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민족주의, 일본 국민은 관심 없다”
  • 일본 도쿄=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2.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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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계의 합리적 지성, 에다 사쓰키 전 참의원 의장

도쿄 치요다구의 12층 건물인 참의원(상원) 회관에는 우리 여의도 국회와 비슷한 불문율이 있다. 선수(당선 횟수)가 많은 정치인이 의원실 선택권을 먼저 갖는다는 게 그것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2월12일 참의원 의장을 지낸 바 있는 에다 사쓰키 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하기 위해 방문한 곳은 가장 꼭대기인 12층이었다. 조망을 고려한다면 이른바 로열층인 셈이다. 에다 사쓰키 의원은 벌써 여덟 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다. 8선이다. 2007년 일본 최초로 자민당이 아닌 야당 출신 참의원 의장으로 취임한 정치인이다.

일본 의회는 참의원(상원)과 중의원(하원) 양원제로 참의원 의장은 상원의 국회의장 격에 해당한다. 그는 과학기술청 장관과 법무장관도 지냈다. 머리가 희끗한 에다 사쓰키 의원은 기자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신과 한국의 관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누님이 한국의 식민지 시절 서울에서 생활했고 선린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인 친구도 있었고 한국의 자연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일본으로 돌아오신 직후 인력거를 탈 일이 있었는데, 일본인 손님이 인력거꾼에게 손으로 직접 돈을 건내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한국인 인력거꾼에게 돈을 던져줬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정치인 아버지의 기억과 초심을 이어받아 자신도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라는 에다 의원은 지난해 12월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미래를 향한 전후 보상을 생각하는 의원연맹’이라는 모임의 회장 자격이었다. 국무총리실 소속 강제동원진상조사위원회를 방문해 지하 기록보관실에 소장된 33만여 건의 일제강점기 피해 신고를 직접 살펴봤다. 추가 피해 조사를 위해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일본 정부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한 뒤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시작부터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1964년 한일조약을 맺어 국교는 정상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그것으로 과거가 정상화된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에 깔고 양국의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게 시작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일본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가.

요즈음 일본 내에서는 역사를 잘못 인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패전국으로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승전 국가의 이기심이 있었고 일본 국민들은 이에 반항해 역사를 다르게 인식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정치인들이 언급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치의 큰 논쟁점이다.

잘못된 역사 인식이 일본인들에게 먹혀들었다고 생각하나.

정치인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어 하고 점점 태연하게 언급한다. 예를 들어 2월9일에 끝난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다모가미 도시오 후보가 60만표를 얻었다. 당선된 마스조에 요이치가 200만표다. 다모가미는 “일본은 과거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60만표를 획득했다. 그런 의견이 강해 보이지만 전체 500만표 중에서 다모가미는 12% 정도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아직은 소수다.

다모가미의 경우 20대 유권자 득표율이 높았다.

다모가미의 주장이 전달되기 쉬운 곳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대가 20대다. 또 젊은이들은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다. 패전한 것을 ‘운이 안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이 오해를 하면 안 될 부분이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짜증’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을 통해 우위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일본 정부의 발언에 대해 한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총리의 행동에 대해 경계하고 엄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그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응이 일본 국민들에게는 ‘한국이 일본을 적대시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일으켜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아베 정부는 폭주하는데도 이상할 만큼 지지율이 높다. 거품 아닌가.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통계적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팩트(사실)다. 하지만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에 동의하기 때문은 아니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반대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율이 높다. 경기가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베 정부를 지지한다.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지지율이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은 민족주의라는 게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곤란한 상황을 맞을 경우 민족주의를 들먹이며 국민 지지를 쉽게 얻으려고 한다. 이것을 막아야 하는데 타국의 오해가 깊을수록 우리의 노력이 효과적이지 못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도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나 역시 정상회담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상회담을 하게 될 경우 그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식민지 지배의 악영향을 부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일본의 당당한 역사 인식이라는 식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좀 더 필요한 대화, 예를 들어 경제 문제 등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난 박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은 아니다. 사실 지난해 12월 중반까지는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는 단계까지 갔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박 대통령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제는 한 달 전의 일이니 화를 풀어도 되지 않을까.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미국까지 실망스럽다고 할 정도로 주변국에게 비판을 받았다. 소프트파워라는 측면에서는 일본의 손해 아닌가.

