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 이상과 한계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
  • 승인 2014.02.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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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구태 정치 척결’을 내걸었고, 가장 중요한 공천 기준으로 ‘도덕성’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좋은 성과를 냈고 정치 쇄신은 12월 대선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후 국민 대통합, 경제민주화 등 대선 공약이 소멸하거나 후퇴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쇄신 의지도 실종되었다. 요즘 새누리당은 ‘구태 정치 척결’을 내걸었던 정당으로 보기 어렵다. 민주당도 크게 나을 게 없다. 민주당은 야당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내건 ‘새 정치’가 호응을 얻는 것은 무기력한 민주당과 퇴행적 정치를 하는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이라는 당명을 내건 안철수 신당은 창당 발기문에서 국민 통합의 정치, 민주적 시장경제, 정의로운 복지 국가를 추구하며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모든 국민의 통합 정당이 되겠다고 밝혔다.

창당 발기문은 원래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총동원하게 되지만, 그래도 곱씹어볼 만한 구석이 많다. 정의로운 복지의 기준으로 ‘중 부담 중 복지’를 내세웠고, 민주적 시장경제를 추구한다고 한 점이 그러하다. 전통적인 진보 정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수 정당도 아니라고 한 셈이다. 그리고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겠다며 또다시 중도·통합성을 강조했다.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라고 하지 않고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라고 했으니, 신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보수 쪽에 근접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한 걸음씩 좌클릭했다면, 근래에는 두 정당이 모두 우클릭을 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의 우클릭은 지나쳐서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우클릭으로 생긴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합리적 보수’를 먼저 내세웠을 수도 있다. 문제는 새정치연합이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느냐 하는 점이다.

2012년에 안철수 의원 주변에 모였던 인재들은 대부분 대학교수였다. 그러나 교수들은 선거에서 승산이 희박한 제3당 후보라는 무모한 위험을 택하지 않는다. 교수들을 빼고 나면 안철수 세력에서 새 인물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물론 새 인물만을 갖고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안 의원이 ‘새 정치’를 내걸었고, 안 의원의 주변 교수들이 그런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이런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안 의원이 당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기성 정치인을 영입하기 위해 애쓰는 구태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차가운 정치 현실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기득권 집단이니, 구태 정당이니 하는 비난을 받지만 그래도 전체 의원 중 대략 3분의 1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이들 소수 의원 덕분에 두 정당이 부침(浮沈) 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 시대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젊은 시절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유를 떠나면서 “정치는 이상 반(半), 현실 반(半)”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안 의원이 JP의 구절을 반추(反芻)하면서 ‘반쪽 이상(理想)’이라도 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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