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7일 이석기의 운명은?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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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란 음모 혐의로 징역 20년 구형…‘RO 실체 규명’ 법정 공방 치열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2013년 8월 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정국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을 내란 선동 및 음모 혐의로 압수수색하면서다. 공안의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특히 지난해 5월 열렸다는 일명 ‘이석기 모임’ 녹취록 보도가 결정적이었다.

제보자 진술·녹취록이 검찰의 ‘핵심 증거’

여기에는 국정원이 포착한 내란 음모 혐의를 뒷받침하는 성격의 발언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그 배후로 이 의원이 총책을 맡고 있다는 지하 혁명 조직 ‘RO’가 지목됐다. 이때 여론의 재판은 사실상 끝난다. 대선 개입 의혹으로 벼랑에 몰렸던 국정원은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킨다.

2월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석기 의원(앞줄 오른쪽)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돌아보면, 피의자 구속 기소 등 본격적인 사건 수사가 시작되기 전 공안·사정 당국발 내사 보도가 쏟아졌다. 사건을 담당한 수원지검 관계자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수사 중에 진위를 떠나 각종 보도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다.”(차경환 2차장검사, 9월10일 기자간담회). ‘내란 음모’라는 엄중한 죄목, 그 파급력을 증폭시키며 잇따르는 관련 보도들. 그 속에서 사건 피의자들의 혐의는 기정사실화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재판은 여론이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이 한다. 피의자 혐의 사실에 대한 증거를 놓고, 당사자 간 법정 공방을 통해 도출된 실체적 진실을 바탕으로 유무죄가 결정돼야 한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유무죄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재판이 지난 석 달간 진행됐다. 지난해 11월12일 이후 총 44차례 공판이 열렸다. 검찰과 피고 측 변호인단은 각자의 ‘실체적 진실’을 주장하며 법리 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지난 2월3일, 마지막 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RO의 총책으로 지목된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하는 등 피의자들에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들의 내란 음모 혐의가 국정원의 날조에 불과하다고 최후 변론했다.

이날 결심 공판을 끝으로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의 치열한 법정 공방은 일단락됐다. 이제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시사저널은 2월17일로 예정된 선고를 앞두고, 이번 사건의 기소 단계부터 45차례 공판, 검찰 구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했다. 국정원이 내놓은 회심의 카드이자 진보 진영의 민감한 뇌관을 건드린 중대한 사건인 만큼, 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소장 등을 참고하면, 검찰이 이석기 의원 등 피의자를 구속 기소하게 된 핵심 증거는 두 가지다. 스스로 ‘RO 조직원’이라 주장하는 제보자 이 아무개씨의 진술, 2013년 5월 비밀 모임 등에 대한 녹취록이다. 사정 당국은 2010년 지하 혁명 조직의 존재를 국정원에 제보해온 이씨의 진술을 RO의 실체를 입증하는 증거로 내세운다. 그리고 국정원의 요청으로 이씨가 녹취한 비밀 모임의 내용을 내란 음모의 증거로 제시한다.

그래서 재판의 핵심 쟁점은 둘로 요약된다. 지하 혁명 조직 RO는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5월 비밀 모임에서 내란 음모죄에 해당하는 행동이 있었는지 여부다. 내란 음모 혐의의 ‘주어’를 구성하는 것이 RO의 존재,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비밀 모임에서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의 혐의가 유죄가 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두 핵심 증거인 국정원 제보자 진술, 비밀 모임 녹취록이 피고인들의 혐의와 관련된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다.

제보자 이씨, 상당수 진술 “추정에 근거했다”

지난해 11월21일 열린 6차 공판. 가장 중요한 증인이 법정에 출석한다. 이석기 의원 등이 연루된 지하 혁명 조직의 존재를 국정원에 제보한 이 아무개씨다. 이씨는 이날 진행된 검찰 측 신문에서 자신이 “RO에 가입해 활동했다”고 증언했다. 2004년 말 수련회 자리에서 정식 가입해 조직명을 부여받았으며, RO라는 이름도 그때 들었다는 것이다.

