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 깎아 먹는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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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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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9월5일 경기도 부천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20일 후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시에서 한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립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꼬마 때부터 천재로 불렸습니다. 10년 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펼쳤습니다. 김연아가 분루를 삼킬 때도 있었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번번이 김연아의 벽에 막혀 패배의 진한 아픔을 씹어야 했습니다.

열 살 즈음부터 둘은 독보적인 라이벌이었습니다. 특수한 국민 정서가 더해져 빙판에서 맞붙을 때는 한국과 일본 열도가 들썩였습니다. 져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이 두 소녀의 가슴을 짓눌렀을 겁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상대를 생각하며 스케이트화 끈을 묶었을 것입니다.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프리가 끝난 뒤 아사다는 “연아가 있어 성장했다. 좋은 추억이다”라고 했습니다. 김연아는 “아사다가 울먹일 때 나도 울컥했다”고 했습니다. 피겨 인생 마지막 무대에서 둘은 진한 동지애를 느낀 듯합니다. 

천재라도 극한의 승부욕이 없다면 허무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1인자의 고독은 스스로를 퇴보하게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승부사는 맞수를 그리워하고 맞수를 만났을 때 눈빛이 일렁입니다. 그런 모습에서 사람들은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맞수가 있어야 개인이든 사회든 진화의 속도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삼성과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습니다. 두 회사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두 회사의 경쟁이 없었다면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기는 훨씬 뒤로 미뤄졌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당을 견제할 강력한 야당이 있을 때 정치가 진보합니다. 지금 우리는 지나칠 만큼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을 견제할 민주당은 지리멸렬입니다. 박근혜정부 1년 동안 민주당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윤석열·권은희의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 폭로, 경제민주화 실종, 인사 실패,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 등 호재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빈손입니다. 1년 내내 중도냐 선명성이냐를 놓고 식구끼리 다투다 나자빠진 꼴입니다. 40% 넘는 새누리당 지지율 중 상당 부분은 민주당이 갖다 바쳤습니다. 새누리당이 ‘똥볼’을 차도 민주당이 당나라 군대처럼 우왕좌왕하니 국민이 못미더워하는 겁니다.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불통 정권이라고 비판합니다. 원인을 뜯어보면 민주당 잘못이 큽

니다.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니 집권당이 깔아뭉개는 겁니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의원이 “10%도 안 되는 정당과 뭘 협의하느냐”고 조롱하겠습니까. 

야당의 무기력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야당의 감시가 소홀하면 집권 세력은 독주합니다. 독재의 유혹을 받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행태에서 그런 조짐이 보입니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126명을 거느린 거대 야당입니다. 의석 점유율 42%대로 여당을 견제할 자산과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빈 수레 안에서 다투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민주당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을 기대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제1야당의 전통을 온몸으로 지킨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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