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의 가장 큰 변수는 ‘朴心’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3: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J, 여당 서울시장 후보 관문 통과할까…친박 지원 업은 김황식 전 총리가 관건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링 주위를 맴돌다 홀연히 떠났던 선수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링 위에 오를 선수가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경기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듯 긴박한 분위기다. 썰렁한 링 주위를 서성이던 관중도 다시 링 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들은 선수들이 링 위로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다. 혈투를 기대하는 열기가 점차 고조된다.

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항마를 찾지 못해 노심초사하던 새누리당에 활기가 돈다.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통해 ‘컨벤션 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에 파란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과연 새누리당은 거물 정치인들이 맞붙는 ‘빅매치’ 경선으로 수세에 몰린 서울시장 선거 판세를 뒤집을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까.

2013년 12월16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왼쪽)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김황식 전 국무총리(오른쪽)를 앞줄로 이끌고 있다. ⓒ 연합뉴스
“MJ는 당의 존재감 보일 수 있는 카드”

그동안 새누리당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던 7선의 정몽준 의원(동작을)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행보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링 위에 오르는 권투선수가 경기를 두려워하며 뒷걸음치는 듯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끊임없이 ‘중진 차출론’과 ‘외부 인사 영입론’으로 군불을 땠는데도 두 사람은 ‘답답한’ 행보를 보였다. 정 의원은 지난 1월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 것보다 당내에서 거론되는 다른 후보들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그는 1월20일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열망이 이 자리에 반영된 듯하다”며 자신은 출마를 완전히 접은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김 전 총리도 지난해 말 돌연 미국행을 선택하며 서울시장 불출마에 무게를 두는 듯했다. 김 전 총리 측은 그동안 당 지도부에 ‘추대론’을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 일각의 ‘중진 차출론’을 비판하던 이 최고위원 측은 두 사람의 행보에 대해 “본인들의 정치 위상과는 달리 안철수 의원처럼 간만 보는 정치를 한다”고 비꼬았다.

그런데 ‘간만 보던’ 두 사람이 돌연 달라졌다. 설 연휴를 기점으로 불출마에서 출마로 방향타를 돌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출마 가능성 모색 수준이 아니라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정 의원은 2월5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요청으로 30분간 단독 면담을 했다. 그날 정 의원은 31년 동안 맡아온 울산대 이사장직을 그만뒀다. 김 전 총리도 2월6일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해 황 대표와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월 중순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후 “당에서 공식 출마 제안을 해오면 답을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조만간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마지막 결단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 쪽 관계자는 2월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고민의 단계는 이미 지났고 공식 발표를 할 시점을 선택하는 문제만 남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 의원 출마의 걸림돌이 된 현대중공업 주식의 백지 신탁과 관련해 정 의원은 2월7일 “백지 신탁 심사를 받겠다”며 출마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정 의원과 김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에 비중을 두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경선과 본선 승리에 대한 확실한 패를 쥐고 있다는 자체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3자 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측면이다. 안철수 의원 진영의 가칭 ‘새정치신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면 박원순 시장과의 본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일차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출마 쪽으로 돌아선 데는 1차 관문인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비박(非朴)’으로 분류되는 당내 비주류다.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만 당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만약 당내 경선에 나서 김 전 총리에게 패할 경우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위기감이 당내에 확산되면서 친박 쪽에서도 정 의원의 출마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는 점이 감지되고 있다. 새누리당 내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친박계 인사는 “차기 대권을 이야기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며 “지방선거 후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걱정한다면 확실한 카드로 서울시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데 친박계도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당이 BH(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지적도 있는데 MJ(정몽준)는 당의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향후 정치력 확장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도 있다. 정 의원의 측근 인사들은 그동안 “(정 의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그 구심력으로 인해 정 의원 중심의 정치 세력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출마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으로선 서울시장 당선은 행정 경험 부족과 독자 정치 세력화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인 셈이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1월20일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탄탄한 당내 기반 갖춘 이혜훈도 무시 못 해

역시 당내 기반이 약한 김 전 총리는 ‘박심(朴心)’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디딤돌 삼아 서울시장 출마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잠재적 대권 주자인 정 의원이 서울시장으로 부각되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친박계가 주류인 당 지도부에서 김 전 총리의 출마를 위해 공을 들여온 것도 단순히 빅매치 경선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심기 경호’를 고려한 ‘MJ 견제’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의원과 김 전 총리가 동시에 경선에 참여하는 빅매치가 현실화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김 전 총리의 선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부의 ‘선거 개입 엄벌’을 공언한 상황에서 김 전 총리가 출마한다고 해도 청와대를 통해 친박의 조직적인 지원 사격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정 의원이 경선 참여를 고수할 경우김 전 총리가 출마를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2월11일 백범기념관에서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인 이혜훈 최고위원의 저력도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의 변수 중 하나다. ‘원조 친박’인 이 최고위원은 상대적으로 탄탄한 당내 기반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서울시장 등 공직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은 대의원, 책임당원, 일반 국민 투표인단 선거와 여론조사를 2:3:3:2 비율로 나눠 치러진다. 투표인단의 경우 여성이 50%를 차지한다. 이 최고위원의 선전에 따라 3파전 경선 구도가 출렁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