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세상에 나온 시집 <노동의 새벽>은 100만부 가까이 팔렸다. 그 시집을 펴내면서 지명수배된 박노해 시인은 1991년 수감돼 1998년 석방됐다. 2014년은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이 되는 해다. 시인은 <다른 길>이라는 사진전을 열며 3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반은 권력에 의해 쫓기는 생활을, 석방 이후인 반은 지도에 없는 세상의 오지 속으로 유랑의 길을 걸어가 스스로를 유배시켰다. 15년 동안은 시를 썼고, 이후 15년 동안은 시에 사진을 덧대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에 대해 “한 시대의 끝 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나는 체제의 경계 밖으로 나를 추방시키며, 거슬러 오르며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고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체제의 경계 밖’을 지리 정보로 표현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인도·티베트·중동·남아시아·남미 등의 오지다.
2010년 10월 첫 전시 이후 4년만에 7만장의 사진 중에서 골라낸 사진으로 전시회 <다른 길>(2월5일부터 3월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을 여는 박노해 시인을 만났다. 그는 새해 인사에 대한 단상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 사람의 대박이란 다른 많은 이의 쪽박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박나세요’란 말을 못 하겠다. 대박은 나쁜 꿈이다. 내가 시인이라 말에 민감하다. 한 사회의 공동체가 무너지기 전에 말이 먼저 무너진다. ‘나쁜’의 어원은 ‘나뿐인 사람’이다. 우리 선조들은 선악을 구분하는 잣대가 딱 하나였다. 나뿐인 사람인가, 나누는 사람인가. 나는 대박도, 쪽박도 싫다. 소박한 삶을 원한다.”
아시아 오지에서 건진 희망의 씨앗
그는 30주년을 맞이한 <노동의 새벽>과 ‘오늘’에 대해서도 말했다. “15년 전 처음 찾았을 때는 게릴라 운동 하던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 된 나라도 있다. 그런 이에게 자문도 해주는데, 2~3년 뒤에 다시 가면 벌써 타락해 있다. 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이 바뀌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권력이 사람을 바꾼다. 하지만 혁명은 끝이 없다. 혁명은 다시 젊은 세대의 영혼으로 되살아난다. ‘6월 항쟁’도 3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우리의 오늘은 어떤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 양극화, 일자리, 복지, 민주주의 위기 등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이것을 아무리 말해도 돌파구가 없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난 시절 사회 구조가 바뀌면 인간과 삶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삶 자체가 사라졌다. 생존만 남았다. 그 어떤 시대보다 똑똑하고 지식과 정보가 넘침에도 돈으로 사는 능력만 남았을 뿐 인간은 무력해졌다. 지금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던,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대로 진입했다. 결혼과 사랑, 교육에도 시장 원리가 도입됐다. 그러면서 세상 모든 것이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우리가 이렇게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이런 무한 경쟁, 고비용, 생활양식과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문명의 끝이 보이고 있다.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편리한 첨단 시대지만 가장 쇠약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의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첨단과 편리 뒤에 숨어 있는 불안과 공포를 언급했다. “늘어난 수명이 되레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최대 비극은 삶의 수단 확보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생애에 걸쳐 지금 바로 살아야 하는 진짜 삶을 잃어버리고 수단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전 세계 대륙을 다 돌아다녀 봤지만 지금 한국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비극은 삶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 살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자율적으로 노동하면서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이 좋은 삶이다.”
그는 2014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에게 아시아 오지에서 자연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이번 사진전 테마도 아시아다. 그는 “위기에 처한 문명을 구원할 이로 아시아가 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는 순환·순수·운명 세 가지 테마로 정리할 수 있다. 아시아는 시원의 순수가 자리 잡은 씨앗과 같은 곳이다. 희망의 종자가 가장 풍부히 남겨진 땅이 바로 아시아다. 잊히고 무시되고 있지만 (아시아 오지에 사는)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이 세상 깊숙이 존재한다. 이들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박노해 시인은 이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얻은 듯했다. “나는 실패투성이고 앞으로도 패배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생에서 나로 살지 못하는 것, 그에 대한 두려움에 비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길이 있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이 찾아온다. (내 사진을 보면서) 익숙한 문명의 확실성이 낯설어지고 내 안의 근원적 소명이 깨어나면서 내 앞에 작은 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 또한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