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가닿는 것이 삶”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2.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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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펴낸 은희경

최근 출판계의 트렌드를 보면 다소 ‘감정적’이다. 사람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인문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감정에 천착한 철학자는 스타 강사로 만족하지 못해 스타 저자로 떠올랐다. 방법론을 전하기보다 감정에 호소한 자기계발서가 주목받고 작가의 감정을 표현해 공감하기보다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글이 많아 보인다. 자녀 교육서 분야에서도 <엄마는 아들을 너무 모른다>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또한 감정을 읽으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심리학 관련서들이 인기를 끌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나의 감정을 알고 너의 감정을 알고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식이다. 원래 인간의 심리가 이러하니 고치라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지금의 처지가 다른데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일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줘서는 공감을 얻기 힘든 것이다.

ⓒ 연합뉴스
소설 속 낯선 이에게서 낯익은 자신 발견

그러고 보니 소설은 이미 독자와 더불어 ‘감정 교육’을 해온 셈이다. 소설 속 인물에게서 독자들은 각자 자신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은희경 작가가 신작 소설집을 펴냈다는 소식을 들으니 ‘감정’이 트렌드라는 분석에 무게를 실어줄 듯하다. 그의 소설은 사람들의 행동보다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그 감정에 접사 렌즈를 가져다 대듯 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 들어 있는 단편 <금성녀>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때는 시간이란 게 끊어져 있으면 좋겠어. 다음 같은 건 오지 않고 모든 게 그때그때 끝나버리는 거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 가서 잘하면 되니까. 지금 제일 잘하려고 안달 안 해도 되잖아.”

은 작가는 인생에서 행복과 기쁨은 찰나에 불과하고 고통과 슬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소설 <태연한 인생>을 발표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한껏 낭만적인 장면을 앞서 그려놓고는 이내 냉정한 현실을 일깨우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맥 빠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어떤 독자는 “현실을 인식하는 생각과 감각을 좀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고 평가했다. 이소연 문학평론가는 “은 작가의 소설은 우리가 낯선 인생에 부딪혀 상처 입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또다시 낯선 곳을 부단히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속삭여준다. 필멸의 운명과 환상,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건너는 자세는 언제나 아름답다”고 설명했다.

은 작가는 독자와 만난 자리에서 감정을 자극하는 소설 작법에 대해 설명했는데 작가 또한 그런 방식을 통해 삶의 활기를 일깨운다고 덧붙였다. “독자 중에는 제 소설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며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는 어설픈 위로보다는 조금 각성을 줌으로써 그게 삶의 활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 자신에게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힘들 때나 어려울 때 위로받는 것 대신 스스로를 못살게 군다. 그러면 나 자신이 뭔가를 내놓는 것 같다.”

미지의 것에 대한 관심이 활기 불러일으켜

은희경 작가는 ‘놀랍도록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대면하면서 세월을 비껴가는 법을 터득했는지 모른다. 화낼 필요가 없고 스트레스받아봤자 소용없음을 깨달은 듯 그는 스스로 ‘타고났다’는 웃음을 달고 산다. 그는 자신만의 삶의 태도를 그 비결로 꼽기도 했다. “그 사람의 분위기라고 할까, 태도라고 할까. 그런 것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인상이 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어리게 보이는 것은 아마 격식에 맞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작가들은 대부분 격식에 맞는 생각에서 되도록 벗어나려 한다.”

그렇다고 혼자 자유롭거나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무엇이든 먼저 결정해버리지 않고 경험하려 한다고도 했다.

“내가 아는 것도 뭐든 잘못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항상 여지를 두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미지의 것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런 것이 나를 긴장시키고 활기가 나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은 작가는 소설에 자신이 만난 많은 사람을 가공해 등장인물로 넣기도 한다. 그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가 독특한 개개인이라는 것을 알기를 바랐다. 지난해 그는 이번 소설집에 대한 구상과 방향을 살짝 엿보였다.

“이젠 내가 맨 처음 쓰려 했던 소설을 다시 쓰고 싶다. 여자 기숙사에서 30여 년 전에 알게 된 친구들의 인생 여정 같은 이야기를 클래식하게 쓰고 싶다.”

단편 <프랑스어 초급 과정>에서 그가 삶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그렇게 해서 나온 듯하다. ‘매순간 예상치 않았던 낯선 곳에 당도하는 것이 삶이고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려야만 닥쳐오는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어.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꿈만이 가까스로 그 뿌리를 지탱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건 아닐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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