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오리의 ‘2차 재앙’이 두렵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4.02.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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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살처분’ 침출수 유출 따른 오염 심각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전북·전남·충남에 이어 강원도까지 뚫렸다. 지금까지 살처분한 닭과 오리는 300만 마리를 훨씬 넘었고, 현재 추세로 보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정부는 AI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반경 3km를 위험 지역으로 보고 예방적 차원에서 무조건 살처분한다. 가금류뿐만 아니라 달걀, 사료, 달걀 용기까지 함께 땅에 묻는다. 문제는 살처분 규모가 커지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살처분하다 보니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침출수가 유출하는 등 2차 오염이 현실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주먹구구식 일 처리도 한몫한다.

AI가 발병한 한 오리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을 하기 위해 오리들을 몰고 있다. ⓒ 연합뉴스
권장 용량보다 많게 채우면서 발생

충북 진천에서는 살처분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됐다. 지난 2월1일 오리 9000여 마리를 살처분 매몰했는데 오리를 넣은 PVC(열가소성 플라스틱) 저장조에서 핏물이 섞인 침출수가 기포를 내며 땅속에서 흘러나왔다. 너비 1?2m 규모의 웅덩이에 고일 정도였다. 저장조에 권장 용량보다 많은 양을 채우면서 생긴 현상이다.

통상 살처분 과정은 PVC통에 70%만 채운 상태로 매몰한다. PVC통 1개에는 보통 오리 2000~3000마리를 넣을 수 있다. 살처분된 오리들이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기포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력·장비 등의 한계 때문에 PVC통을 가득 채우다 보니 침출수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침출수가 유출된 곳은 미호천에서 불과 100여m 거리에 있어 침출수가 하천으로 스며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지하수까지 스며들게 된다면 양에 관계없이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1월21일에는 전북 고창의 한 농장에서도 PVC통에서 침출수가 흘러내렸다. 이 농장에서는 같은 달 17일 살처분한 오리 2만1000여 마리를 PVC통 7~8개에 나눠 넣고 매몰했다. 여기서도 권장량을 초과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살처분이 지하수와 토양오염, 악취 문제로 또 다른 환경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까지의 살처분은 원시적인 방식을 고수했다. AI 발생 인근 지역에 커다란 구덩이를 판 뒤 그 안에 특수 비닐을 깔고 침출수 배수관, 저류조, 가스 배출관 등을 설치했다. 비닐 위에 가금류를 올려놓은 후 생석회를 뿌리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사체에서 가스가 나오면 사체를 감싼 비닐이 터지거나 가스 배출관으로 핏물이 섞인 침출수가 유출되거나 역류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실제 지난 2008년 전국적으로 AI가 발생했을 때 2차 오염은 상상을 초월했다. 방역 당국의 허술한 관리와 살처분 지역에서 침출수가 역류하면서 인근 밭·논·하천으로 흘러갔다. 주민들은 지독한 악취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다. 농장 바로 옆에는 폐사한 닭 수백여 마리가 그대로 버려져 있기도 했다.

매몰지 바로 옆에 파와 딸기를 심어놓은 것도 볼 수 있었다. 살처분 매몰지에서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실제 취재진이 현장에 갔을 때는 파리 떼가 득실거려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매몰한 후에 발생하는 2차 오염에는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의 경우 잘 썩지 않는 특성 때문에 환경오염으로 직결된다.

2월4일 충북 진천군의 한 오리농장 살처분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처리반이 복구 작업에 나섰다. ⓒ 연합뉴스
매몰 방식 변경했으나 곳곳에 구멍

침출수는 지하수와 토양오염의 주범이다. 대다수 매몰지는 마을에 인접해 있고 논과 밭을 끼고 있다. 매몰지에서 나오는 침출수는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논과 밭으로 유입된다. 그곳에 심어진 채소와 곡물이 고스란히 침출수를 빨아들이게 돼 결국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땅속으로 스며든 침출수는 해충까지 발생시켜 2~3차 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AI가 발생한 지역 주민들은 지하수 오염을 우려하며 상수도 개설을 요구해왔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상수도 설치는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2차 오염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당국은 지난해부터 매뉴얼을 바꿨다. 특수 비닐 대신 대형 PVC통을 이용하고 있다. 기존의 비닐을 활용한 방법은 자칫 터질 우려가 있었지만, PVC통은 그럴 염려가 없어 침출수 유출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이전보다 위생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이지만 역시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다. 살처분 지역 곳곳에서 2차 오염 위험 징후가 보인다. 한꺼번에 대량으로 살처분하는 매뉴얼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침출수 유출 방지를 장담해온 정부 당국의 새로운 매몰 방식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계곡·하천 등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살처분하는 것도 문제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난해 발표한 매뉴얼에 따르면 가축을 살처분할 때는 10톤 크기의 대형 PVC통에 사체를 담고, 사체에서 배출되는 가스를 빼내는 가스 배출관을 설치해야 한다. 살처분된 가축의 사체는 PVC통에 들어 있는 채로 3년 이상을 썩히고 난 후 여러 단계의 검사를 거쳐 바이러스 검출 여부 등을 봐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퇴비로 활용한다.

피해 농가와 살처분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는 예방 차원에서 3km 이내 의심 구역 전체에 대해 살처분하고 있는데, 반경 500m 이내로 구간을 줄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충남도의 경우 기존 발생 농가로부터 3km 내 예방적 살처분에서 법이 정하고 있는 500m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방역 당국과 협의하고 있다.

환경부는 AI 등이 발생해 가축을 살처분·매몰할 경우 매몰지에 대해 ‘환경영향조사’를 벌여왔다. 전국의 가축 매몰지 전수조사를 통해 침출수 유출 의혹이 제기된 매몰지, 하천 인근 취약 매몰지 등을 선정해 조사하는 방식이다. 또 매 분기 수질 조사 결과를 분석한 후 조치가 필요한 매몰지를 선정해 지자체에 통보하고 있다. 만약 매몰지에서 오염이 발견될 경우 이설, 차수벽 설치, 침출수 수거 등을 통해 오염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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