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이라도 선거판에선 인정사정 없당게”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03.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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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다리고 출신 앙숙 강운태-이용섭 윤장현은 강 시장과 초등학교 동창

야도(野都) 광주광역시의 시장 싸움은 당초 민주당 대 ‘안철수 당’의 정면 승부로 예상됐다. 민주당 후보로 나설 강운태 광주시장과 이용섭 의원 간 경선 승자가 새정치연합 후보로 확실시되던 윤장현 공동위원장과 본선에서 한판을 겨루는 대진표였다. 예전만 못하더라도 지역에서 뿌리 깊은 민주당 세력과 그 대안 세력으로 기세를 올리는 안철수 진영 간 싸움은 초박빙의 접전이 될 것으로 점쳐졌기에 관심을 모았다. 또한 본선 이전에 치러질 강운태 대 이용섭 간 맞수 대결 역시 그 못지않게 흥미진진할 것이 분명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선언으로 헝클어졌다. 통합 신당의 ‘공인 후보’가 누구인가만이 남은 게임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싱거운 판세가 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긴박한 전장이 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통합 신당의 지도부가 정할 선거판의 밑그림이 현지 정서와 실세를 정확히 반영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강운태-이용섭-윤장현이라는 세 맞수 중 어느 하나라도 수용하지 않는 사태 또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월2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윤장현 출판기념회가 열린 가운데 윤장현 새정치연합 광주 공동위원장(왼쪽)이 축사를 마친 이용섭 의원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현재 야권 주변에서는 새정치연합 측이 민주당에 수도권과 호남권에서 각각 최소한 한 곳씩 정도는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수도권은 경기, 호남권은 광주가 그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통합에 무게중심을 둬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도 이를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윤 위원장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 측 후보인 강 시장과 이 의원의 반발 여부다.

강운태-이용섭, 2010년 경선에서 혈전

중앙 정계나 광주 현지에서는 이용섭 의원은 윤 위원장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강 시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중앙의 ‘중재’를 거부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의 과거 전력 또한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강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광주남)을 못 받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당선된 바 있다. 그리고 이내 민주당에 입당했는데 2008년 18대 총선에서 또 공천을 거부당하자 무소속 출마를 결행해 역시 당선됐다. 이랬던 강 시장이 호락호락 중앙당의 공천 정리를 수용할 리 없다는 것이다.

1948년생인 강 시장과 1951년생인 이 의원 둘 다 광주 출신이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이 지역에서는 변방으로 치부되는 함평 소재 학다리고등학교를 다녔다. 재학 중 검정고시로 서울대 외교학과에 진학한 강 시장은 행정고시를 거쳐 관선 광주시장·내무부장관에 이르기까지 내무 관료로 경력을 쌓았다. 강 시장은 김영삼 정권 때 농수산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2년 전 중퇴한 지 46년 만에 학다리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학다리고 2년 후배인 이 의원은 전남대를 거쳐 행정고시 합격 후 경제 관료로 컸다. 김대중 정권에서 재경부 세제실장·관세청장·국세청장을 역임했고, 노무현 정권 때 행정자치부장관·건설부장관을 지내 그의 경력도 화려함에서 강 시장 못지않다. 국회의원도 두 차례로 같다.

엘리트 관료로 나란히 커온 두 맞수는 4년 전 이미 한 차례 광주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일합을 겨룬 바 있다. 입으로는 ‘아름다운 경선’을 얘기했지만 현장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살벌한 백병전이 벌어졌고 강운태 후보가 0.45% 차로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게다가 당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 때 한 지방언론사가 여론조사를 구실로 강 후보 지지를 유도했다는 이른바 ‘ARS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용섭 후보 측은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강 후보가 시장이 돼 오늘에 이르렀으나 앙금은 도를 더하며 쌓여 있는 상태다.

흔히 동문이라고 하면 관계를 일단 ‘친밀’에 두고 고찰하는 경향이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 때론 같은 먹이를 두고 경합해왔기에 내막으로는 적대감이 더 고도화되는 사례를 숱하게 목격하게 된다. 강 시장과 이 의원도 마찬가지다. 맞수를 넘어 앙숙 지경에 이른 상태이기에 이 의원이 막판에 몰리면 윤장현 위원장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시장 출마 회견문 서두를 “지시하고 명령하고 통제하는 새누리당 식 오만과 독선의 리더십은 더 이상 용납 안 된다”며 강 시장을 정면 공격하는 것으로 장식했다. 이에 강 시장 측은 “비방으로 시작하는 이 의원의 출마 회견을 개탄한다”는 반박 논평을 발표했다.

지난 1월20일 광주 양동시장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장에서 귀엣말을 나누는 이용섭 의원(왼쪽)과 강운태 시장. ⓒ 연합뉴스
수창초교 동문 강-윤 정면충돌 가능성도

강운태 시장과 윤장현 위원장(1949년생)은 광주 수창초등학교 동문으로 엮어진다. 두 사람은 거의 동년배에 가깝다. 조선대 의대를 졸업한 안과 의사인 윤 위원장은 시민운동가로서 명망이 높다. 프로 정치인은 아니지만 민주당에 대한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의 염증·반감을 업고 등장한 강력한 다크호스다. 거기에 통합 신당은 아주 유리한 지형을 그에게 제공하고 있다.

3월2일 열린 윤장현 위원장의 자서전 <안녕을 묻고 희망을 답하다> 출판기념회는 광주시장 선거에 전기를 마련하는 장이었다. 5000여 하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룬 행사장과 행사 시작 몇 시간 전 나온 통합 발표, 안철수 위원장의 축하 메시지, 강 시장과 이 의원 등 두 경쟁자의 참석 등등 여러 가지 ‘사건’은 변화를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강 시장은 “윤 위원장과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오랜 죽마고우”라며 “시민운동가로 성장한 자랑스러운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이 의원은 “윤 위원장과 저는 한 식구가 됐다”며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광주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얼핏 의례적인 듯싶지만 이 의원의 축사에선 강 시장과는 다른, 묘한 뉘앙스가 풍겼다. 

윤 위원장 출판기념회장에서의 첫 3자 대면 이후 광주 현지의 시장 선거 논의는 수면 아래로 잠복한 느낌이다. 뛰어다닌다고 바뀔 대세도 아니고, 통합 신당 공천증이 모든 것을 일거에 평정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 지역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유력자의 전언은 경청할 만하다. “광주 유권자들은 크고 긴 안목에서 선거를 대해왔다. 당장 누구를 뽑는 차원이 아니라 전국 선거에 도움이 되려면, 차기 대선에서 이기려면 누구를 밀어야 하는지를 숙고한 후 여론을 집약시켰다. 지난 16대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승기를 잡은 곳이 광주다.” 정치의 매정함과 변화무쌍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광주시장 판세가 사뭇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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