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사회 양극화가 역성혁명 불렀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2.1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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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펴낸 역사학자 이덕일

KBS 드라마 <정도전>이 10%대 시청률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덩달아 정도전 또는 조선 건국과 관련한 소설과 역사서가 쏟아져 나온다. <정도전> 제작진들은 이런 책들을 촬영 전에 참고했을 것이다. 이미 출간된 소설이나 소설가에게 기댄다면 제작이 쉬울 터인데, 그러지는 않은 것 같다. 소설들은 드라마와 관련이 있는 듯 출간 시기를 방송과 맞추기는 했는데, 어느 하나 드라마의 원작이라고 내세운 것은 없다.

제작진은 사극의 특성상 소설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한 책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어떤 책과 사료를 참고했을까. 알아보니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53)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역사적 인물 가운데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불운한 천재들이나 역사 속에 안타깝게 묻혀버린 인물을 복원해왔다. 정치사 위주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봤다. 게다가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정도전> 제작진이 이 소장을 찾은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 시사저널 임준선
고려 말과 지금 사회 상황 닮아

“드라마 제작진이 찾아와 <정도전>을 만든다고 하기에 같이 공부를 좀 하자고 했다. 역사물이라는 건 소설이 됐든 영화가 됐든 상상력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료와 사료 사이에 빈 공간을 개연성 있는 상상력으로 메워야지, 사료를 무시하고 무조건 상상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공부를 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2월10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연구실을 찾은 기자에게 이 소장은 지난 7개월 동안 드라마 제작진과 공부한 자료들을 모은 두툼한 자료집을 꺼내 보여줬다. 드라마에 쓸 만한 사료나 아이디어를 얻어가려 온 제작진에게 역사 드라마인 만큼 기본인 역사 공부부터 하자고 제의했고, 공부한 게 그렇게 수북이 자료로 쌓였던 것이다.

정도전의 일대기에는 공백이 많다. 9년이라는 긴 기간에 대한 사료가 없어 제작진은 고민이 많았다. 그 공백을 메우는 작업에 이 소장의 상상력이 큰 도움이 됐을까. 이 소장은 그 시대를 함께한 이들과 관련한 사료를 면밀히 검토하면 드러나지 않은 정도전의 삶을 복원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정도전 공부’는 인물들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들을 종합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런데 <정도전>이 왜 당시 상황에 지금의 상황을 빗댄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게 된 것일까. <정도전>이 호평받는 것은 지금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00% 같다고 할 수 없다. 유사한 점이라고 한다면 경제 부분에서 양극화가 그렇고, 사상적인 부분에서도 한국 사회가 큰 틀의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고려 말과 비슷한 점이 많다.”

어쨌든 드라마의 방향을 정하는 데 이 소장이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그는 제작진과 함께 <정도전>에 어떤 내용을 담으려 했을까. “왜 고려라는 나라가 멸망했고, 조선 건국 과정에서 이성계나 정도전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고찰해보자는 것이었다. 역성혁명이냐 아니냐, 충신이냐 역적이냐, 이런 관점보다는 그 당시 사회 경제적 구조나 신분 구조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는 “고려 말 소수의 권문세가들이 권력을 독점했던 데에는 지금으로 보면 양극화나 다를 바 없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 그런 양극화 문제를 고려 왕조 내에서 해소했어야 했는데, 결국 못 하니까 정도전 같은 역성혁명파가 등장해 새 체제를 만들어나간 것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그 시대의 문제를 당시 토지 제도 문제, 양극화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정도전>이 단순히 정도전의 일생만 바라보지 않고 성리학과 토지 문제까지 천착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소장은 “조선이 위화도 회군 세력의 무력에만 의지해서 개창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념, 새로운 경제 체제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개국했다는 점을 밝히려 했다”고 덧붙였다.

역사가 ‘반성의 도구’ 되려면 공유돼야

반년이 넘는 기간에 제작진과 ‘정도전 공부’를 한 이 소장은 드라마 촬영 전 배우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다는 걸 알고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강연해 출연자들의 공감을 샀다. 이렇게 ‘정도전 공부’를 종합해 역사 특강을 한 결과물이 <정도전과 그의 시대>다. 이 소장은 이제껏 연구한 것을 책으로 내왔는데, 역사 특강을 한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소장은 역사 지식이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유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역사 대중화 작업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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