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개발 사업 ‘검은 거래’ 드러나나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2.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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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MB 정권 때 의욕적으로 진출…비자금 조성 의혹 등 뒷말 무성

‘폭주 기관차’와도 같았다. STX그룹은 조선·해양업을 주력으로 했지만, 2010년을 전후해 해외 개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거침없는 투자에 나섰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자원 외교 정책에 발맞춰 공격적인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캐나다 북서부 맥사미시 가스 생산 광구 지분 확보와 미국 앨라배마 주의 생산 유전 지분 및 운영권 인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암바토비 니켈 광산 사업 진출 추진, 중국 샨시성 평정 탄광 개발 사업 지분 확보 등 STX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연일 언론에 회자됐다. 공격적인 M&A(인수·합병)로 그룹의 덩치를 키운 강덕수 전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해외 개발 사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STX그룹이 2011년 초 의욕적으로 추진한 인도네시아 유연탄 광산 개발 사업이 법적 분쟁에 휘말리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은 인도네시아의 한 탄광 회사 모습. ⓒ EPA연합
STX의 경영 전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강덕수 전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해외 개발 사업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STX가 추진한 해외 사업의 부실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STX가 진행한 일부 해외 개발 사업은 개발 초기부터 현지 업체와의 법적 분쟁을 겪으며 좌초 위기를 맞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해외 개발 사업의 경우 추적이 어려운 해외 법인이나 조세회피처 등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비자금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강덕수 전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2400억원대 배임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하며 가장 먼저 STX의 해외 개발 사업이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전 정권을 등에 업고 STX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해외 개발 사업에 의혹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2월 당시 김대유 ㈜STX 사장(오른쪽)이 이상호 한국남부발전 사장과 인도네시아 IAC 광산 투자를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다. ⓒ STX 제공
인도네시아 탄광 지분 인수 1년여 만에 분쟁

STX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STX가 해외에서 추진하다 좌초 위기를 겪고 있는 일부 해외 개발 사업이 관심을 끌고 있다. STX가 2011년부터 추진해온 인도네시아 유연탄 탄광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 유연탄 탄광 개발 사업은 지주회사인 ㈜STX가 추진해온 사업이다. STX에 따르면 2011년 2월 인도네시아 IAC(PT Indoasia Cemerlang)로부터 인도네시아 남부 칼라만탄 낀탑(Kintap) 지역의 유연탄 광산 지분을 인수했다.

STX는 IAC의 지분 40%를 3000만 달러에 인수하고 광산 운영권과 전체 생산 물량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STX는 또 지분 인수 후인 같은 해 7월 연간 생산량 240만톤에 이르는 유연탄 생산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었고, 향후 15~20년간 연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업 초기 STX는 낀탑 광산 개발에 주력하는 듯이 보였다. STX는 2011년 12월 초 한국남부발전㈜과 ‘인도네시아 STX·IAC 광산의 투자를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남부 발전을 주된 수요처로 확보한다는 MOU였다.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던 STX의 인도네시아 탄광 개발 사업은 2012년 9월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STX와 IAC 사이에 법적 분쟁이 빚어진 것이다. STX 관계자는 당시 분쟁에 대해 “IAC와 지역 광산 대주주가 상호 합의서를 무시하고 독단적 행동을 했다”며 “이에 따라 싱가포르 법원과 싱가포르 국제중재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인도네시아 현지 사정기관에 당사자들을 형사 고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3년 IAC와 대주주 측이 오히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방법원에 900억원대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양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들에 따르면 STX가 오히려 사업을 방해해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결국 IAC와 대주주 측은 1심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해 9월 자카르타 지방법원은 “STX가 원고에게 972억7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STX 관계자는 “IAC 측 인사가 현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즉각 항소를 했고, 인도네시아 법원 판결이 한국에서 집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STX는 해당 판결 내용을 공시하지 않아 공시 위반 제재금 600만원을 부과받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STX에 투자금 지급이나 법인 경영 등과 관련해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돌았다. 공시 의무 불이행에 대해 STX 측은 “그룹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공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STX 측은 싱가포르의 재판 결과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해당 재판 결과는 올해 하반기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사업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낀탑 생산 유연탄의 주요 수요처로 MOU까지 체결한 한국남부발전은 사업 추진을 접었다. 남부발전 연료팀 관계자는 “MOU 이후 STX와 IAC 측이 분쟁 중이라서 더 이상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며 “유연탄 도입이 안 돼 이미 사업을 종료했다”고 말했다.