가입 이후에는 현재 구속된 2명의 조직원과 함께 세포 모임을 가지며 국내 주요 현안에 대응해 활동했다고 했다. ‘북한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조직명이 북한에서 왔다고 추정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총책이 이석기 의원이며 4개 지역 조직과 개별 조직으로 구성됐나”라는 검찰의 물음에 “문서로 증거를 본 것은 아니나 10년 넘게 조직원으로 있으면서 이렇게 됐겠구나 생각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22일 열린 7차, 25일 열린 8차 공판에서는 피고 측 변호인단이 반대신문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씨는 자신이 RO 조직원이라 지목한 대학 선배 채 아무개씨에 대해 “틀린 생각이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RO의 조직 운영 원리에 대해서는 다른 공안 사건 판결문 등에서 파악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RO에 대해 상당 부분 추정에 근거해 국정원에 진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진술 번복, 추정에 근거한 내용 등이 드러나면서 이씨의 진술은 신빙성을 의심받는다. 특히 변호인단은 2010년 작성된 이씨의 국정원 참고인 진술서에 주목했다. 이 조서는 검찰의 수사 목록에 누락돼 있었으나, 변호인단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뒤늦게 존재가 확인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됐다. 그런데 2010년과 2013년에 각각 작성된 진술서를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이씨가 2010년에 조직의 이름이 ‘내일회’라고 진술한 점, 조직에 강령은 없다고 진술한 점이 2013년과 다르다는 것이다. 2010년에는 다른 인물을 총책이라고 언급했음에도 2013년에는 이석기 의원을 지목한 점, 양 진술서에서 조직 체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진술한 점도 지적했다.

제보자 이 아무개씨의 진술은 지하 혁명 조직 RO와 관련된 증거다. 만약 재판부가 이씨의 진술에 실체적 진실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면, RO의 실체 역시 입증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RO의 존재 및 운영 방식에 대해 증언한 증인은 이씨가 유일하다. 관련 내용이 담긴 직접 증거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이 5월10일 곤지암 모임 당시 한 발언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은 “김근래 지휘원, 자네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말했는데,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지휘원’은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을 암시하는 동시에 상하 명령 체계가 뚜렷한 조직이라는 증거가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에서는 ‘지휘원’이 ‘지금 오나’를 잘못 적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판부가 양측 주장 중 무엇을 진실로 판단하는지도 RO의 실체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다.

녹취록에 기록된 모임이 RO와 관련되는지도 쟁점 중 하나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2013년 5월 두 차례 비밀 모임이 “조직 총책인 이 피고인(이석기 의원)의 지시에 따라 조직원들이 한 장소에 집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내란 음모를 바탕으로 혁명을 결의하기 위한 RO의 비밀 모임이라는 것이다. 반면 피고 측은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이 이 의원을 초빙해 진행한 정세 강연에 불과했다고 맞선다. 자녀를 데리고 온 참석자가 있었고, 강연 도중 폭소가 터졌다는 점 등을 볼 때 비밀 조직이 내란을 모의하는 성격의 자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증인이 있다. 12월2일 열린 12차 공판에 출석한 전직 남파 공작원 김 아무개씨다. 김씨는 검찰이 요청한 증인으로, 1997년 남파돼 지하조직 결성 등 공작을 벌이다 붙잡혔던 인물이다. 김씨는 “결정적 시기로 정세를 판단했다면 모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13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 (지하 비밀 조직의 성격상)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교육받은 내용과 맞지 않아 의아하다는 것이다.

녹취록 뛰어넘는 ‘다음 카드’는 없어

지난해 5월10일 경기 광주 곤지암 모임, 5월12일 서울 합정동 모임, 2012년 이후 국정원 제보자 이씨와 피고인 2명이 수차례 가진 ‘3인 모임’. 국정원이 제보자 이씨를 통해 확보한 녹취록들이다. 이들 녹취록은 검찰이 내란 음모 혐의를 기소 및 구형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검찰은 ‘3인 모임’이 RO의 세포 모임이라고 지적했다. RO의 ‘5대 의무’에 입각해 총화(사업 평가) 문서 작성을 지시하고, 전쟁 대비 3대 지침을 하달하는 등 RO의 활동 양상을 유추할 수 있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3인 모임’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동문 선후배들이 서로의 활동 및 생활을 공유하던 모임이라고 반박한다.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5대 의무’에 입각해 총화를 했던 것도 아니고, ‘전쟁 대비 3대 지침’ 또한 수사 당국에 의해 왜곡됐다는 것이다.

