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숲은 없다
  • 김선우 | 시인 겸 소설가 ()
  • 승인 2014.02.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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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필리핀을 초토화시킨 태풍 하이옌을 기억한다. 과학자들은 하이옌이 지구온난화에 의한 이상 징후 태풍이라고 진단한다. 앞으로는 그런 강력한 태풍, 극심한 가뭄, 대홍수, 이상 한파, 이상 고온 등의 재해에 계속 직면하게 될 것임을 대다수 기후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다. 온실가스로 인해 남극의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고, 지구 해수면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투발루처럼 국토가 물에 잠기는 환경 난민 국가가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는 아무런 대책 없이 손 놓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다음 세대의 미래는 약속할 수 없다.

‘숲이 타고 있었다. 숲에 사는 동물들은 앞다투어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데 자그마한 벌새 크리킨디는 혼자서 물을 한 모금씩 물어다 불을 끄느라 왔다 갔다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열심히 물을 물고 오가는 벌새를 보고 도망가는 동물들이 한마디씩 했다. 저런다고 별수 있겠어? 이미 이 숲은 가망이 없어. 하지만 크리킨디는 작은 날개를 부지런히 파닥이며 마음으로 외쳐 말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불타는 숲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작은 새를 비웃으며 도망갈 것인가. 작은 새가 될 것인가.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도망갈 수 있는 다른 숲이 없다. 불타고 있는 숲인 지구, 여기를 지켜내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남미 안데스 지역에 전해오는 벌새 크리킨디 이야기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되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빅애스크(Big Ask) 운동을 소개한다. ‘큰 요구’라는 뜻을 가진 ‘기후변화법 제정 운동’인 빅애스크는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 많은 나라로 확산되고 있는 전 지구적인 운동이다.

국민이 직접 발의해 법을 제정하는 이 운동이 한국에서도 지난해에 시작되었다. 국민 10만명의 온·오프라인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기후변화법 초안을 바탕으로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장기 목표를 담은 기후변화법을 제정하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의 성과를 모아 얼마 전 드디어 국회에 제안할 기후변화법 초안이 공개되었다. 총 6장 48조 및 부칙으로 구성된 법률의 명칭

은 ‘기후변화대응기본법’이다. 오는 2월20일 레이첼카슨 홀에서 시민공청회를 열고 다양한 분야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 한다.

빅애스크는 특정 단체나 개인이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다.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빅애스크 홈페이지를 통해 법안 발의 서명과 법안이 담아야 할 주요 내용을 선택·제안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운동이다. 내가 직접 서명해 발의하는 법안, 멋지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루쉰이 그랬던가. 우리 삶을 구원하는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라고.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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