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내세워 시청률 장사 아빠는 이미지 세탁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4.03.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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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등 쇼 비즈니스

아이를 내세운 육아 예능, 혹은 가족 예능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빈사 상태에서 허덕였던 MBC <일밤>을 <아빠! 어디가?>가 살려놓자, 곧바로 KBS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편성하고 연이어 SBS에선 <오! 마이 베이비>를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연말 방송사 연예대상은 아이들 잔치판이 되었다. 그 어떤 예능인도 흔들지 못했던 ‘유강천하’의 아성을 아이들이 무너뜨린 셈이다.

KBS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시작할 때 큰 비난이 있었다. MBC에서 이미 성공시킨 육아 예능을 그대로 베끼는 것은 공영방송의 도리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KBS는 아랑곳하지 않고 육아 예능을 발진시켰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육아 예능이 승승장구하자 SBS가 <오! 마이 베이비>로 막차를 탔다.

육아 예능 전성시대에 아이들 스타 탄생이 잇따랐다. <아빠! 어디가?>로 처음에 뜬 출연자는 윤민수의 아들 윤후였다. 윤후는 귀여운 표정과 말투, 가공할 먹성으로 국민 스타 반열에 올랐다. 윤후가 유행시킨 ‘짜파구리’로 인해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매출액이 바뀔 정도였다. 뒤이어 이준수·성준·김민율 등이 인기를 끌더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 육아 예능 ‘끝판왕’으로 등장했다.

ⓒ MBC·KBS·SBS 제공
추성훈 딸 추사랑, 육아 예능 ‘끝판왕’

<아빠! 어디가?>가 깜짝 인기를 얻었을 때, 그 생명력이 지금처럼 오랫동안 이어지리라고 예측한 이는 없었다. KBS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시작하며 갖은 비난을 들을 때, 이 프로그램마저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한 이도 드물었다. 이 시대가 이런 프로그램을 원했다는 이야기다.

육아 예능은 일종의 육아 판타지를 제공한다. 현실에선 아이가 드물다. 그런데 TV를 틀면 아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을 떤다. 경제적 궁핍함이나 현실적 번거로움 등이 제거된, 아이와의 단란한 가정생활 판타지인 것이다. 이것이 만혼·저출산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은 가장 1차원적인 자극이기도 하다. 광고에서 소비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요소로 활용되는 것이 ‘3B’인데, 미인(Beauty)·아기(Baby)·동물(Beast)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런 소재에 원초적으로 끌린다. 3B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미인(=섹시)과 아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섹시한 미인의 성적인 자극은 후세를 만드는 본능과 연결되고, 아기의 자극은 후세를 기르는 본능과 연결된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하기 위해 아기를 보면 무조건적으로 귀엽게 여기는 본능을 키워왔다.

이것으로 왜 이 시대에 섹시 코드가 창궐함과 동시에 아이들의 순수함이 인기를 끄는지를 알 수 있다. 본능적인 1차원적 자극이라는 면에서 둘은 같다. 아이돌은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벗고, 방송사는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아이들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1차원적인 자극으로의 퇴행이 인기를 끄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나 피로하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여유를 잃었고 불안 속에서 정신적으로 곤두서 있다. 복잡한 창작물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럴 땐 한순간에 마음을 잡아끌면서 순식간에 머릿속 소음을 잠재워주는 1차원적인 자극에 끌린다.

아이들의 육아 예능엔 순수·가족애·추억 같은 따뜻한 느낌이 있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위안과 휴식을 준다. 한국인이 지난해부터 일요일만 되면 아이들 예능에 빠져드는 이유다. 한 주간의 피로를 아이들로의 퇴행으로 풀며 재충전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시작된 리얼버라이어티는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 흉내를 내며 시청자를 퇴행시키는 쇼였는데, 이제 퇴행의 끝에 진짜 아이들까지 왔다. <아빠! 어디가?>가 처음 방영되었을 땐 아이들의 평균 연령이 8세 정도였다가, 지금은 평균 5세 정도까지 퇴행이 진행됐다.

상처받는 아이 늘어날 수도

국민이 이렇게 아이를 원한다는 건 아이를 내세우면 장사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방송사가 체통을 잃어가면서까지 경쟁적으로 아이를 팔고 있다.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 그리고 몇몇 연예인의 인기 전략에 아이가 동원되는 셈이다. 제작진은 아이를 내세워 인기몰이를 하려는 부모를 걸러낸다고 하지만 쇼 비즈니스의 생리상 쉽지는 않아 보인다.

후발 주자인 <오! 마이 베이비>에선 걸그룹 샤크라 출신 멤버의 가족이 등장해 화제가 됐지만 이내 퇴출되고 말았다. 그 가족과 연관된 중소기업의 항의 때문인데, 결국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기업가 가족의 상업적인 홍보에 동원된 셈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아빠! 어디가?> 시즌2가 출범할 때도 아이를 내세워 그 아버지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것 아니냐는 네티즌의 반발이 있었다.

아이들은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소비되는 것이기 때문에 연예인처럼 인식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악플이 뒤따른다. 이미 ‘윤후 안티카페’ 사례가 있었고, 김성주의 아들 김민국도 큰 비난을 받았다. 연예인처럼 누구는 하차하고 누구는 계속 출연하는 등 인기의 편차가 생기는 것도 아이에겐 상처일 수 있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은 아이의 정상적인 유년기를 앗아가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과거 아역 스타 노희지는 자신을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서 공포를 느꼈다고 했는데, 육아 예능 스타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정신적 피해 가능성에 비하면 <1박2일>에서 최악의 벌칙으로 통하는 한겨울 야외 취침을 아이에게 시키는 것 정도의 문제는 가볍게 느껴질 정도다.

사람들은 아이의 순진함에 열광하면서 아이를 호출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TV에 계속 출연하면서 더 이상 순진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질타하면서 냉혹하게 버린다. 박찬민의 딸 박민하 악플 파문은 그런 경로로 일어났다. 이런 비정한 구조에서 아이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상처받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날 우려가 크다. 하지만 달콤하게 나오는 시청률과 시청자의 관심에, 방송사는 경쟁적으로 아이를 예능 캐릭터로 소비할 뿐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쇼 비즈니스의 한복판으로 불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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