나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고 있지만 한 개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자유 의지다. 문제는 정치 지도자가 참배를 하고 이를 언론을 통해 알리는 일이다. 그러니 한국이나 중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옳은 것이었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무리 봐도 잘못한 행동이다. 더군다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그런 행동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아베 정부 들어 일본은 점점 국가 중심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아베 총리의 정치가 그런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은 맞다. 반면 그런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큰 저항도 일어나고 있다. 총리의 말대로 일본을 국가주의로 만들자는 주장에는 우리 민주당 또한 강력하게 반대한다. 예를 들어 특정비밀보호법은 강행 체결됐다. 하지만 그 법이 바로 일본을 국수주의로 만들지는 않는다.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 속을 정부가 채워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우경화 분위기에서는 저항의 목소리가 힘을 받기 어려운 것 아닌가.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가 크기 때문에 분명 아베 총리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총리의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은 일본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서 직접 일본 국민들과 대화를 한번 나눠봐라. 바로 알 수 있다.

자민당에 비해 민주당의 존재감이 약하다. 민주당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지난해 총선거와 참의원 선거에서 우리 당이 졌기 때문에 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민족주의가 국민 다수에게 침투되고 있는 것은 아니란 점만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침투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인가.

과거 일본은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중국인? 사실 우습게 봤고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일본을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전쟁 후에도 기성세대의 일본인 우월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일본인의 우월의식을 인식시키는 발언을 자주 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일본의 민족주의적 움직임 때문에 재일 한국인들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좁아진 것은 아닌가.

민족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본 내에서 재일 외국인들의 활동을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나도 동의한다. 지방참정권은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이 공무원을 맡는 게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물론 한편으로는 오사카나 신오쿠보에서 헤이트 스피치(반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수다.

한국을 출발하면서 우리도 신오쿠보를 취재하려고 했다.

취재를 하는 것은 당연히 자유다. 하지만 일본 내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사실관계가 뒤틀린 것 같다.

맞다. 심지어 다수의 일본 국민은 반한 시위 그 자체에 대해 잘 모른다. 알더라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일 관계도 뒤틀려 있다.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에서도 반한 시위에 대해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일부다. 반한 시위가 일어나더라도 한국이 화를 내기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극우단체들에 지지 않는 방법을 취하는 쪽으로 한국 정부가 노력했으면 좋겠다.

최근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나.

지난해 12월 중순 서울에 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새누리당·민주당 외에도 민간단체 등 많은 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사견이긴 하지만 한국·중국·일본은 모두 한자문화권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예전에 비해 한자 표기가 훨씬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신문에 한자와 한글을 섞어 사용하면 조금만 유심히 봐도 무슨 내용인지 얼핏 알게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친밀감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가.

의식하느냐의 문제다. 어제(2월11일) 민단에서 주최하는 신년회에 참석했다. 그곳에 박 대통령의 신년 축하 인사와 민단 중앙본부 단장의 축하 인사 팸플릿이 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것은 모두 한글인 반면, 민단 본부는 한자를 섞어 썼더라. 민단 본부는 팸플릿을 일본인이 본다는 점을 의식하고 만들었던 것 같다.

동아시아 3국이 한 지붕 밑에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한·중·일의 갈등은 봉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영토 문제가 그렇다.

이웃 나라니까 그리 이상한 문제는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영토 문제는 많다. 예를 들어 옆집 사람이 시끄럽다는 등의 상황은 많은 법이다. 문제는 해결법이다. 분명히 이것을 빌미로 싸움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다. 만약 지금 해결하지 못한다면 미래 세대에 넘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힘으로, 전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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