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영화의 비밀...국민감정 확 휘저어야 '잭팟' 터진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1.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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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영화’의 비밀…송강호 개인 통산 8000만 돌파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역대 ‘1000만 영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 9편, 그리고 외국 영화 1편 등 총 10편의 1000만 영화가 탄생했다.

1위는 유일한 외국 영화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2009년)로 1362만 관객을 동원했다. 2위는 봉준호 감독·송강호 주연의 <괴물>(2006년)로 1301만 관객이었다. 3위는 최동훈 감독·김윤석 주연 <도둑들>(2012년) 1298만명, 4위는 이환경 감독·류승룡 주연 <7번방의 선물>(2013년) 1281만명, 5위는 추창민 감독·이병헌 주연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1231만명, 6위는 이준익 감독·감우성 주연 <왕의 남자)(2005년) 1230만명, 7위는 강제규 감독·장동건 주연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1174만명, 8위는 윤제균 감독·설경구 주연 <해운대>(2009년) 1145만명, 9위는 강우석 감독·설경구 주연 <실미도>(2003년) 1108만명, 그다음이 이제 막 1000만 영화에 등극한 양우석 감독·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다.

그동안 설경구가 1000만 영화 두 편으로 독보적이었으나, <변호인>으로 송강호도 1000만 영화 두 편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송강호는 개인 통산 8000만 관객 돌파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이미 세웠고, 특히 <변호인>이 1200만 관객까지 갈 경우 최근작 세 편을 합쳐 3000만명이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까지 갖게 된다.

2013년 작인 <설국열차>와 <관상>이 나란히 900만 관객을 돌파했기 때문에 나오는 수치다. 한 배우가 한 해 동안 세 편의 대흥행 작품에서 연이어 주연을 맡은 것인데, 이건 도시 국가 규모 이상의 선진 산업국가에선 극히 이례적인 사태다. 아마도 다시는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인구 5000만 수준의 나라에서 1000만 영화는 기적이다. 이런 사태는 단지 영화가 잘 만들어졌고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영화가 국민 정서, 민족적인 감정을 정확히 건드려 범국가적인 바람이 일어나야만 1000만 신화가 태어난다. 특히 <변호인>은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TV가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룰 때가 있었고,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없을 정도로 배급 지원을 덜 받았는데도 1000만 ‘잭팟’이 터졌다.

1000만 영화의 사회심리학

영화가 국민감정을 제대로 건드린 결과 관객들이 알아서 극장으로 갔다는 이야기다. <변호인>의 경우엔 역사적 상처, 민주적 상식, 권력에 대한 반감, 따뜻한 정, 보호자 영웅 등의 코드에 국민이 반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건 다른 1000만 영화들과도 상통한다.

먼저 역사적 상처는 1000만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공식이다. 최초의 1000만 영화인 <실미도>가 바로 역사적 상처 코드에서 터졌다. 한국의 역사가 워낙 파란만장하고, 그 속에 쌓인 민족적 한이 많으며, 그 한을 대중문화적으로 풀 만한 표현의 자유도 과거엔 미약했기 때문에 요즘 영화에서 씻김굿이 이루어진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비슷한 맥락에서 성공했다.

민주적 상식은 <변호인>에서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표현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현실에서 자신이 나라의 주인, 권력의 주인이라고 느끼며 사는 서민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나마 상식이 표현될 때 관객은 통쾌함을 느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도 서민을 보살피는 리더십이라는 상식을 표현했다.

권력에 대한 반감은 거의 대다수의 흥행작에서 공유된다. 사람들이,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며 부정부패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변호인>은 법정신을 통해 부당하게 작동하는 권력을 고발했다. <괴물>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권력에 맞서 시민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7번방의 선물>엔 약자를 범인으로 모는 경찰 권력자가 등장했다. <왕의 남자>는 권력에게 희롱당하는 광대의 이야기고,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도 군대라는 거대 권력에 휘둘리는 민초들의 이야기다.

따뜻한 정은 <변호인>에서 복고적 정서, 아버지·어머니의 정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장면 변호사들의 연대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감동도 일종의 따뜻함이었는데, 한국인은 요즘 이런 따뜻함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 한다. <7번방의 선물>이 대표적인 경우다.

보호자 영웅은 <변호인>에서 검사·경찰·판사 등을 당황시키고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송강호의 변론을 통해 표현됐다. 불안·분노·무력감에 빠진 국민은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보호자를 찾는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놓고 보호자 왕을 내세우는 영화였고, <아바타> <괴물> <7번방의 선물> 등의 영화에도 누군가가 보호자로 등장했다. 이렇게 보면 대다수 1000만 영화에서 나타나는 국민적 코드가 <변호인>에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호인>은 준비된 1000만 영화였던 셈이다.

B급 시대와 국가의 영광

1000만 영화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다른 경로로도 터진다. <도둑들>이 그랬다. 이 작품은 범죄영화로 이렇다 할 사회적 의미가 없는 작품이었는데도 터졌다. 비슷한 시기에 ‘싸이 사태’도 터졌다. 이것은 이제 한국 사회가 무거운 의미성에서 벗어나 가벼운 오락성을 즐기는 유희의 시대, 즉 B급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도둑들>의 1000만 사태에 단지 오락성만 작동한 것은 아니다. 거기엔 ‘국가의 영광’ 코드가 있다. 산업화 후발 주자로서 한국인에겐 뿌리 깊은 선진국 콤플렉스가 있다. 한국의 새로운 능력이 과시되며 그 콤플렉스를 벗어던질 계기가 마련될 때, 한국에선 범국민적 축제가 벌어진다. <도둑들>은 할리우드에서나 할 줄 알았던 본격 도둑영화(케이퍼 무비)를 한국에서 구현했고, 외국 영화에 버금가는 총격 액션도 선보였다. 그것이 한국인을 놀라게 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의 대규모 전투 신이나 <해운대>와 <괴물>의 컴퓨터그래픽도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인을 감격시켰다.

외국 영화는 이런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리기 어렵기 때문에 <트랜스포머> 등 제아무리 화려한 오락영화라도 1000만 관객은 힘들다. 외국 영화로서 유일한 <아바타>의 경우 3D 기술이 본격적으로 선보인 작품으로 새 시대의 상징이 됐기 때문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새 시대를 확인하러 극장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도 원주민 공동체의 우애를 통해 한국인이 원하는 따뜻함 코드가 등장했다.

앞으로도 한국인의 국민적 욕망, 민족적 상처 등을 건드리는 영화가 등장하면 언제든지 ‘1000만 영화’라는 기적이 터질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이 국민적으로 맺힌 것이 많은 나라라는 뜻이다. 하지만 다양성과 개성이 생명인 문화계에서 이렇게 범국민적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게 절대로 정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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