STX가 2010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추진했던 초대형 주택 사업도 법적 분쟁에 휘말려 좌초 위기를 겪고 있다. STX는 2010년 12월 가나 정부와 수도 아크라 등 가나 현지 10개 도시에 주택 20만호, 도시 기반 시설 등 총 1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건설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체 20만호 중 우선 3만호의 시범주택을 건설한다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당시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사됐다. 가나 주택 건설 사업은 2009년 8월 가나 정부가 현지 한국 대사관에 주택 건설 사업에 대한 협조 요청을 하고, 대사관 측이 당시 가나를 방문한 강덕수 전 회장에게 사업을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2011년 1월 말 수도 아크라에 있는 가나 경찰학교에서 열린 가나 STX의 주택 건설 사업 기공식에는 당시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이 참석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가나 주택 사업도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2011년 7월 STX가 “현지 법인 CEO가 인감 위조와 허위 주주 변경 등을 도모했다”며 가나 법원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STX는 해당 CEO를 해임하기도 했다. STX와 국토해양부 측은 “STX가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당초 계획대로 사업 추진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11년 분쟁이 시작된 후 2년여를 끌어오고 있는 가운데 가나 정부가 STX와의 계약을 파기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다.

2011년 1월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정종환 당시 국토해양부장관(오른쪽 세 번째)과 가나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STX의 가나 국민주택건설 기공식이 열렸다. ⓒ STX 제공
무리한 사업 뒤에 ‘검은 거래’ 있나

STX가 공격적으로 해외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각종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등 어려움을 겪자 무리한 사업 추진이 화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해외 사업 투자가 STX그룹 전체의 부실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낀탑 광산 인수도 성급했다는 정황이 엿보인다. 중국 업체가 IAC 측에 접근했다는 첩보를 인수한 STX가 위기감을 느끼고 서둘러 대금 결제를 약속해 가까스로 지분을 살 수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STX 내부에서도 투자금 지급 등이 급하게 처리된 과정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해외 개발 사업이 비자금 조성 창구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실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경우, 조세 혜택지 등 제3국의 페이퍼컴퍼니나 사업 중재 역할을 하는 중간 브로커를 거치면서 검은 자금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해외 투자 사업을 진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광산 개발 투자 등 해외 사업 투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금 결제가 이뤄진다”며 “현지 법률상 해외 자본의 투자금 이체가 불가능한 경우나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싱가포르 등 제3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투자금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강덕수 전 회장의 배임 및 비자금을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이 해외 자원 사업을 파헤치다 보면 ‘검은돈’이 나올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고 기관차 수출 사업 특혜 의혹 다시 불거질까 


검찰이 STX그룹 경영진에 대한 수사를 전 방위로 진행하면서, 시사저널이 2년 전 의혹을 제기한 이란·파키스탄 중고 기관차 수출 사업 특혜 시비가 가려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사저널은 2012년 11월16일자(‘코레일이 계약한 것을 왜 STX가?’)를 통해, 중고 기관차 수출 사업을 둘러싼 4대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의혹의 핵심은 코레일이 2012년 이란과 파키스탄에 총 200억원대의 중고 기관차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고도 관련 사업에 경험이 부족한 STX가 직접 추진하도록 하거나, 협력사로 선정해 사업을 하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가 나간 후 사정 당국이 실제 코레일과 STX 관련자를 상대로 수사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코레일과 STX 관계자들의 횡령 혐의를 잡기 위해 수사를 벌였다”며 “하지만 혐의를 입증할 증거 자료를 찾지 못해 현재는 자체 종결 처리하고 검찰에 송치한 상태”라고 밝혔다.

경찰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이 STX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그룹 내 관련 자료를 확보한 만큼, 향후 수사 과정에서 해외 중고 기관차 수출 사업 특혜 의혹을 풀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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