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제국’은 빚으로 쌓은 모래성일 뿐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2.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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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재계 13위 올라…지금은 횡령·배임 혐의 피의자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은 14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27년 동안 ‘쌍용맨’으로 살아왔다. 동대문상고를 나와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계급장은 없었다. 쌍용그룹 계열사 경영 관리·기획직을 거쳐 1992년 쌍용중공업 관리담당 이사로 승진해 최고재무관리자(CFO)에 오른다. 여기까지는 여느 샐러리맨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0년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뀐다. 쌍용중공업이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퇴출 위기에 몰렸다. 그는 부도난 쌍용중공업을 재건할 총책임자로 선임된다. 그때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다. 남이 임명하는 CEO가 아니라 오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월급쟁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몸담은 회사이니 내 회사라는 자세로 일했다.” 평소 이렇게 말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2010년 9월13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기업 대표들과 가진 조찬 간담회에서 강덕수 STX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모든 것을 걸었다. 당시 51세. 나이도, 아직 10대인 세 자녀도 그에겐 걸림돌이 아니었다. 학비를 댈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세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스톡옵션으로 받은 회사 주식과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렇게 모은 20억원을 다 털어 쌍용중공업 주식을 샀다. 2001년 5월1일 그는 드디어 쌍용중공업의 주인이 됐다. 화려한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사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회사 이름을 바꿨다. 침몰하는 ‘쌍용중공업’의 사명을 그대로 가져갈 순 없었다. STX(System Technology eXcellent), 시스템과 기술이 탁월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M&A로 매출 20조 대기업 총수 되다

평범한 그를 재계 13위 그룹의 오너로 만든 마법은 기업 인수·합병(M&A)이었다. STX 설립 5년 만에 4개 회사를 세우고, 3개 회사를 인수했다. STX 출범과 동시에 쌍용중공업의 선박용 엔진 부품 사업 부문을 떼어내 STX엔파코를 만들었다. 이후 2001년 STX메탈, 2004년 ㈜STX와 STX중공업, 2005년 STX건설을 세웠다.

그의 손이 닿으면 법정관리에 있던 기업도 벌떡 일어섰다. 대동조선과 범양상선이 대표적이다.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은 이때부터 생겼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7년 아커야즈(현 STX유럽) 등이 STX그룹 ‘우산’ 아래 들어왔다.

그렇게 강 전 회장은 STX를 출범 10년 만에 재계 13위권에 올려놓았다. 2000년 쌍용중공업 시절 2605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10년 만에 100배 이상, 848명이던 직원은 6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성장 속도나 규모를 봤을 때 모두 세계신기록감이다. 쌍용중공업 인수 10년 만에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황제’가 된 것이다.

강 전 회장의 평범한 이력은 그의 성공을 더욱 특별하게 했다. 그는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의 첫 번째 공식인 ‘스카이(SKY)’ 학벌이 아니다. 그에겐 ‘백’도 없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에 참석하는 그룹 총수 가운데 자신의 힘만으로 회사를 일군 창업 1세대는 그가 유일했다. 게다가 강 전 회장의 사업 확장은 재벌의 문어발식 성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 기자재-엔진-선박 건조-해운-에너지 연관 기업’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수직 계열화의 뼈대를 갖추기 위한 전략적인 M&A였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 시대에 새로운 기업가의 전형, ‘한국 경영계의 구루(guru·위대한 스승)’로 강 전 회장을 꼽았던 이유다. 여기에 “경영 능력이 없는데 자식이란 이유로 회사를 물려주면 수만 명의 일자리가 온전할 수 있겠느냐”는 강 전 회장의 ‘개념 발언’은 2세 경영에 집착하는 다른 재벌 총수들과 대조를 이뤘다. 그의 성공 신화는 상대적으로 더 빛을 발했다.

하지만 강덕수 신화는 허상이었다. “나는 생각하던 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라던 그의 평소 지론은 말뿐이었다. 그 역시 재벌 체제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꾸준한 지분 매입으로 STX건설을 개인 회사로 만들었다. STX건설은 강 전 회장과 두 딸인 정연·정림씨가 지분 62.2%를 소유한 사실상 강덕수 일가의 회사다.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두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하려 했다. STX조선·STX엔진·STX중공업은 아파트 신축 등 각종 공사를 STX건설에 몰아줬다. STX건설은 6년 만에 시공 능력 평가 순위가 급등(2005년 222위→2012년 37위)하며 자산을 16배나 불렸고 극심한 경영난으로 채권단과 자율 협약을 맺은 상황에서도 STX건설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강덕수 일가에게 50억원의 배당금을 안겼다.

2월1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서울 중구 STX남산타워에서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신경영인’ 강덕수도 재벌 구태 못 벗어

강 전 회장이 69.4%의 지분을 가졌던 포스텍은 지난 5년간 강 전 회장에게 96억원의 배당금을 베풀었다. 강덕수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모두 146억원을 챙겼다. 2세 경영은 없다고 했지만 STX건설을 통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해왔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서울에서 싱싱한 멸치를 맛보려면 가물치 몇 마리가 꼭 필요하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이동하는 과정에 대부분 죽어버린다. 그렇지만 가물치 한 마리만 수조에 풀어놓으면 바닷가에서 서울까지 옮겨도 살아남는다.” 강인한 핵심 인재를 원하는 ‘멸치와 가물치론’을 자신의 자녀들에겐 전수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서 돈을 쓸어담도록 것이다.

M&A에 대한 욕심도 그의 몰락을 자초했다. M&A로 커진 STX의 몸집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파고를 무사히 넘길 만큼 탄탄하지 못했다. 2008년 이후 조선·해운업 불황→선박 엔진과 조선 기자재 사업 침체→STX엔진·STX중공업 수익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강 전 회장은 M&A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대우건설·현대상사·하이닉스 등 나오는 매물마다 인수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다. 현재 STX엔진과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핵심 계열사인 STX조선해양·STX중공업·STX엔진이 채권단 자율 협약 중으로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상태다.

복잡한 순환 출자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다른 재벌들의 ‘황제 경영’도 답습했다. 그는 69.4%의 지분으로 STX포스텍을 장악했고 STX포스텍은 ㈜STX를 통해 전 계열사를 지배했다. 순환 출자 구조는 경기가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유동성 위기가 오면 그룹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트리거’가 된다. 게다가 회사가 무너지는 경영난 속에서도 2012년 그는 10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았다. 윤리경영·책임경영을 외쳐온 강 전 회장의 발언이 무색해졌다.

그의 성공 뒤에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개입됐다는 의혹도 가시지 않고 있다. 지금은 좌초된 STX ‘가나(아프리카) 하우징 프로젝트’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왕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개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화는 없었다. 강덕수는 ‘미다스의 손’도 ‘경영계의 구루’도 아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도, 탁월한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만으로 불도저처럼 기업의 덩치를 키웠을 뿐이다. 그는 검찰청을 드나들며 조사를 받는 피의자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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