특히 5월12일 합정동 모임 녹취록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핵심이다. 모임에 참석한 피의자 상당수가 ‘물리적 행동’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의 녹취록과 변호인단 녹취록에서 서로 입장이 어긋나는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날 강연자였던 이석기 의원이나 피고인들의 토론에서는 ‘물리적 행동’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사건 초기 ‘여론 재판’의 근거가 됐던 내용들이다.

이석기 의원은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과 관련해 ‘물질 군사적 준비’ ‘정치 군사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그 준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토론의 과제로 돌렸다. 토론에 나선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통신·유류 등 국가 기간시설에 대한 타격 발언’을 했다. 검찰이 이날 모임의 성격을 내란 모의라고 규정하는 핵심적인 증거들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1월 말 집중된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입장을 밝혔다. 이상호 고문은 1월24일 42차 공판에서 “(전쟁이 나면 국가에 의해) 예비 검속되거나 테러 학살 등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분노와 공포심이 있다 보니 흥분해 각종 기간 시설에 대해 언급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석기 의원은 1월27일 43차 공판에서 “전쟁이 나면 공멸인데, 일단 닥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전시가 아니라 미리 전쟁을 막기 위한 구체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상의 해명이 내란 음모 혐의를 벗기에 충분한 것일까. 검찰은 “혁명에 대한 결의 수준의 의사 합치, 실질적 군사행동을 논의할 수 있는 사상적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명백한 등 국헌 문란을 결의하는 수준의 의사 합치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판단은 역시 재판부의 몫으로 남았다.

다만 내란 모의죄 적용은 상당히 까다로운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사건 수사 및 공판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9월, 법조계에서는 국정원 등 공안 당국이 내놓는 ‘다음 카드’가 혐의 입증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단순히 녹취록상의 모임 참가자 발언 자체만으로는 내란 음모 혐의를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의 박주민 변호사는 당시 “현재 공개되고 있는 녹취록 발언만으로는 내란 음모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를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법정 공방 과정에서 검찰 및 국정원의 ‘다음 카드’가 공개된 적은 없었다. 결심 공판에서 검찰의 구형 논리도 제보자 이씨의 증언, 녹취록의 내용이 바탕이 됐다. 내란 모의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추가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실체적 진실’ 판단은 재판부 손에

사건 초기 대대적으로 피의 사실을 공표하고 나선 국정원은,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색출하기 위한 추가 내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말에는 주요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비교적 최근인 1월 말에는 통합진보당 간부들을 미행하다 경찰에 붙잡히자 “이석기 관련 수사 활동”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RO의 존재 및 내란 음모 정황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법정에서 제시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5월 모임에 참석한 김 아무개씨에게서 압수한 ‘유알오’ 문건(2003년 작성), 민혁당 사건으로 복역하던 이석기 의원이 2003년 출소 직후 작성한 메모 등에서 지하 혁명 조직을 구상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간접증거이며, RO의 실체와 실제적인 내란 의도를 입증하는 직접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약 3개월간 진행된 공판 과정에서 기존에 제기된 증거를 뛰어넘는 ‘결정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내란 음모라는 엄중한 혐의를 입증할 만한 엄밀한 법적 증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못했다. 당초 혐의 입증을 자신했던 사정 당국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결과다.

내란 음모죄로 사건이 기소된 것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이후 33년 만의 일이다. 내란 관련 혐의 적용도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사건(내란죄)’ 이후 15년 동안 없었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발생한 공안 사건은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았다. 국정원의 초강수였던 ‘내란 음모 혐의’ 카드는 과연 어떤 결론을 맞게 될까.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2월17일의 재판부 판단이 주목된다.

 

8월28일 국가정보원, 이석기 의원 등 10명 압수수색. 홍순석·이상호·한동근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8월30일 이석기 의원 제외한 홍순석 부위원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9월4일 국회,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  국가정보원 강제 구인.

9월5일 이석기 의원 구속영장 발부.

9월13일 이석기 의원 검찰 송치.

9월25일 홍순석 부위원장 등 3명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혐의로 기소.

9월26일 내란 음모 등 혐의로 이석기 의원 기소.

10월1일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김홍열 위원장, 김근래 부위원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등 3명 구속.

10월24일 검찰, 김홍열 위원장 등 3명 구속 기소.

11월12일 공판 개시.

<2014년>

2월3일 검찰, 이석기 의원에 징역 20년·자격정지 10년, 홍 부위원장 등 6명에게 징역 10?15년·자격정지 10년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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