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와 오바마 ‘짬짜미’했지”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3.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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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자치 문제에 강경 대응 일관하는 시진핑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달라이 라마를 불러 지도자와 만나게 함으로써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이며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위반했다.”

2월22일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논평에서 미국을 전례 없이 맹비난했다. 그 전날인 21일(미국 시각) 오바마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 14세를 백악관 관저 1층에서 만난 후 중국 정부가 내놓은 성명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의 평화·비폭력 기조를 치하하는 동시에 그의 ‘중도적 접근(Middle Way)’에 지지를 표명하고 나선 데 대해 격분했다. 친 대변인은 “달라이 라마의 중도적 접근은 중국 영토의 4분의 1에다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대티베트구(大藏區)’를 건립하려는 것”이라며 “중국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달라이 라마가 추구한다는 중도적 접근이 무엇이기에 중국 정부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월21일(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고 있다. ⓒ EPA 연합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티베트 문제에서 그릇된 이해로 접근해온 것이 있다. 바로 달라이 라마가 ‘독립’을 추구한다는 인식이다. 특히 대다수 한국인과 13억 중국인은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독립의 화신처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물론 1959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봉기가 실패해 인도로 망명했던 달라이 라마는 20년간 중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

달라이 라마는 1979년 만남 자체를 피해온 중국 정부와 처음 접촉한 이후에도 티베트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노선에 변화가 온 것은 1987년이다. 달라이 라마는 미국 의회 인권코커스 연설에서 티베트를 평화 지역으로 선포하고 티베트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협상을 하자고 중국에 제안했다. 1988년 유럽의회 연설에서는 중국이 외교권을 갖고 티베트에 자치 정부를 두는 ‘티베트 평화를 위한 5개 조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중국은 이를 거부하면서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이란 목표를 공개적으로 포기하면 티베트로 돌아가 살 수 있다”고 밝혔다.

‘대티베트 자치안’에 발끈하는 중국 정부

이런 와중에 1989년 3월 티베트 라싸에서 1959년 이후 최대 규모의 ‘반(反)중국’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 참가자 상당수는 진압 과정 중 살해됐다. 무력 진압을 위해 선포한 중국의 계엄령은 1990년 3월에서야 해제됐다. 1991년 4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 달라이 라마를 초청해 면담했다. 이후 티베트 문제는 국제 이슈로 부각됐다.

서구 세계의 압력으로 중국은 어쩔 수 없이 티베트 망명정부와 몇 차례 협상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1999년 달라이 라마는 진전된 입장을 내놓았다. 티베트 봉기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분리 독립 포기를 설득하겠다고 표명한 것이다.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티베트청년회의(TYC)는 강력히 반발했지만 중국과의 협상이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 후 달라이 라마는 수차례 중국에 특사를 파견해 티베트 문제를 논의했다. 특히 2005년 3월 티베트 봉기 46주년 기념 연설에서 “티베트 독립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해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달라이 라마가 자신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자 중국도 그의 귀환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표명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뜻밖의 문제가 터져 나왔다. 바로 달라이 라마가 요구한 대티베트구 자치안이다.

대티베트구란 티베트인 거주지로 시짱(西藏) 자치구, 칭하이(靑海)성 전체, 간쑤(甘肅)성의 3분의 1, 쓰촨(四川)성의 3분의 1, 윈난(云南)성의 4분의 1,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4분의 1 등 6개 성·자치구에 걸쳐 있다. 전체 면적이 240만㎢에 달해 중국 영토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오늘날 600만명에 달하는 티베트인 가운데 절반만 시짱 자치구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5개 성·자치구와 인도·네팔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런 티베트인이 사는 지역을 하나로 통합해 실질적인 자치를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중국 정부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각 성·자치구에서 티베트인 거주지를 분리할 경우 해당 지방정부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또한 티베트인 이외에 몽골족, 무슬림인 회족과 위구르인, 한족 등 다양한 민족도 거주하고 있어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의 티베트라는 거대한 민족 공동체가 등장해 다른 소수민족에게도 확산될 위험이 있다.

대티베트구는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달라이 라마는 시짱 자치구 영역 밖으로 행정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티베트 북부인 암도(安多)와 동부인 캄파(康巴)는 토호 세력들이 독자적으로 통치했다. 이들 지역에서 달라이 라마는 라마 불교를 통해 정신적인 영향력만 행사해왔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현실을 잘 아는 달라이 라마가 무리하게 대티베트구 자치안을 들고 나온 이유는 티베트 지역의 급속한 중국화(化) 때문이다. 1950년 티베트 점령 이후 중국은 티베트 전통문화와 라마 불교를 부정하고 티베트인의 정체성을 억압해왔다. 2006년 7월 개통된 칭짱(靑藏)철도는 수많은 한족을 티베트로 실어나르고 있다. 티베트인들이 사는 산간 오지마저 한족의 유입이 늘어나 인구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지나친 동화 정책은 2008년 3월 대규모 유혈 사태로 표출됐다. 이전의 반중국 봉기 때와 달리 티베트인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한족 가게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한족에게 돌렸던 셈이다. 중국은 이 사태의 배후에 달라이 라마가 있다고 비난하며 2010년 1월 협상을 끝으로 대화를 중단했다.

시위를 무력 진압한 중국은 지금까지 강압 통치를 지속해오고 있다. 지난 1월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인권·민주촉진센터가 발표한 ‘2013년 티베트 인권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티베트인 수백 명이 구속 수감 등으로 박해받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157명이 당국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했다. 이런 무력 통치에 반발해 티베트인들은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맞서고 있다. 1월5일 칭하이성 쩌쿠(譯庫) 현에서 파그모 삼드룹이 분신하면서 2009년 이래 분신자 수는 125명으로 늘어났다.

“중국의 통치 받아들이겠다”

현재 중국 정부가 문제로 삼는 대티베트구 자치안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인을 정신적으로 한데 묶고 TYC 등 강경파를 달래기 위한 상징적 수사에 불과하다. 달라이 라마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거듭나는 중국과 타협하길 원하고 있다. 줄곧 “티베트는 저개발 지역으로 현대화가 필요하다”며 “티베트인의 이익을 위해 중국의 통치를 받을 용의가 있다”고 천명해왔다. 정치·경제·외교적 주권은 중국에 양보하고 종교와 문화만 자치를 요구하는 ‘중도적 접근’ 의지를 확연히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5월 롭상 상가이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는 “중국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TYC도 달라이 라마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달라이 라마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지엽적인 문제인 대티베트구를 거론하며 달라이 라마를 ‘분리독립주의자’로 색칠하고 있다.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고 티베트인의 분신을 막기 위해서는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의 양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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