나 검출됐다. 당시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하반기 야생 조류 AI 검출률이 크게 증가하고 H5형 바이러스도 일부 검출되는 등 이번 겨울철 AI 발생 위험성이 커 관계 기관과 사육 농가의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AI와 관련해 특별한 대비책을 내놓지 않았다. 현재 AI 발병 원인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데, 미리 대응에 나섰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결국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